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크리스마스 카드

친구가 준 사랑의 선물

등록 2002.12.23 18:42수정 2002.12.2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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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 CHRISTMAS!"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인사말.
이제는 한국어보다 더 친근해 너무도 자연스런 말이 돼 버렸네요. 더욱이 제대로 영어를 모르는 시절에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입에 달고 살았고, 반드시 영어로 "MERRY CHRISTMAS"라고만 써야 되는 줄 알았던 순진함을 보이기도 했어요. 아차,'MERRY'를 'MARRY'로 쓰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기억나요.


요즘은 이메일 카드며, 건성으로 하는 인사말이 일상이 돼 버렸기 때문인지 오늘 조심스레 건네는 친구의 크리스마스 카드가 무척 반가웠답니다. 간만에 점심이나 같이 할 요량으로 만났더니 친구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끄집어 내며 부끄러운 듯 "자~"라는 말과 함께 카드를 들이밀더라구요. 느닷없는 카드가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어색해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고맙다!"라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팬시점이며 지하철을 오가면서 수북히 쌓인 카드 가판대를 보며 예전과 달리 손길이 많이 가지 않은 모습이 뭔가 모르게 허전하기도 했는데 역시나 친구는 연례행사인냥 어김없이 올해도 정성스레 한사람 한사람을 위한 카드를 준비하며 따뜻함으로 이 겨울의 추위를 달래 준 셈이네요.

어찌 보면 '하루 지나면 그만인데..'라는 생각에 카드 따위에 신경쓰지 않을지 모르지만 코흘리개 초등학교 때부터 때로는 즐거움을 주는가하면 때로는 은연 중에 스트레스 주기도 했던 것이 바로 크리스마스 카드였어요. 그러면서 지금은 빛바랜 추억으로 마음 한켠을 훈훈하게 해 주곤 해요.

초등학교 때는 주머니에 동전 몇 개가 고작이고, 그 또한 군것질 하기 바쁜데 카드를 산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답니다. 그 당시에도 몇 장만 사도 금방 돈이 엄청 불었으니 말이죠. 그래서 값싼 종이를 구입해, 반짝풀이며, 색종이 따위로 한껏 치장해 나름대로 그럴 듯한 카드를 만들었답니다. 이것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나름대로 재주가 늘어 물감 묻힌 칫솔을 손으로 튕구기도 하고 시중에 파는 카드처럼 입체로 만들려고 스프링 등을 이용해 카드를 열면 "퐁~" 튀어나오는 것에도 도전해 봤어요.

지금은 방학식이 다소 늦어졌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 바로 전날 즈음이라 방학 동안 얼굴을 못 보는 친구들에게 줄 카드를 주기 위해 밤샜던 적도 어렴풋이 생각이 나네요. 그러면서 유난히 샘 많은 시절, 받은 카드 수가 무슨 인기도라도 되는 줄 알고, 적게 받으면 남몰래 많게 보이려고 애쓰고 많게 받으면 은근히 다른 친구들에게 다가가 몇개 받았냐라고 물어보며 제가 받은 카드를 당당히 자랑해 보이기도 하는 깜찍한 짓도 서슴지 않았어요.

혹여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남자 친구가 카드를 주면 어찌나 좋은지, 또 그동안 하지 못한 말들을 고마움을 전하기는가 하면, 오랫동안 다투고 토라져 있던 친구에게도 화해의 뜻으로 카드를 보내면서 다시 친해진 경우도 있었어요.

10년을 내다보는 지기가 보낸 오늘 카드에는 "나의 성장에 촉진제가 돼 주는 친구"라는 아주 제법 어른스러운 말이 어릴 적 "우리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라는 깜찍한 말을 대신합니다. 그러면서 둘 다 천방지축인지라 만나면 으르렁거리는 사이였는데 이런 솔직한 마음도 전하게 돼 한결 친구가 예뻐보이기도 하네요. 아마 얼굴 맞대고는 닭살 돋아 하지 못한 말을 카드를 빌려서나마 하고 싶었나 봅니다. 하지만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데 인색하게 굴지 말자, 후하게 써~"라며 은근한 압력을 주는 친구. 까짓 것 한방 쏘죠? ^^


오늘 친구의 크리스마스 카드로 저는 비싼 선물을 받고 싶었던 그 마음을 접고 차라리 내가 먼저 작지만 손수 적은 카드 한장이라도 지인들에게 선물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제나 먼저 받길 바랬는데 내가 먼저 다른 이에게 베푸는 것도 그 이상의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새삼 깨닫게 되네요.
어린 시절, 그 많은 학급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써 가며 손수 찾아가 카드를 주는 열정만큼은 아닐지언정 고마웠던 지인들에게 소박하게나마 마련한 카드로 올 한해 동안의 고마움을 되새겨 보는 것도 괜찮겠죠?

저도 간만에 친구에게 사랑한다고 그리고 언제나 나에게 소중한 가족들에게 직접 산타가 돼 커다란 '하트 표시'가 담긴 카드로 사랑을 듬뿍 전해야겠어요.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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