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와 '20대 투표율'

문화적 코드에서 정치적 코드로 변화된 '反美'를 돌아보며

등록 2002.12.08 23:45수정 2002.12.0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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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가 극성이다. 미국이 분단 이래 우리나라에서 저질러 온 숱한 범죄들보다 '심미선, 신효순양 사망사건'이 더 악질적이라고 규정짓기는 어렵다는 점에 지금의 '반미' 현상이 갖는 특징이 있다.

이 현상은 여러 모로 긍정적이다. 거시적으로는 현재의 대선 국면에서 '색깔론'이 갖는 존재적 의미를 거의 말소시켰다는 점에서(지금 "반미 = 친북". "친미는 초헌법적인 국민 합의"라는 내용의 색깔론을 일으킬 정당은 없을 것이다), 미시적으로는 각 국민들이 전통적으로 미국에 대해 가져온 일종의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을 발생시킨 기제는 무엇일까? 이것을 규명하기 위해 다양한 접근들이 시도되고 있는데,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는 '반미'라는 정치적이고 무거운 주제를 일종의 문화적 코드로서 풀어낸 것이 직접적인 요인인 듯하다. 즉 쉽게 말하면 '유행을 잘 탔다'는 이야기이다.

요즘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동인은 '문화적 코드'에 있다. 2002년에 벌어진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반미'와 연관된 측면에서 올해 처음 발생한 '오노의 금메달 강탈(?)사건'은 스포츠라는 친문화적 소재를 통해 정치적 주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

'노풍'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경선'이라는 흥행요소 충만한 정치적 실험이 '정치적으로 덜 알려진'노무현의 신선한 이미지 및 '인 노사모라는 문화적 코드와 맞물리면서 기존의 정치에 식상해 있던 국민들에게 '노풍'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월드컵'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올해의 대표급 문화적 코드였고, 이 강렬한 힘은 '히딩크 신드롬', '정몽준 돌풍'으로 연결되었다. '노-정 단일화'과정에서도 국민 여론조사라는 문화적 요소가 담긴 정치적 실험이 흥미있게 진행됨으로써 지금의 '단풍'을 발생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맥락에 지금의 '반미' 현상이 연관되어 있다. MSN 메신저나 각종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표시 일색이다. 평소에 별반 정치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웬지 흥미가 끌리는'그 문화적 유행에 동참했다.


광화문 시위 역시 상당히 문화적이었다. 그 시위가 '한총련' 등의 운동 단체가 주도한 거였다면 많이 참여해야 1000~2000명 수준이었을 것이나, '촛불 시위', '연예인들도 참여하는 시위', '평화적 시위'라는 문화적 코드가 듬뿍 더해지면서 5만명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시위 인파를 낳았던 것이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국가적 자존심에 입은 상처'를 개개인의 미시적인 자존심의 상처로 환치하게 되면서 국민의 정치적 공분으로 폭발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젊은 층, 특히 20대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지난 1997년 대선만 해도 전체 투표율이 80.8%였으나 20대 투표율은 69.2%에 그쳤다. 그러나 사회 전반적으로 '정치 환멸론'을 유포시키는 계층을 그들과 일치시킬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을 뿐이며, '투표할까'하다가도 다른 문화적 이슈(연애라든가, 친구들과의 약속, 영화, 여행 등)가 겹치게 되면 거리낌 없이 투표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대학내 부재자 투표함 설치하기'가 대표적인 20대 투표율 높이기 운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관위의 강직한(?) 검열로 인해 실제 투표함이 설치되는 학교는 서울대, 연세대, 대구대 등 소수에 그칠 듯 하고, 이로 인해 추가로 확보될 수 있는 표는 만표 안팎이라는 점에서 직접적 효과를 창출하는 데에는 실패한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 대선을 10일 남겨둔 상황에서, 20대의 투표율을 올리기 위해 어떠한 정책적 대안을 사용해야 할까. 필자는 올해 여러 영역에서 짭잘한 재미를 본 '문화적 코드'의 활용을 다시금 제안하고 싶다. 사실 이 문화적 시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다름아닌 20대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보수화'가 아니라 '정치적 무관심화, 탈정치화'된 이 계층은 정치 같은 엄한 주제 대신 문화적 이슈를 보다 그들의 삶에 민감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의 환경은 고무적이다. 일단 '반미'라는 정치적 주제가 문화적 코드를 통해 사회 이슈화되는 데 성공하였다는 점이 그렇다. '반미'에 심정적으로 동감하는 20대들이 이것을 계기로 삼아 '대통령선거'라는 또 다른 정치적 주제에 대해서도 문화적인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가 중요하다. 유권자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라는 원론적 입장의 강조도 중요하겠지만, 다양한 '투표 참여'를 내용으로 한 문화적 퍼포먼스와 '▦'처럼 MSN에 [vote][투표] 등의 특정 문자 달기 운동, 문화예술인 계층에서의 참여 운동 등을 시도함으로써 '정치적 무관심'에 익숙한 계층을 대상으로, 무거운 '정치'의 문제를 문화적으로 풀어내는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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