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 6일 전국의 재학생, 재수생 67만5759명이 지원해 치르는 수학능력고사는 참으로 장관(?)이었다. 수험시간에 맞춰 비행기 이착륙시간가지 조정하는가 하면 군 작전 시간까지 통제하는 국가적인 행사가 치러진 것이다. 개인의 운명까지 좌우하는 거국적인 수학능력고사를 취재하기 위해 세계의 유명통신사들이 앞다투어 취재까지 하러 왔다.
세계에서 초·중학교와 고등교육(대학)가 상하 수직적 관계로 놓인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등 동남아 소수의 국가뿐이다. 다른 나라에도 대학입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미국의 SAT, 독일의 아비투어는 선발제도가 아니라 학력 이수검정과정이다.
세계의 구경거리가 되는 우리나라의 수학능력고사는 인간의 가치는 물론 취업이나 승진, 결혼 등 평생을 두고 울궈먹을 수 있는 프리미엄으로 작용한다. 수능의 점수 몇 점이 인간의 가치와 운명까지를 바꿔놓는 상식 이하의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 기막힌 구경거리 현장에는 또 하나의 웃지 못할 구경거리(?)가 있다. 이름하여 수능응원대다. “어제 밤 10시부터 지켰어요.” 선배의 응원을 하러 나온 학생의 볼멘소리다. 선배의 시험을 격려하기 위해 나온 후배들이 자의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선배들의 강권에 못 이겨 동원된 것이다. 학생들의 응원소리에 잠을 설친 주민들의 불만 소리는 덮어두고라도 선배들의 응원에 동원된 후배들에게는 또 다른 억압이다. “2시간에서 5시간까지 봉사활동 시간을 준다고 해서 나왔어요."
학교가 하는 일 중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이 한 두 가질까마는 밤을 새워 응원자리를 지키도록 하고 학생들을 위해 봉사를 했다고 점수를 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북이나 꽹과리까지 동원해 우리학교 재학생이 일류 대학에 붙도록 기원하고 몇 명의 일류대학생을 배출했는가에 따라 학교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에 응원단까지 구성하고 봉사점수까지 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며칠 후면 00대학 김00, 이00 의 명단이 교문 앞에 대문짝만 하게 나붙을 것이다. 일류대학을 몇 명 더 보냈기 때문에 자랑을 하는 학교는 역사 앞에 우리학교는 인간교육, 인격교육을 어느 학교보다 잘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총체적인 모순은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 안의 온 신문이나 방송은 점수로 70만에 가까운 젊은이들을 서열매기기에 앞장서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비정상이 정상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끄럽다거나 이렇게 하면 성적이 낮은 학생이 마음의 상처를 받을 것이라는 배려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어떻게 수천명의 학생을 위해 수십만명이 들러리를 서고 가슴에 못을 박는 비인도적인 일을 반세기 넘게 계속할 수 있을까? 언론이 앞장서고 이해관계가 걸린 학부모들은 승부욕에 사리분별조차 못하고 있다.
수십만명이 연례행사로 치르는 수능에 한해서만은 정치인도 학자도 종교인도 교사도 이성을 잃고 있다. 친구가 경쟁의 대상이 되는 반교육이 존재하는 한 교육다운 교육은 없다. 처음부터 승부가 결정된 경쟁을 두고 서열 매기는 '눈감고 아웅'은 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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