'자발적 학내운동'은 없는가?

운동권/일반학우의 구분을 초월한 전방위적 학내운동을 기대하며

등록 2002.10.21 22:32수정 2002.10.2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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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쯤 전이었나. 정기 연고제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쓴 일이 있다. 그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당시 연세대학교 내에서 연고제에 대해 비판적인 운동을 전개하던 "Alter-Y"라는 단체를 만났었다. 그러한 단체가 존재한다는 것이 반가웠던 이유는 그 모임에서 이야기하는 연고제에 대한 비판적 시선에도 물론 있었지만 더 큰 것은 "연고제를 비판적으로 고민하는" 학우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저렇게 당당한 의견 개진을 해내고 있구나라는 감탄에 있었다.

그러나 그 모임의 관계자 몇 분을 직접 만나고 나서 그런 감탄은 약간의 실망으로 바뀌었다. 모임의 구체적인 운동 내용에 대해서는 깊은 인상을 받았고 또 상당 부분 동의했지만, 그 운동이 일반 학생들의 자발적인 모임에 의해 진행되었다기 보다는 총여학생회에 의해 주도된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물론 총여학생회 역시 일반 학우들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그러나 기간에 벌어진 학내운동은 으레 "...위원회", "...을 위한 모임"등의 이름으로 있어왔으나 그 주체가 총학생회나 단과대 학생회 혹은 학내 운동 정파의 하나 등이었다는 점에서, 그런 것으로 조직되지 않은 일반 학우들의 자발적이자 정치적인 운동을 기대했던 필자에게 "Altery"운동 역시 일정의 실망을 끼쳤다는 이야기이다.

요즘 대부분의 대학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 지지운동"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일보 등에서도 PD의 일부 정파가 하반기 핵심의제로 이 운동을 설정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는데,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양상을 보면 크게 틀린 보도는 아닌 것 같다. "평화인권포럼"이라는 이름으로 양심적 병역거부 지지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 단체는 역시나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는 일반 학생들에 의해 주도된다기 보다는 "전학협"이라는 PD의 특정 정파에 의해 주도되는 측면이 강하다.

나는 이 글에서 "특정 운동 정파나 운동 세력에 의해 주도되는 학내 운동이 나쁘다"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절대로 아니다. 다만 위에서 예로 든 "연고제 반대운동"이나 "양심적 병역거부 지지운동"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보통의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정치적으로 고민될 수 있는 운동 내용들이 여전히 기존에 학생운동을 담보해 왔던 세력들에 의해서만 점유되고 있는 현실이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것이다.

분명 학생운동을 하는 학생들은 "학내의 운동욕구를 파악해 전문적으로 운동을 대행적으로 수행하는" 전문가들이라고 할 수 없다. 대학 생활을 하는 그 누구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교육 환경이나 사회 환경에 대해 정치적인 변화의 욕구를 절실하게 가지고 있다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다른 학내 구성원들과 함께 연대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정치적 문활 능력"이며 그런 능력을 가진 구성원들이 많을 때 그 사회의 커뮤니케이션과 변화는 그렇지 못한 사회에 비해 훨씬 높은 발전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지금 대학을 다니고 있는 대다수의 일반 학생들은 그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 여기서 정치적이라 함은 "가지고 있는 생각 자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타인과 연대하여 개선을 위한 활동을 벌여나갈 수 있는 운동 능력까지 담아내고 있기에 이러한 판단을 내린다. 정말이지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


물론 정치적인 변화 욕구를 가지고 있고 비슷한 운동을 하는 집단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을 찾지 못해 좌절감을 느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내 운동은 결코 특정 집단에 의해 점유되어서는 안 된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평범한 학생들의 견제가 없다면, 특정 집단에 의해 주도되는 학내 운동이 결국에는 그들의 정치적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이용물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놓고 "반전/평화"라는 문제를 대입시키는 일부 정파와 "미군철수"를 대입시키는 일부 정파의 모습들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내 글이 "보통학생과 학생 운동 세력"이라는 일종의 이분법에 근거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나는 그러한 비판에 일면 동조하면서도, 엄연히 그러한 이분법 자체가 우리의 대학 가운데에 존재하고 있는 현실 자체에 주목하고자 한다.

특정의 테제를 가지고 과 학생회를 하고 있거나 학생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주위로부터 "운동하는 친구"라는 판정을 받은 사람들 아닐까? 그런 판정을 받은 사람들과 집단이 어떠한 측면에서는 학내 운동을 점유해 온 것 아닐까? 내 문제의식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침묵하고 있는 "일반 학생"들은 왜 자신들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내는데 무관심할까? 라는 질문에 대해 함께 대답해 보자는 것이다.

내가 기대하는 건 이런 것이다. 학내의 구성원들 모두가 정치적 문화 능력을 확보하여, 어떤 문제이든 간에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하여 문제의 해결을 위한 운동을 벌여내는 것이다.

그 대상은 불합리한 강의실 환경에 반발하는 이들도 될 수 있고, 잘못된 임용제도 때문에 피해를 보는 시간강사들의 현실에 공감하는 이들도 될 수 있고, 대학의 축제를 변화시켜 보고 싶은 이들도 될 수 있고, 도서관의 장서가 보다 확충되기를 원하는 이들도 될 수 있다. 한 마디로 누구나 될 수 있으며, 이러한 문제들의 정치적 해결에 있어서 굳이 운동하는 학생/그렇지 않은 학생이라는 이분법적 구별을 넘어선 전방위적 운동이 가능할 정도로 학생들의 정치적 문활 능력이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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