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가 TV토론을 가진 후에 여론조사를 하여 단일 후보를 결정하기로 합의하였다. 밀실야합이 아니라 공개적이고 떳떳한 협상에 의해 이렇게 두 후보가 단일화하기로 합의한 것은 그 자체가 우리 정치발전에 커다란 획을 그을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쾌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또 "후보가 누구로 결정되더라도 우리 두 사람은 단일후보의 선거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밝힘으로써 두 후보의 단일화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격을 안겨주었다.
노-정 두 후보는 또 "우리 두 사람은 정치개혁, 남북관계, 경제 특히 농업개방 등이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그 구체적인 해결 방안에 대해서도 거의 의견이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이 두 후보는 중요한 정책에 있어서도 합의를 보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상의 합치점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 두 후보의 단일화 합의는 정당한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앞으로 양당의 실무자들은 이들 주요 국가적 과제의 해결방안에 대한 동일한 의견을 기초로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서도 합의를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두 후보는 후보 단일화를 위한 두 후보의 "토론은 정책중심의 토론이 되도록 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후보 단일화를 위한 토론에서 정책 중심의 토론은 적절하지 않다. 정책토론을 하겠다는 것은 두 후보가 중요 정책에서 다르다는 점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두 후보가 이미 중요한 국가적 과제의 해결방안에 대해서 의견이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합의문의 내용과도 배치된다.
게다가 두 후보가 단일화하기로 한만큼 이제 두 후보진영은 두 후보의 정책을 조율하여야 할 처지에 있다. 그런데 정책토론은 성격상 두 후보간의 정책을 조율하는 장이 되기보다는 정책의 차이를 드러내도록 강요하는 것이어서 단일화를 위한 토론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후보 단일화를 위해서라면 두 후보간의 정책의 차이는 두 후보진영간의 격의 없는 논의를 통해 조율해야 한다. 차이가 있다면 조용히 조율해야 함에도 굳이 공개적으로 그 차이를 부각시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다.
정책토론은 두 후보의 정책적 차이를 강조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라이벌 후보간에 필요한 것이지 후보 단일화를 위한 동지적 후보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결국 후보 단일화 토론회는 구체적인 정책을 다루는 것이기보다는 후보의 식견과 정견을 드러내는 정도의 것으로 해야 한다.
후보 단일화를 위한 토론회는 상대 후보를 폄하하거나 비난하는 공격적, 부정적인 것도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신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는 적극적, 긍정적인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두 후보는 단일화 후에는 경쟁자가 아니라 서로 협조해야 하는 동지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론회도 자질구레한 여러 질문에 짧게 응답하는 기자회견식으로 할 필요가 없다. 큰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충분히 자기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고전적 방식으로 토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서 1858년의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직 선거 때 벌였던 링컨-더글러스의 토론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토론은 노예제 허용의 문제를 가지고 두 후보가 일리노이주의 7개 선거구를 돌면서 벌인 것이다. 토론회는 먼저 한 후보가 1시간 연설을 하면 상대 후보가 1시간 30분 반론을 펴고 그에 대해 처음 발언했던 후보가 30분 재반론을 하는 식으로 해서 3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이런 고전적인 토론 형식을 라디오에 적용시킨 것이 이른바 오리건형 토론이다. 1948년 공화당의 오리건주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토마스 듀이와 해롤드 스테슨 간에 개최된 토론회에서 나온 이름이다. 이 토론회는 "공산주의는 불법화되어야 하는가?"라는 단일한 주제로 양 후보가 각각 20분씩 발언하고 상대 후보의 연설에 대해 각각 8분30초씩 반론하는 형식으로 한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단일한 주제로 심도 있는 주장을 펼 수 있는 이런 고전적인 형식의 토론회를 노-정 두 후보의 단일화를 위한 토론회에 도입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런 형식의 토론은 정치토론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도 더 고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두 후보는 토론회에 따라 발언의 순서를 바꾸어가면서 각각 20분(또는 15분)씩 발언하고 10분(또는 15분)씩 서로 반론하는 형식으로, 또는 10분씩 세 번 교대로 발언을 하는 방식으로 1시간 동안 진행하면 될 것이다. 세 개의 전국 지상파 방송을 활용해서 서너 번 토론하면 족할 것이다.
그렇다면 토론의 주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주제는 구체적인 정책보다는 식견과 정견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예컨대, "왜 내가 단일 후보가 되어야 하는가?", "국민통합, 어떻게 이룰 것인가?", "정치개혁,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남북관계, 어떻게 할 것인가?" 등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단일 주제를 통해 두 후보는 자신의 식견과 정견을 얼마든지 드러낼 수 있다. 그런 토론회라면 유권자들이 누가 더 적절한 대통령 감인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매우 유익할 것이다.
노무현 정몽준 두 후보의 후보 단일화를 위한 토론회가 효과적으로 잘 이루어져 우리의 정치토론의 새로운 문화를 열고 정치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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