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꿈. 통일의 꿈

정토회, 운주사 및 동일 민들레 광주 캠페인 동행 취재기

등록 2002.11.23 10:20수정 2002.11.2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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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21일, 통일민들레 전국순례 다섯 번째 날, 오늘은 평화의 날이다.


평화란 자연스러워 그대로 편안한 것일 게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베풀며 살겠습니다'가 오늘의 명심문이다. 평화와 베푼다는 것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오늘도 이렇게 길을 나선다.

오늘의 순례지는 천불천탑으로 알려져 있는 전라도에 위치한 운주사.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소설 한자락에 민중들이 새 세상을 꿈꾸던 혁명의 땅이라 하고, 광주항쟁으로 희생당한 민중들의 저항의식과 좌절된 심정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는 절이라는 정도의 정보를 갖고 있다.

아늑하고 편안하다. 야외 조각장 같이 걸어가는 곳곳에 놓여져 있는 부처님과 탑들. 온 산 여기저기에 부처님이 계시고 탑들이 있다. 불국토가 이런 모습일까. 어느 시대 어떤 양식이라고 정해진 것 없이 모든 것이 예측할 수 없는 자유로움 그대로다.

이땅의 기운을 그대로 살려 부처님과 탑을 만들었다. 하늘의 기운을 그대로 옮겨 탑들을 별자리 모양으로 늘어놓았다. 땅 전체를 좌대로 삼고 상륜부는 허공 그대로를 걸어놓아도 좋다는 정해진 것 없는 자유를 만끽한다. 이 세상 그대로 편안하고 평화로운 것은 아닐까. 우리가 조금씩만 나누어 살면 되는 것을 너무 발버둥치며 사는 것은 아닐까.

석불좌상, 마애여래좌상, 쌍배불좌상, 칠성바위, 시위불(머슴바위), 국보 제798호인 운주사원형다층석탑... 문자로 표현되어 나열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운주사. 크기에서나 표현양식에서나 불가사의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운주사의 특징인 대웅전 서쪽 야트막한 산 위에 있는 와불 주위에 앉아 엽서에 글을 적고 그림을 그린다. 눈에 보이고 가슴으로 느껴진 불국토를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이리라. 아침공양 후 조별로 작업했던 찰흙으로 만든 부처님과 탑신을 자연속에 놓아두고 산을 내려온다. 훼손되어 사라진 천불천탑 중에 하나라도 되는 듯이. 깨져 부서진 채 운주사를 지키고 있는 돌부처들의 해탈의 자유가 그림자되어 따라온다. 운주사 이름 그대로.

2002년 11월 21일 오후 4시, 통일민들레 전국순례 다섯 번째 날로, 오늘은 광주에서 캠페인을 갖는다.


광주시 동구 충장로에 있는 광주우체국 앞에 풍물소리가 요란하다. 광주대학교 풍물패의 남도가락이 장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광주는 젊은 도시다. 활기차다. 평화를 일구는 도시다.

정토행자 70여명이 모인 가운데, 통일의 힘과 지혜를 모으는 전국순례 캠페인을 알리는 광주정토회 심정순 총무의 목소리에서 힘이 전해진다. 적은 돈이라고 미안해하면서 오랜 세월 노동으로 주름지고 상처투성이인 할아버지의 손으로 넣어주신 돈과 구걸하시는 아주머니가 주신 돈은 참으로 송구하고도 큰 감동을 주었다고 경험을 인사말로 하신다.

통일민들레의 마음 따뜻한 사랑으로 5월 광주의 땀과 혼이 담긴 이곳 충장로에서 한 마음으로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소중하고 뜻깊은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광주의 아름다운 사람아제아제의 이해모님도 인사말을 한다.

거리에 넘치는 풍물소리로 거리행진을 다녀온 후 거리가 좁아 참회의 절은 할 수 없었지만 거리명상은 광주시민의 발길을 잡는다. ......외로움보다 더 서러운 건 어쩌면 배고픔인지 모른다 볼을 타고 내리는 눈물보다 더 뼈아픈 건 뱃속을 후벼파는 허기와 공복의 칼끝... 북녘의 아이들이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 한다. 감자 한덩이마저 떨어지고 멀건 죽조차 입에 대보지 못하다 끊어진 배급 몇 날 몇 십일을 기다리다 죽어가던 그 아이들이 바라본 하늘은 무슨 빛이었을까... 유명시인의 시구가 명상 멘트로 흐른다. 참회를 한다. 역사를 읽지 못하고 등한시 한 채 배부르게 먹었던 어리석음을. 참회를 하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다.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기운으로 민들레 피워 허공 가득 하이얀 홀씨 되어 날아간다.

초등학생인 최소담은 모금을 하면 남을 도울 수 있어서 좋았다고 거리행진을 하면서 작게 속삭여 준다. 전남 화순에서 초등학생 2학년 10여명이 원정을 왔다. '전쟁은 NO 평화는 YES'가 쓰여진 피켓을 들고 '아빠와 크레파스'를 부른다. 작은 손으로 모금하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고 집에서도 심부름을 자꾸 시켜달라고 한단다. 심부름을 하고 받은 돈으로 통일 돼지저금통에 돈을 넣는 재미를 즐기기 때문이다. 상욱이와 같이 온 어머니가 이것이 산 교육이라며 자랑스럽게 하신 말씀이다. 남을 돕는 행사에 참여한 것을 뿌듯해 하는 학생들과 일체감이 생겨서 좋다고 곁에 계신 담임선생님도 한몫 거든다. 꽉찬 통일돼지저금통도 30개 가지고 왔다고 가시다가 돌아와서 다시 말씀하신다. 흐뭇한 모습이다.

비아중학교 학생들도 모금활동을 열심히 했다. 다섯 명이 길 가운데 서서 '북한어린이를 도와주세요' 라고 목청을 높인다. 많이 해보아 자신감이 넘친다.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 할 일을 챙겨 하는 모습이 듬직하다. 오늘 모금은 잘 안되었지만 어른들과 같이하니까 더 재미있었다고 소감도 말한다. 잘 자란 모습이다.

풍물과 탈 모양을 쓴 커다란 인형들 그리고 피켓 들고 동참했던 모든 사람들이 한 몸 되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른다. 광주는 초등학생에서 청소년 청년 장년까지, 학생과 교사 학부모까지, 정토행자와 광주시민 모두모두 신명나게 잘 논 한바탕 잔치였다. 나 자신 신명나게 번뇌나 갈등 없이 집중해서 남을 생각하는 시간을 보낼 때, 나와 더불어 주위를 기분 좋게 해 주는 일에 동참한 것이 평화를 향한 작은 몸짓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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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성찰을 통해 개인적 과제를 극복하며, 당면한 시대적 과제를 늘 정면으로 응시하고 뜻을 함께 하는 이들과 연대하며 사는 교육운동가입니다. 오마이뉴스의 살아있는 시대정신과 파사현정(破邪顯正) 사필귀정 [事必歸正] 정론직필[正論直筆] 기자 정신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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