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는 지금도 '택시운전 중'

[인터뷰] 한겨레신문 홍세화 편집기획위원

등록 2002.10.24 03:16수정 2002.10.24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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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방인이되 엑스트라 이방인이었고 또 삼중의 이방인이었다.
우선 나는 프랑스 땅에 사는 외국인인 문자 그대로의 이방인이었다. 그리고 한국인이면서 빠리의 한국인 사회에 낄 수 없는 이방인들 중의 이방인이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중


홍세화씨는 79년 무역회사의 해외 발령으로 파리에 갔다가 대학 시절 가담한 남민전 조직 사건으로 20년간 망명해 있었고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인 재작년, 한국에 돌아왔다.

그는 망명 생활 중 한국 사회에 대한 성찰이 담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발표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현재 그는 한겨레신문사의 '왜냐면'이란 토론 코너를 맡고 있고 <아웃사이더>의 편집진 활동을 비롯하여 초청 강연회, 토론회를 다니며 사회 여론 환기와 토론 문화 확산을 이끌고 있다. 최근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는 그를 늦은 저녁, 만나보았다.

한국을 만난 홍세화, 홍세화를 만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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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연

글을 통해 한국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어김없이 쏟아내던 홍세화 씨는 20년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그가 본 현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떠나기 전과 그다지 달라진 건 없지만 물신주의 풍토가 만연해졌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은 물적 토대가 충분히 쌓였음에도 가족이기주의, 경쟁심리 등으로 인해 오히려 인심이 야박해졌다." 그는 이러한 물신주의는 국가지대사인 교육에도 악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한다.

"교육인적자원부란 명칭에서부터 교육의 시장화를 엿볼 수 있다. 무료 공교육을 시행하는 프랑스에 견주어보면 한국의 교육은 기득권의 재생산 과정같다. 국가경쟁력을 확보하자고 하지만 실은 신자유주의를 맹종하는 국내의 기득권세력을 공고히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홍세화씨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교육 자체가 일방적 소통 구조를 갖고 있다며 "국가주의, 군사주의, 권위주의 등 사회적 강자의 우위 점령으로 대화와 토론 자체가 불가능하다. 주입식 교육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그는 한국사회에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프랑스에서 한 이슈에 대해 논쟁이 붙으면 언론에 기고를 통해 토론을 이끌어낸다. 토론하지 않는 정치인은 생명력이 없다. 자유분방하고 자기 의견을 떳떳하게 말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기득권 층의 상의하달식 소통뿐 토론문화가 부족하다"며 사회 구조 변화와 의식 함양으로 토론을 이끌어내자고 말했다. 그는 한겨레신문에 맡고 있는 <왜냐면>이란 토론 코너를 통해 토론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 중이다.


또한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의 흐름에 대해서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고 믿는 것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세뇌 당했음을 의미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움직임은 일찍부터 있어야 했다"며 지지의 의사를 밝혔다.

홍세화는 지금도 택시운전 중

물론 요새도 택시운전을 업으로 삼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왜 하필 택시운전사였냐는 질문에 그는 필연이었다고 말한다. "한국은 학벌 위주의 사회지만 프랑스는 그렇지 않다. 나는 프랑스에서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이주노동자였다. 프랑스 사회가 나에 대해 인정해준 것은 면허증뿐이었다." 그는 망명 중 가장 힘들었던 일도 엘리트 의식을 타파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파리에서 택시 운전을 하며 프랑스의 그것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한국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절감했고 자기 정체성에 대해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그는 공익 추구라는 목적지를 향해 시민들을 가득 태우고 택시를 몰고 있다.

"민주노동당 당원이지만 스스로의 가치관이 있다. 예를 들어 노무현은 합리적인 보수로 공익 추구 세력이고, 한나라당은 사익 추구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진보세력도 공익추구라는 공통분모 아래 힘을 모아야 한다."

홍세화씨는 국민신당,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으로 세분된 진보세력에 대해 "경쟁상대와 부정상대를 구분해야 한다. 이 세력간의 차이는 한국 사회의 모순에 비하면 얼마나 작은 차이냐"며 합리적 보수와 극우세력을 구별하고 공익추구란 공통분모 아래 연대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이 결국 김대중 정권과 같은 길을 걷지 않겠냐는 질문에 "당시는 김종필과 손을 잡는 등 한계가 있었다. 그것과는 차별성을 둬야 한다"며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는 이뤄야 하지만 사회의식이 그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우선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맥락에서 홍세화씨는 최근 한겨레신문사에 쏟아지는 '보수적이다, 개량적이다'는 비판에 대해 "엘리트 운동권 식의 사고다"라고 일갈했다.

그는 "한겨레의 독자는 주로 이념적 동질성 때문에 한겨레신문을 본다. 따라서 조금만 의견이 다르면 신문을 내팽개친다"고 지적하고 한겨레신문에 기대가 크다면 꾸준히 신문을 보며 참여할 것을 호소했다. 또한 그람시의 '소수의 훌륭한 의견을 시행하는 것보다 다수의 생각을 조금 바꾸는 것이 더 혁명적이다'는 말을 인용하며 "한국인의 보편적 의식에 견주어 생각해보면 중앙지 중 가장 진보적이지 않은가. 한겨레신문의 사회의식 고양 등의 성과를 평가해달라"고 전했다.

다름을 인정하자, 똘레랑스!

홍세화씨가 한국에 유행시킨 단어, 똘레랑스. 이 단어 하나만으로도 홍세화씨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침착하고 너그러운 그의 성격과 말투 하나 하나에서 똘레랑스를 만날 수 있다.

"똘레랑스를 '관용'으로 해석하는데 이는 옳지 않다. 관용이란 말은 '대상의 실수를 인정하고 봐준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관용보다는 다름을 전제하는 '용인'이란 단어가 더 낫다."

그는 똘레랑스를 통해 한국의 지역패권주의의 문제를 꼬집었다.
"똘레랑스는 신앙, 사상, 성적 취향 등 성질이 다름을 용인하자는 의미다. 더욱이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출생지로 인한 지역 차별은 극복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선 일부 정치권과 언론이 지역주의를 조장한다. 이런 상황이 시정되어야 사상의 자유가 정착될 것이며 지역주의도 사라질 것이다."

홍세화씨는 60년대 대학을 다녔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반독재투쟁을 하며 대학 생활을 파란만장하게 보냈다. 그래서인지 그는 대학생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요즘 한국 대학생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대신 정신적으로 탐구력이 떨어진다. 이성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에게 좌우명을 묻자 '외유내강'이란다. 확실히 그는 외유내강해 보인다. 바쁜 일정에 감기까지 걸려 피곤해 보이던 홍세화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겸손하고 진실된 '선생님'이었다.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에게 한 마디 말씀을 부탁했다.

"이 사회에서 산다는 인간적 삶의 의미를 생각하라.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되 생존을 무시하면 안 된다. 꿈과 생존 사이에 긴장감을 갖고 삶을 살아라. 비록 생존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을 양보하더라도 꿈을 버리지 말자."

덧붙이는 글 | 대학생신문 16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대학생신문 16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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