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미국을 어떻게 대하란 말인가?

[조선사설]‘반미를 넘어 해법을 찾자’ 에 붙여

등록 2002.11.29 17:51수정 2002.11.2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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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자 조선일보 사설 ‘반미를 넘어 해법을 찾자’ 에선 조선다운 전투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으레 수세에 몰리면 들고 나오곤 했던 ‘합리적 이성의 회복 촉구’를 전술로 삼는다.

믿었던 한나라당까지 소파개정을 입에 올리는 것에 조선은 잠시 배신감과 황망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또한 부시 미국 대통령이 마침 두 여중생 사망 사고에 대해 사과를 한 마당이라 조선은 이 사건에 대한 분노가 잦아들 거라고 내심 기대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상황이 조선의 기대와 어긋나게 전개되면서 조선은 논점 흐리기와 적반하장 전술을 끌어들이며 ‘합리적 이성’을 다시 한번 들이민다.

(조선)‘...이번 사태가 심상치 않게 여겨지는 것은 반미 주장에 공감을 표시하는 일반국민들이 급속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희생자가 여중생들인데도, 정작 기소된 미군병사들이 미군법정에서 무죄(無罪)평결을 받기 무섭게 출국했으니 한국인들로서는 분노와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반미=용공’의 공식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조선의 정서로는, 미 공화당(중에서도 매파) 기관지적 속성을 가진 조선으로서는, 아마도 지금의 상황이 받아들이기 힘든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여겨질 테다. 그러나 상황이 엄혹한지라 대놓고 딴지를 걸만한 배포는 없었던 듯 싶다.

조선은 이례적으로 두 여중생의 참혹한 죽음과 미군법정에서의 무죄평결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응당한 측면이 있음을 짐짓 헤아려 주는 시늉을 낸다. 과거 윤금이씨 사건이나 전동록씨 감전사 사건, 미군 세모녀 폭행사건 때의 항의 시위를 ‘우연한 실수를 트집잡아 한미공조를 파투내려는 작태’라며 언어폭력을 일삼던 것에 비하면 진일보(?)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희생자가 여중생들인데도...무죄평결을 받기 무섭게 출국...한국인들로서는 분노와 충격’이라는 구절에서처럼 앞전의 희생자들이 ‘여중생이 아니었기에’, 더러운 욕망을 가진 그렇고 그런 어른들이었기 때문에 분노할 만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조선의 본질을 알려면 언제나 역접인 ‘그러나’와 ‘그렇지만’ 다음을 봐야함을 잊지 말자.

(조선)‘...그렇지만 운동이나 시위는 문제제기는 될 수 있어도 문제의 해결이나 마무리일 수는 없다. 거꾸로 상처를 더 덧나게 할 염려도 있다. 현재 일부 시위대는 미군 기지에 화염병을 던지는가 하면 철망을 뜯고 진입을 시도하기도 한다. 자칫하다 더 큰 사고를 부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고양이 쥐 생각한다고 했나? 미군에 항의하는 시위대 안위를 걱정하는 것인지 시위대에게 큰 코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하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선의로 넘어가도록 하자.

단지 상처를 덧나게 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엄중히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부시의 사과의 방식을 굳이 문제삼지 않더라도 재판과정에서 미국이 보여준 오만함은 무엇으로 설명할까? 사설을 누가 쓴지는 몰라도 미안한 가정을 해봐야겠다.


(가족이든 친구이든) 당신이 아끼는 누군가가 대낮에 차에 깔려 죽었는데 가해자가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무죄인가? 그저 실수라고 우기면, 사람사는 세상에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다며 체념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무엇보다 가해자들이 사건의 초반부터 생뚱한 태도를 보이며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행동을 한다면 어찌할 건가?

전혀 그 사람을 해할 동기가 없었다 해도 한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게 했다면 최소한의 책임을 묻는 것이 민주 법제를 가진 문명화된 나라의 법리 아니던가? 과문한 탓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업무상 과실치사’라는 죄는 우리나라 법에만 존재하는 것인가?

단언하건데 상처를 덧나게 하는 작태는 두 여중생을 살해한 이후에도 두 소녀의 가족과 친구, 우리 국민을 눈의 티끌처럼 가소롭게 생각했던 미군의 태도와 미국에 알아서 기면서 체질화한 굴종 기질을 여지없이 보여준 수구정당, 정부의 협잡이다.

물론 한미관계를 위해선 민족적 자존심 정도는 희생해도 좋다는 ‘조선’을 비롯한 수구언론의 식민적 근성이 사태를 악화시킨 중요한 요인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특히 초·중·고 학생들에게까지 반미의식을 심으려 하는 등의 움직임은 갈등의 치유나 해소보다는 갈등의 끝없는 격화만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깊이 성찰해 볼 일이다’

세상에 갈등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내 조카가 며칠 전 학교에서 옆자리 짝이 이유도 없이 자꾸 볼펜으로 찌르면 어찌해야 하냐며 물어보기에 ‘아프니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당당히 말하라고 한 적이 있다.

조카가 어떻게 했는지 아직 듣지는 못했지만 ‘상대방이 힘이 세면 굴종할 수밖에 없다’고 ‘상대방이 힘세면 시키는 대로하라’고 대답해 줘야 하는가? 우리 국민이 모두 그런 자괴감을 안고 식민지 국민처럼 살아가기 원하는가? 오히려 국민을 대표한다는 정부와 정치인들이 미국에 눈도장 찍으러 돌아다니는 굴욕적 태도가 미국이 우리를 얕보게 만든다는 생각은 진정 못하는 것인가.

(조선)‘...한·미간 ‘소파(SOFA·주둔군지위협정)’ 개정 요구만 해도 국제관례 등에 비춰볼 때 미국이 문제가 된 ‘공무중 발생한 범죄’에 대한 재판관할권을 양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이제는 한·미 정부와 지도층, 국민들 모두가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때가 됐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는 팔짱만 끼고 앉아있을 작정인가?‘

‘한미정부와 지도층, 국민들’이 ‘합리적 해결책’을 찾아보잔다. 조선답지 않게 결론이 상투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문장으로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조선.
“김대중 정부는 팔짱만 끼고 앉아있을 작정인가?”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국민들이야 김대중 정부에게 사태 해결에 나서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조선이 그럴 자격이 있는가. 두 여중생의 가족과 국민에게 수치심과 민족적 굴욕감을 강요해 거대한 반미의 물결을 만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조선 아니던가.

조선은 역시나 뻔뻔함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주를 어김없이 보여준다. 무엇보다 정치든 외교든 움직이는 동물이다. '미국이 재판관할권을 양보할 가능성이 없다'고? 그럼 다시 조선에게 묻고 싶다. 누가 부시가 사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주한 미 사령관 사과만 받아도 잘 싸운 것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부시는 공식 사과하지 않았는가. 또 이제 많은 국민들이 소파의 개정이 따르지 않는 부시의 사과는 말잔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함께 싸우고 있지 않은가.

재판관할권의 양도, 소파의 개정 문제에 대한 조선의 단세포적 사고는 ‘민족정론’이라는 수사가 허구임을 드러낸다. 또한 일제시대 이후 한 번도 청산되지 못했던 외세추종 세력의 현실인식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에서 갈 길이 멀다.

오늘 일그러진 우리 현대사의 비극과 새롭게 만나며 냉전과 수구와 기득권이 한몸뚱이임을 절절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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