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투쟁단'이 동포 사회에 남긴 것

[미국 현지분석] "우리의 반미는 미국을 위한 구미(求美)운동"

등록 2002.12.13 07:44수정 2003.01.0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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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LA> 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웠던 지난 6월, 전국민이 축구에 열광하며 거리로 뛰쳐나와 한민족의 신명나는 대동단결을 세상에 보여주었던 그 붉은 물결의 함성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날의 감동에 가리워져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두 여중생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미군의 책임회피와 한국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이 한반도에 또 한번의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물결은 기쁨과 열정에 찬 환희의 함성이 아니라 슬픔과 분노가 담겨 있는 결연한 목소리입니다. 꾹꾹 참아내고 견뎌내느라 잊은 줄 알았다가 다시 찾은 한국인의 자존심과 당당함을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다시 한 번 사람들을 거리로 모이게 하고 있습니다."

백악관 항의 방문차 미국을 찾았던 방미투쟁단 일행은 동포들을 만날 때마다 힘을 주어서 강조했다. "어디에 살고 있든지 한국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지낸다는 믿음을 이미 주고받지 않았습니까?"

LA 공항에 도착해서 환영을 받는 방미투쟁단 일행
LA 공항에 도착해서 환영을 받는 방미투쟁단 일행박우성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알기만 하면 미국사람들도 우리의 주장에 동의를 하고 개인적으로나마 사과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방미투쟁단의 한총련대표 이효원양(인하대 2학년)은 하루하루 일정이 진행되어가면서 책임감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에 계신 동포여러분이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특히 워싱턴에 있을 때 남캐롤라이나주에서부터 일곱시간을 차를 몰고 와서 시위에 참여하고 돌아간 고등학생들이 너무나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방미투쟁단은 일행의 일정진행을 전적으로 맡아주었던 각 지역 후원회들의 성원은 물론 재미동포들의 따뜻한 인사말과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ADTOP3@
방미투쟁단의 한총련대표 이효원양
방미투쟁단의 한총련대표 이효원양박우성
LA에서 촛불시위가 있었던 12월 9일 방미투쟁단은 오전의 기자회견이 끝난 후 한인회를 방문해 환대를 받고 점심을 함께 했다. 한인회장 하기환씨는 "여러분의 활동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입장인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해 한국에서의 반미시위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또 다른 한인회 관계자는 "한국의 국력이 더 강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해서 보수계 한인단체들의 반응이 우호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방미투쟁단 일행을 내심 놀라게 하기도 했다.


물론 한인회의 전반적인 의견은 한미간의 관계가 껄끄러운 사이로 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지만 "미국에 살고 있어도 근본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한인회 부회장 이한순씨의 말은 동포사회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LA 한인회를 방문해 식사를 함께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LA 한인회를 방문해 식사를 함께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박우성
반미시위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러 왔다는 재향군인회 회원들 덕분에 촛불시위에서의 동포들의 반응은 물론 더욱 다양해졌다. 행사장소 제공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함으로써 행사 자체가 무산되게 만들 뻔한 로욜라법대측에 대한 항의에서부터 "사고로 죽임을 당한 여중생 언니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어린이의 눈물어린 애도와 "무슨 말도 안되는 반미시위냐. 우리나라는 전시중이다. 전시중의 사고에 대해서 군인한테는 책임이 없다"는 재향군인회 회원들의 다소 격렬한 거부감까지 LA 지역 동포들의 여러가지 의견들이 조율되지 못한 채로 쏟아져 나온 촛불시위 현장이었다.

@ADTOP4@
촛불시위때 마련된 빈소에 헌화하고 영정을 바라보고 있는 시위참석자
촛불시위때 마련된 빈소에 헌화하고 영정을 바라보고 있는 시위참석자박우성
촛불시위와 동포간담회를 끝으로 미국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친 방미투쟁단의 한상렬 단장은 동포간담회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통해 "머나먼 타국 땅에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삶터를 개척해오신 동포여러분들을 존경한다"며 "그러나 조국이 주권국가로서 제대로 대접받고 자주적인 힘을 갖고 있을 때 해외동포들도 자존심과 권리를 지킬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리고 예의 머리 둘 달린 아이 수수께끼를 또 한번 인용하며 모든 동포가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함께 민족자존심 회복을 위한 활동을 벌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상렬 단장은 마지막으로 "우리의 반미는 미국을 죽이자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미국이 제대로 된 길로 나아가게 하겠다는 구미(求美)운동이다"라고 말하고 해외동포뿐만이 아닌 상식과 양심을 갖춘 모든 미국인들의 참여를 호소했다.

방미투쟁단 집행위원장 김종일씨는 앞으로 국내의 반미투쟁은 더욱 분명한 방향성과 내용을 가지고 진행이 되어갈 것임을 전망하면서 해외동포들이 각 지역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고 국내의 반미운동을 지원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생각에 잠겨있는 방미투쟁단 단장 한상렬목사
생각에 잠겨있는 방미투쟁단 단장 한상렬목사박우성
방미투쟁단이 이번의 LA 촛불시위에서 겪었던 두 가지 어려움은 그 하나 하나가 미국 내에서의 여중생 사건 공론화가 당면하고 있는 부담감을 분명하게 보여준 상징적인 사안들이었다.

그 첫번째인 로욜라법대측의 행사장소 거절. 로욜라법대측의 일방적인 약속취소는 사실 상당히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학교측이 사전에 행사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던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국제적인 비판여론을 감수하면서까지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부시행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여전한 높은 지지율의 실제를 확인시켜주는 사건으로 보여진다.

방미투쟁단이 뉴욕에서 유엔을 방문하고 백악관 앞에서 철야농성에 돌입할 때까지도 미국의 대다수 언론은 이들의 활동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물론 방미투쟁단과 현지후원회의 미국내 언론사에 대한 홍보 과정이 원활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미언론의 태도는 그 이전부터도 이 사건이 갖고 있는 의미와 한국인들의 요구를 소극적으로 대하거나 일부에서는 작의적인 왜곡까지 시도해가며 축소시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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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일부 한인동포들의 반미운동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감과 공포이다. 미국 내 한인들은 특수한 사정을 안고 있다. 소수계로서 차별당하는 것에 분노하면서도 그러한 차별을 단지 개인적인 차원으로 국한시켜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또 한국정부가 취해온 당당하지 못한 대외관계로 인해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다. 대다수 재미동포들의 의식은 재향군인회로 대표되는 '미국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는 보수층의 기형적인 부채의식과 떠나온 고향과 사람들의 소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국내의 사정에 나름의 의견을 가지고 있는 향수병의 중간 어디쯤에 놓여 있다.

촛불시위 현장에 나타나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내 아들 다치면 책임질 거냐"라며 으름장을 놓던 한 재향군인회원의 발언은 이러한 동포들의 솔직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촛불시위를 반대하는 6.25참전동지회 회장 김봉건씨.
촛불시위를 반대하는 6.25참전동지회 회장 김봉건씨.박우성
촛불시위에 참여한 미국인들은 미국의 위험한 패권주의와 독선을 염려하는 차원에서 한국의 여중생 사건과 반미의식의 확산을 바라보고 있다. IAC(Internationa Action Center) 회원들의 시각은 오히려 동포들보다 직설적이고 과격하다.

"미국의 식민종주국 같은 태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의 여중생 사고와 그 재판과정의 불공정함은 전세계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미군범죄들 중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거침없는 그들의 발언은 재미동포들로서는 어쩌면 부러울 수도 있는 자신감이라고 하겠다.

방미투쟁단의 김종일 집행위원장은 이번 백악관 항의 방문의 목적과 성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한 촛불 시위 참가자의 옷깃에 달려있는 배지가 눈길을 끈다.
한 촛불 시위 참가자의 옷깃에 달려있는 배지가 눈길을 끈다.박우성
"방미투쟁단의 목표는 네 가지다. 첫째, 부시대통령과 미행정부가 직접적으로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드는 것. 둘째, 미언론과 국제여론에 대한 환기를 통해 압력을 가하는 것. 셋째, 국내투쟁의 확대와 활성화. 넷째, 미국 현지의 투쟁주체들의 확립. 이 가운데 세 번째, 국내투쟁의 확대와 활성화는 국내 언론의 적극적인 협력과 대선 일정 등에 맞물려 상당히 효과적인 결실을 맺었다고 본다. 또한 네 번째는 방미투쟁단의 현지 후원회조직이 앞으로의 투쟁과정에서 적절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뚜렷한 그림을 그려낸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첫 번째와 두 번째인 미국에 대한 책임을 묻고 언론들에 의해서 우리의 투쟁이 알려지도록 하는 실질적인 부분은 나아진 것이 없다고 본다. 결국 범국민적인 운동을 통해서 국제여론을 이끄는 길밖에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었고 이러한 방향은 이미 그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포들에 의해 전세계의 한민족이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것을 더욱 가속화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미주동포들의 적극적인 도움과 지속적인 활동을 기대하고 있다."

12월 9일 LA 지역에서 열린 촛불시위
12월 9일 LA 지역에서 열린 촛불시위박우성
백악관으로의 항의 서한 전달이나 현지 언론들과의 접촉에 있어서 전술, 전략이 없었다는 비판에 대해서 한 일행은 "우리는 당당히 우리의 요구를 전달하고 시위를 벌이러 온 것이다. 사과를 구걸하거나 SOFA 개정을 애원하기 위해서 작전을 세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물론 현지 언론이 상당히 냉담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더라도 방미투쟁단이 스스로 밝힌 목표의 하나인 여론환기를 제대로 이루어낼 만한 철저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사 섭외과정 등에서 보여진 것 같이 이러한 종류의 활동 경험이 아무래도 부족한 현지후원회의 미숙함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지 동포활동가들 가운데 일부는 방미투쟁단이 동포운동의 특수성과 나름의 목표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다. 방미투쟁단 남가주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일단은 국내의 투쟁열기가 달아오르고 우리가 그에 호응해서 협조해가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해 앞으로의 활동방향이 당분간은 국내의 성과를 담보로 동포사회의 힘을 모으는 과정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한인타운 올림픽가에서 사진선전전을 벌이기에 앞서 묵념을 올리고 있는 방미투쟁단 일행
한인타운 올림픽가에서 사진선전전을 벌이기에 앞서 묵념을 올리고 있는 방미투쟁단 일행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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