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동자적인 정책을 제시한다고 반드시 실현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오마이뉴스 권우성
- 정 후보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가?
"나는 정 후보를 잘 모른다. 일반 국민이 아는 정도만 안다. 80년대 말∼90년대 초에 노사가 격돌할 때, 정 후보가 사측에 있었던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노동자들은 당시 정 후보가 노동자의 정당한 요구를 파기하고, 구사대를 동원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정 후보는 TV 토론에서 '알려진 것처럼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노동자의 주장이라고 항상 정당하다고 보지 않는다. 요구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투쟁을 전개할 때, 명분은 옳을지 몰라도 현실에서 옳지 않은 부분도 많지 않나? 정 후보를 재벌 옹호하려고 노동자를 까부수려는 사람으로 봐서는 안 된다."
- 배 위원장은 89년 식칼 테러 사건이 있을 때 서노협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사건의 진실에 대해 좀더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나?
"사측에서 식칼까지 동원해서 노동자 중에 다친 사람들도 있는데, 그중 한 명인 권용목씨도 곧 (국민통합 21에) 입당할 것으로 안다. 정 후보가 그런 일을 지시했다면, 권씨가 국민통합 21에 합류하겠는가? 권씨는 적어도 정 후보를 노조 탄압의 상징적인 인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도 '정몽준 대통령'이 노조 입장에서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
-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에서 복직 후 노선 전환을 선언한 것과 정 후보에 대한 지지가 일정한 상관 관계가 있는가?
"일국 체제에서는 진보와 보수로 나눠서 얘기하지만, 지난 10여년 사이 세계화라는 글로벌 체제로 변화됐다. 자본가와 노동자로 갈라져 생각해서는 노동자들도 생존할 수 없다고 인식해서 '상생'을 주장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정 후보가 TV 토론에 나와 초국적자본의 위협을 경고하고 노사가 뭉쳐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제 연설에서는 빼먹었지만,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이행하는 지금 시기에는 기업 경영 마인드가 국가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본다. 이회창 후보는 경영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무슨 대통령을 하려고 하나?
초국적자본이 국내자본을 잠식하려고 하는 이때 내국인들이 큰 차이를 넘어 통합해야 하지 않는가? 정몽준 후보도 그런 의미에서 '재벌 후보'가 아니라 '국민통합 후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다른 국가를 침략하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지, 일본이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재벌이 노동자를 머슴으로 격하시키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지, 재벌이기 때문에 싫어하는 게 아니다. 정 후보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 | 양친의 죽음이 노사관 변화에 간접적인 영향 | | | 음독자살한 부친, 의사파업중 사망한 모친 | | | |
| | | | ⓒ오마이뉴스 권우성 | 한때 전투적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배일도 위원장이 '노사상생'으로 노선을 전환한 데에는 양친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불행도 간접적인 배경을 이루고 있다.
93년 전국해고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전해투)에 참여해 마포 민주당사에서 1년 반 동안 농성을 벌이고 있던 배 위원장은 그해 9월 아버지가 고향에서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이인제씨가 노동부장관이 되면서 해고자 복직에 대한 전향적인 정책이 추진되지만, 그는 결국 막판에 복직자 명단에 빠지고 만다. 잔뜩 기대를 품고 있다가 TV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한 칠순의 아버지는 상심한 나머지 음독 자살을 택한 것.
2000년 의사들의 파업이 있을 때는 어머니가 74세에 돌아가셨다. 배 위원장의 어머니는 음식을 잘못 먹은 후 모 대학 병원을 찾아갔는데, 마침 병원이 파업중이어서 제대로 진료도 못 받고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었다. 파업이 끝나고 배 위원장이 어머니를 부랴부랴 서울의 병원으로 옮겨 정밀진단을 하려는 와중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나중에 확인된 모친의 사인은 패혈증(세균이 혈액에 들어가 피가 제대로 순환이 안되는 병)이었고, 이 사건은 배 위원장으로 하여금 "의사 파업만 없었어도 적절한 치료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회한을 남기게 했다.
배 위원장은 "의사들의 파업은 옳지 않다고 본다"며 생존권 차원의 파업과 집단이기주의로서의 파업 사이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그는 "부모님의 죽음이 하나의 배경은 이룰 수 있어도 새로운 노선을 고민한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 손병관 기자 | | | | |
- 현재의 '전투적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는데...
"지금 내국인끼리 대립적 시각을 가지면 글로벌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상생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타도하자는 생각을 버리겠다고 한 것이 2000년의 지하철노조 무쟁의 선언이다. 그것을 친자본적, 반노동자적이라고 보는 것은 시대를 너무 안일하게 보는 노동진영의 게으름과 무능이다. 민노총은 무조건 '안티'인데 무조건 그렇기만 하면 되나?
군부독재시절에는 플래카드 하나 걸고 유인물 한 장을 뿌려도 빨갱이로 몰렸지만 투쟁의 효과가 있었다. 지금 집회에서 머리띠 매고 투쟁 구호를 외치는데, 구호도 천편일률적이고 1분 동안 얘기하면서 '투쟁'이라는 단어가 한 70개가 나온다. 사용자들은 그런 것에 전혀 압박을 받지 않는다. 도리어 국민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하고, 노동자의 진정한 힘을 소진시키는 게 아니냐?
노동운동에는 전투적 노동조합주의, 노사협조주의(실리적 노조주의), 비판적 개입주의라는 세 가지 흐름이 있는데, 나는 비판적 개입론자다. 노사정 3주체가 만나서 얘기할 테이블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노총이 김대중 정부 출범 초부터 '신자유주의 정권'으로 규정하고, 반대 입장에 선 것은 대단한 실수였다고 본다. 우리나라도 노동당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서 국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79년 대처의 보수당 정부를 불러들인 영국 노동자들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