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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언론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도 반년이 지났다. 활자 매체에 글을 쓸 때와 달라진 점을 들라면 좀 더 적극적인 독자반응을 들 수 있다.
여러 글을 올리면서 꽤 많은 독자메일을 받았다. 거의 대부분의 독자메일이 칭찬이거나, 격려이거나, 감사의 메일이었다. 물론 이런 독자 메일을 받으면 기쁘다. 하지만,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다.
나는 세상에 완벽한 글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신의 계시를 받아 적었다는 성경도 사람의 손을 탄 이상 절대 신성한 내용들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지극히 보통사람인 내가 쓴 글들이 대부분의 사람을 만족시키고, 인정을 받을 만한 글들 뿐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내 생각은 기사의견 게시판들을 들여다 보면 확인이 된다. 수많은 반대와 비판 및 비난의 의견들도 있는 것이다.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격려, 지지를 받은 글이 독자 게시판에서는 정반대의 의견들로 뒤덮인 것을 본 적도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제대로된 비판이 있는 토론문화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흑백으로 나누는 것에만 익숙할 뿐, '관용'과 '상호인정' 및 '생산적 비판'이라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사의견 게시판을 봐도 대체로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찬성하고 좋게 봐주는 측과 반대하며 비난하는 측이다. 긍정적 비판이나 반론적 비판은 조금 밖에 없거나 아예 없을 때도 있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다르겠지만, 나는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을 지향한다. 가끔은 편하게 사변적으로 글을 쓰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논쟁이 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왜 대부분의 독자메일이 비판은 없는 칭찬 일색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에 대한 내 결론은 비판을 담기를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몇 몇 독자들은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로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문제점을 지적하기 전에 내 기사에 아주 찬동하지만, 이런 점도 있는 것 같다고 조심조심하며 지적을 했다. 자신의 비판적 의견이, 내게 반대, 또는 적대감으로 비춰질까봐 우려했다.
그런 독자들에게 그렇게까지 조심할 필요가 없으며, 비판적 의견 감사하고, 한편으로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답장을 쓰곤 했다. 그나마 문제점을 지적한 메일의 대부분이 삼가 조심하는 태도인 걸 보면서, 드러내 놓고 비판이란 걸 하기 어려워 하는 태도가 일반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독자의견 게시판을 메운 반대 의견들이 왜 메일로는 거의 날라오지 않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전적인 반대 의견에 관한 메일은 두 통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중에 한 독자는 내 답장에 대해 '답장은 기대도 안 했었다'며 되레 고마워 했다. 답장한 자체를 너무 좋게 평가해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대부분은 답장을 하지 않는다는 게 그 독자의 말이었다. 나는 사정이 여의치 않거나 너무 바쁠 경우가 아니라면 가능한 답장을 쓴다.
기사를 보고 몇 년 만에 연락을 보낸 대학후배는 이메일 주소가 사용되는 것인지 아닌지 잘 몰라서 짧게 쓴다고 했다. 대외용 메일 주소를 사용하는 사람도 많은 모양이다. 그런 경우는 어느 독자에게서도 발견한 적이 있다.
성폭력 문제에 대한 기사에 내용은 좋았지만, 구성이 산만하고 정리가 잘 되지 못했다는 지적을 한 독자가 있었다. 마침 기사를 쓸 때 내가 생각한 문제점과도 일치하는 것이어서 적절한 지적이었다고 감사의 답장을 보냈는데 되돌아 왔다. 존재하지 않는 메일 주소였던 것이다.
그때 기분이 씁쓸했다. 시니컬하게 쓰기는 했지만, 무례한 독자 메일은 아니었는데 아마도 내가 반발하거나 비난하는 답장을 보낼까봐 그런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비판의견이 담긴 독자 메일이 거의 오지 않는 이유는 무시당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거나, 정작 자신은 비판이나 비난이 담긴 답장을 받기는 싫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처음 기사를 쓰기 시작했을 때, 반응없는 밋밋한 기사의견 게시판이 고민거리였다. 내가 너무 이쁜 글만 쓰는가 하고 고민했다. 어느날 부터 내 기사의견 게시판에 불이 나기 시작했는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찬성과 반대가 뒤덮인 기사의견 게시판을 보게 되어 기뻤지만, 명쾌한 비판을 보기가 힘들어 아쉬웠다.
요즘 나는 명쾌한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내용있는 비판이 담긴 의견을 보면 반갑다. 그런 비판을 해주는 독자들이 많지는 않아도 더러 있다. 최근에 이슬람과 관련해 올린 기사들에 의견을 다는 '나그네'라는 독자가 있다. 내 기사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 본 몇가지 비판들을 올렸다.
그의 지적은 충분히 근거가 있어 보였다. 물론 그 지적들 중에는 일반적인 이슬람에 대한 시각과 인도네시아에서의 이슬람이란 특수한 상황에 대한 혼동이 있다고 생각됐지만, 결코 얼토당토 않은 지적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 의견에 대한 내 생각을 열심히 달았다.
그런데, 의견에 대한 내 생각 제시가 반발로만 느껴진 것처럼 보인다. 수긍할 만한 점은 일단 차치하고 나머지 부분의 차이에 대한 설명을 올렸는데, 내가 비판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듯이 생각된 모양이다. 그래서, 요즘은 일일이 여차저차한 부분은 인정을 합니다란 서두를 달고 나서 나머지 의견을 올려야 하는 것인가 라는 고민을 한다.
소위 대안언론으로서의 인터넷 언론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로운 글 쓰기와, 기자와 독자의 상호교류이다. 찬성의 입장에서든, 반대의 입장에서든 생산적 비판은 인터넷 언론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찬성이나 반대는 많은데 비해 비판적 지지나, 비판적 반대는 찾아보기 힘들다.
비판을 하면 적으로 간주되고, 비판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아예 적대적 입장을 취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자기 주장을 펴거나, 의견을 제시하면 그 내용의 의미보다 '태도'에 더 포커스가 맞춰진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펴는 게 자유롭고, 생산적 비판이 활성화 되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에는 제대로된 토론문화의 발전이 필요하다. 자유로운 비판 문화가 없으니, 향상을 위한 비판적 지지도 찾아보기 힘들고, 비판적 반대는 없이 비난을 위한 반대 만이 존재한다. 논쟁에서 '논'은 없고, '쟁'만 남아 토론의 무대에 황량한 물어뜯기만이 떠돈다.
인터넷이 발전하고, 대안언론이 등장하기 전 우리의 언론은 군림하는 언론이었다. 지금도 그런 경향은 다분하다. 그래서인지 기자를 바라보는 독자의 시각 속에 깍듯이 '기자님'이라 부르며 추켜세워줘야 한다는 생각도 존재하고, 반면 여태 그러하지 못했으니 독자를 깍듯이 모셔야 한다는 생각도 존재한다.
대안언론의 기자들은 대단한 존재들이 아니다. 동시에 독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존재들도 아니다. 평등한 기자와 독자의 관계와 상호교류를 지향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기존의 언론들의 일방성을 타파한 것이 기사의견 게시판이라면, 이 기사의견 게시판은 상호교류의 장이 되어야 한다.
독자도 자신의 의견을 펴고 비판을 하며, 반대로 기자도 의견과 비판을 펼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한쪽의 불평등을 요구하면서 무슨 상호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찬성도 반대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생산적 비판과 상호교류가 결핍수준이다.
칭찬 감사하다. 하지만, 문제점을 지적함에 있어 저어하지 마시라. 반대 또한 감사하다. 하지만, 손쉬운 비난 말고 내용있는 비판에 좀 더 힘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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