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보다 노예노동이 힘들어"

코트디브와르 전통예술 공연단, 4개월간 노동력 착취 당해

등록 2002.10.29 22:57수정 2002.10.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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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여 년 동안 공연해 왔던 노엘 씨.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한국행에서 받은 상처는 지우기 힘들 듯 하다

20여 년 동안 공연해 왔던 노엘 씨.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한국행에서 받은 상처는 지우기 힘들 듯 하다 ⓒ 임김오주

코트디브와르 전통예술 공연단원들은 지난 5월 한국의 '아프리칸 빌리지'사와 공연 계약을 맺을 당시만 해도 자신들이 '노예' 취급을 받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월 200달러, 사실 한국 최저임금인 52만원에도 미치지 않는 액수였지만, 한국의 물가도 잘 알지 못했을 뿐더러 좋은 조건의 숙소와 식사 및 의복이 제공될 것이라니 한국에 아프리카 전통문화를 알리는 기회로 삼는다면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계약서'는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사업주에게 그들은 동등한 인간이 아닌, '깜둥이'일 뿐이었던 것이다.

10명의 단원을 묵게 한 숙소는 벽이 허물어지고 곰팡내가 진동을 하는데다가 물도 나오지 않아 용변을 주변 풀밭에서 해결해야 하는 등 축사와 다를 바 없었다. 하루 한 번이었던 공연은 두세 차례씩으로 늘어나기가 일쑤였으며 외부 공연, 연장근무도 잦았다.

온갖 잡일도 그들 몫으로 돌아왔다. 풀 뽑기, 청소하기, 짐 나르기는 기본이고 인근 야산이나 길거리에 있는 나무와 꽃을 뽑아다 심는 불법적인 일까지 시켰다.

주민들이 항의하자 '뭘 모르는 아프리카인들의 소행'으로 책임을 떠넘겼다. 그런데도 그들이 받았던 임금은 애초에 계약했던 200달러보다도 훨씬 적었다. 청소를 깨끗이 못했다거나 전화를 많이 썼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임금을 막무가내로 삭감했기 때문이다.

a 공연단원들이 숙소로 사용해야 했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폐가(사진제공: 강형규 씨)

공연단원들이 숙소로 사용해야 했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폐가(사진제공: 강형규 씨) ⓒ 황예랑

이러한 인간 이하의 생활을 참을 수 없어 이의를 제기하면, "너희가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쇠사슬을 채워서 끌고 가 더한 일을 시킬 것이다"와 같은 협박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나마 있는 숙소의 문에 판자를 대고 못을 박아 밖으로 내쫓는 경우도 있었다.


'지옥 같은' 생활이 4개월쯤 되어가던 10월 초, '전주 세계 소리축제'에 참가했을 때 만난 한국인의 제보로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와 닿을 수 있었다.

이때의 심정은 '지옥에서 신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일 정도였다고. 이후 이들은 센터의 도움으로 지난 17일(목) 밤 '아프리칸빌리지'를 탈출했고, 국가인권위원회에 'E-6 비자 및 외국인력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한 상태이다.


E-6 비자는 활발한 문화교류를 위해 국가가 보장하는 공연비자이다. 유흥업소의 댄서들이 아닌, 정상적 공연을 위해 들어온 이주노동자가 임금착취와 강제노역을 당한 것은 가시적으로는 이번이 처음.

그러나 그들 또한 사업장을 나온 순간부터 원칙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단속추방기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다만 '노예노동'과 관련해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국제적인권문제로 부각될 것이기 때문에 출입국관리소도 섣불리 손대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을 뿐이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의 최현모 정책국장은 "탈출 이후 2주 정도가 지나면서 어느 정도 정신적 안정을 찾고 있으나, '공연'이라는 본연의 목표를 해소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며 공연단원들은 궁극적으로 한국에 남아 계속 공연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전한다.

공연단 단장 노엘은 현재의 심정을 묻자 "이번 일로 한국과 아시아에 대해 좋지 못한 인상을 얻게 되었지만, 예술가로서의 인생 교훈으로 삼아보려고 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대학생신문' 170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위 기사는 '대학생신문' 170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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