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수렴 못하는 대학 홈페이지

익명 보장안돼 논쟁의 장 역할 퇴색

등록 2002.10.24 03:02수정 2002.10.2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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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적으로 대자보를 붙이며 논쟁하던 대학사회의 모습은 이미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렇다고 과 반 학생회를 거쳐 의견이 모아지길 기대하는 것도 지금은 무리. 이러한 상황과 함께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대학생들의 소통과 의견 수렴의 장이 사이버 상으로 옮겨간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학교 홈페이지는 대안 못돼

각 대학 홈페이지가 생겨난 이래, 완전 익명이 보장되던 자유게시판은 해당 대학생들 간의 소통의 장이자, 외부인들과 논쟁의 장 역할도 해 왔었다.

고려대 권율씨는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 익명성을 보장받으며 존재하던 2000년까지만 해도, 소소한 일상사까지 이야기하면서 하루 수백 개씩의 글들이 올라왔었다"며 사이버 상에서 활발했던 소통을 회상한다. 그러나 수능때마다 타교생들과 학벌 논쟁이 붙는가 하면 익명을 담보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등 자유게시판이 잠잠할 날이 없자 대부분의 학교 당국은 일제히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학번으로 로그인 해야만 글을 쓸 수 있게 함으로써 원천적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해당 대학 학부생이 글을 쓸 때에도 학번이나 실명을 공개하도록 해놓은 것이다. 이러한 조치로 훌리건들의 횡포는 막을 수 있었지만, 잃은 것 또한 많았다.

2000년부터 학번을 공개하도록 한 이화여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은 과외를 구하거나 책을 팔고 사는 장터로 전락하고 말았다. 익명은 가능하나 학번으로 로그인을 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서강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의 경우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서강대 총학생회 정책국장 보라씨는 "학교 당국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할 때 제약이 많다. 교수 성폭력 사건을 자유게시판에서 이야기했다가 IP를 추적당해 사용하고 있던 컴퓨터 바로 옆에서 지적을 받은 학생도 있었다"고 말한다.


학교 홈페이지는 대학인들의 일상적인 소통·토론의 장으로서 기능을 이미 상실한 것이다. 학교 내에서 '공동의 장'이 부재한다는 사실은, 학생들의 여론 수렴이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이며, 학생들간의 공동체 의식을 희미하게 하는데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학생회, '사이버'로 부활할 수 있을까?


과반 학생회도 여론 수렴 기능을 잃어가고, 사이버 상에서마저 학생들의 의견을 접할 길이 없어지자 총학생회는‘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친다’는 오명을 쓰고 점점 더 학생들로부터 유리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총학생회에게 있어 학생들의 여론수렴 경로를 구축하는 것은 무엇보다 큰 과제로 떠올랐다.

최근 총학생회에서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이용도는 그리 높지 않아 여론을 수렴하기엔 무리가 많다는게 전반적인 평이다.‘일상적인’소통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경희대 총학생회에서는 학생들의 ‘일상적인’ 소통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이버 공간을 이용하고 있다. 경희대 박상현 부총학생회장은 “획일적인 소통을 극복하고 학생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인터넷 사업에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고 말한다.

총학생회 정책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사이버참정단’은 당선전 공약에서부터 내세웠던 것이다. 현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군장갑차 중학생 압사 사건’에서부터 ‘월드컵 어디서 볼까’에 이르는 일상적인 사이버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고,‘노래자랑 대회’등 각 사업마다 독립적인 게시판을 만들어 학생들의 참여를 최대한 끌어내려 노력하고 있다.

이제, 일상을 이야기하자

a 이화이언에서는‘실시간 리플’이 가능할 정도로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화이언에서는‘실시간 리플’이 가능할 정도로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 황예랑

총학생회 외에 일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인터넷상의 소통공간을 만든 경우도 있다. 그 중에서도 이화여대 ewhaian(이화이언)과 서울대 SNULife(스누라이프) 사이트는 총학생회 홈페이지를 능가할 정도로 학생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예이다. 이 두 곳의 특징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비영리‘종합 생활 정보’사이트라는 점이다.

'이화이언’의 경우 학생 대다수가 가입되어 있는 명실공한 이화여대 학생들의 놀이터다. 커뮤니티와 메일 제공에서부터 강의정보, 장터, 아르바이트 정보, 성 상담에 이르는 다양한 게시판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익명 게시판은 ‘죽순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이화여대 학생들 간의 친밀한 소통의 공간이 되고 있다.

‘스누라이프’는 ‘서울대인의 하나됨을 위하여’라는 취지를 내걸고 있으며 현재 사이트 회원은 1만2천여 명에, 각종 게시물의 조회수가 수백여회 이상, 많게는 천회 이상을 기록하고 있어 정보전달 및 의견 교류의 장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a 학교주변 음식점 정보와 공개사랑고백게시판 등으로 활성화 되어 있는 스누라이프

학교주변 음식점 정보와 공개사랑고백게시판 등으로 활성화 되어 있는 스누라이프 ⓒ 황예랑

이러한 사이트가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학생들에게 ‘일상적 소통 공간’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희미해져 가던 학생들간의 공동체 의식을 다시금 돈독히 해주는 대안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을 ‘완벽하다’고 볼 수 없는 여지가 남아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 집행부에서는 “이화이언에 상대적으로 학생들의 글이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총학생회 사업을 준비할 때 수시로 의견을 검토한다.

하지만, 익명성 때문에 의견이 직접적으로 배설되는 경향이 커 사업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하진 않을 때가 많다”고 밝혔다. 또 ‘스누라이프’도 ‘서울대생 과외비 논쟁’으로 게시판이 한차례 뜨거워지기도 하는 등 토론문화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기도 했었다.

마지막 보루라고도 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이 일상적 소통 기능과 함께 발전적인 토론의 장 역할도 함께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진지한 대화의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대학생신문 169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위 기사는 대학생신문 169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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