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천응 목사 '국경없는 마을' 제안 | | | |
| | | ▲ 안산시 원곡동의 외국인노동자센터의 전경. | | 공단도시문화로 이루어진 안산에 사는 시민들이 생존경쟁을 넘어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문화의 창조'가 중요하게 요청되고 있는 가운데 박천응 목사(안산외국인 노동자센터소장)가 안산시 원곡동의 대안문화로서 '국경없는 마을'을 제안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박 목사는 "안산에는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생산과 소비, 결과물을 둘러싼 소유와 분배,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과정에 대한 통제와 조절과 관계된 생존경쟁만이 만연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좀더 안산의 문화에 대하여 깊은 통찰과 대안적 문화 창조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안산은 불과 20여년만에 '농어촌 문화'가 변하여 '공단 도시문화'로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진 곳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가 절실한 실정이다. 지금은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서 이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창조'가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문화는 주어진 자연(自然)이 아니라 인간에 의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것으로서 한국인과 외국인 노동자 등 모든 이가 차별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 창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안산이 과거에 농어촌 문화였다가 공단 도시문화로 변하였듯이 '생존과 경쟁의 문화'인 오늘의 안산의 문화를 넘어 대안 문화로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의 창조적 노력과 변화의 과정을 통하여 형성이 가능하다고 판단, 이러한 희망을 가지고 안산외국인노동자센타에서는 안산시 원곡동을 중심으로 한 국경 없는 마을 설립을 구상 중에 있으며 1차년도 5년 계획을 가지고 공동체 형성을 이뤄나갈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원곡동 일대의 대안문화가 어떻게 꽃피워나갈지, 같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공간마련과 생활권, 문화권을 조율할지 그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안산원곡동의 대안문화로서 '국경없는 마을'이 실천과 협력을 강력히 요청된다. 이젠 안산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살게 된 지 10여년이 흘러가고 있다.
초기 안산이라는 도시의 조성 당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로 낮선 땅에 공단을 찾아 왔듯이 외국인 노동자들도 국경을 넘어 같은 문제로 안산을 찾아와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원곡동 일대만 하더라도 5천여명에 이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며 우리의 친척이자 주민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를 말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른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 임금 체불과 산재와 인권문제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는 불쌍한 사람들, 모두가 퇴근한 저녁이나 명절이면 빈 공단을 지키는 갈 곳 없는 사람들로만 보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생존과 경쟁의 문화'를 넘어서서 우리는 국적의 구별이 없는 함께 사는 주민으로서 '국경없는 마을' 형성에 안산 시민의 관심과 참여 그리고 연대함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대안문화로서 국경없는 마을의 형성을 통해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문화 형성, 외국인노동자의 사회적 권익 형성, 외국인노동자 사회안전망 구축, 상생적 지역 국제문화 형성, 차별 없는 외국인 노동자 인권보장, 사랑과 평화, 공동체로 이루어지는 삶의 질 형성, 외국인노동자의 자치 자활 향상, 귀환 외국인 노동자의 재통합 능력 향상 등이 기대되어진다.
특히 불안정한 신분의 상태로 있는 외국인들끼리 자율적인 타운형시의 촌장을 운영, 위원회에서 관리체계를 확립해나가는 등의 개선노력이 선행되야 할 것이며 이는 일산 지역의 타운 형식의 집단주거지역 추진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상통한다.
현재 원곡동의 원주민은 불과3%에 불과해 달라진 문화에 익숙하지 않는데다 옛것만 고집하는 바람에 새로운 변화로 인한 지역경제활성화에 무감각해지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제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서도 원곡동이 빠져나가는 도시가 아니라 찾아오는 지역문화와 복합문화지역으로서의 환골탈태를 기대해 본다.
다음은 박 목사 일문일답.
- 외국인노동자 운동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지역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목회를 하던 중, 92-93년 경부터 동네 주변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미 나 자신은 다른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문제를 도와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는 지역에서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나서서 외국인노동자들의 문제에 대처해 나가고 연대하며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외국인노동자와 함께 하는 일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결국 가난하게 살아왔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목회를 해 오던 중 외국인 노동자를 만나 이들과 함께 하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 외국인 노동자운동을 하시면서 갖게 되는 갈등이나 고민은 없었습니까?
"첫번째로 주체의 문제에 대하여 본다면, 처음 외국인 노동자운동을 하면서 그들을 '주체'로 보지 않고 '대상'으로 보는 잘못된 견해가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이 앞장서서 해나가면 그들은 따라와 주어야 하는 운동의 대상, 교육의 대상, 동원의 대상이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선교의 대상, 교화의 대상이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인격체로, 주체로 보지 않고 하나의 사물로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심한 말로 하면 외국인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의 이용물로 전락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운동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일체(一體)의 정신'입니다. '나와 그가 하나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종교적으로 말하면 '외국인 노동자는 90년대에 한국 교회에 찾아오신 예수님'으로서 '섬겨야 할 분'들 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외국인 노동자운동에서 한국인의 위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도적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돕는 협력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외국인 노동자 운동을 왜 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전체에 도움이 될 때가 더 많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꾸로 뒤집어 보면 '무엇인가 일한다는 것이 오히려 전체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도 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운동의 본질이 무엇인가 ?' '왜 이 일을 하려하지?' 하는 끝없는 질문이 나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남을 위한다는 것 자체가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이라면 저는 외국인 노동자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조차 사용해서는 안되고, 지금 하고있는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이 일이 결국 나를 살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고 사회를 위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함이라는 생각을 모두가 한다면 운동을 하는 모든 사람은 겸손해야 하겠지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저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지요." / 안영건 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