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지지에 대한 반미 이미지론의 역풍

-노무현의 딜레마3

등록 2002.12.30 13:52수정 2002.12.3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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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무현 당선자가 범대위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언급한 발언에 대하여 반미관이 후퇴한 것 아니냐는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반미시위를 자제해 달라고 했으니 범대위측의 실망은 그렇다고 쳐도 불평등한 대미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비판을 받을만 하다.

그러나 이 같은 예를 들어 노무현의 대미관이 변했다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회색분자 규정의 공격 논리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보수와 수구의 노무현 딜레마 집어넣기에 말려 들어가는 것이다.

사진 찍으러 가지 않겠다, 미국에 굽신하지 않겠다는 노무현의 발언은 기존의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자들의 행태에 비한다면 파격적인 발언이었다. 이 때문에 많은 반향과 공격을 불러일으킨 가운데 노무현을 지지하는 층을 형성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정운현은 이 대목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대다수의 젊고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신세대 유권자들에게 노무현은 '자주의 상징'으로 비쳐졌음직도 하다. 미국에 대해 할 말을 하고 나아가 미국에 대해 'NO!'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이 한 사람 정도는 이제 나와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시대의 상황 속에서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은 등장했고, 또 그런 신세대들의 표로 그는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마이뉴스 2002년 12월 30일자

젊은 민족주의 성향의 신세대들이 미국에 대해 강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노무현을 상정했고 이것이 신세대의 표를 이끌었고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 말이다.

"이번 발언으로 그간 노 당선자에게 상징지워졌던, 그리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받았던 '자주적 이미지'는 상당히 상처를 입게 됐다."-정운현의 글

여기에서 중요한 말은 무엇인가. 상당히 상처를 입게 되었다는 말에 주목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말이 아니다. '자주적 이미지'라는 부분이다.

보수나 수구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부분이자 노무현의 딜레마를 구성하는 부분이 이미지 부분이다. 보수 수구의 공격을 까놓고 이야기하면 노무현은 실체가 없이 이미지를 가지고 젊은 애들의 표심을 잡았을 뿐이라고 공격한다. 그래서 불안하다는 논리를 확장시켰다. 그러니까 정책적인 비전이나 내용, 능력이 없는 존재로 그리면서 정치적인 공세를 계속했고 이는 앞으로 집권기간 내내 공격의 표적이 될 전망인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과연 반미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아니, 단순히 이미지 때문에 노무현을 지지했을까. 그러한 이미지 때문에 지지했다면 권영길이나 김영규를 지지하지 않았겠는가

아니, 노무현이 과연 반미성향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 그는 경선과정에서도 자신은 실용적 용미주의자라고 누차 이야기 했다. 대선기간이 아니라 경선과정에서 이미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굽신굽신하지 않겠다, 사진찍으로 가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굴욕적인 대미 관계에 대한 변화를 이루겠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실용적 용미주의자인지 반미주의자인지 구별할 수 있을만한 단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동안 대미관계에 대한 굴욕적인 저자세의 풍토가 노무현의 말을 크게 받아들이게 했을 뿐이다. 더구나 수구 보수언론의 확대 해석을 통한 부풀리기가 더 주요하게 작용하였다. 중요한 것은 이 부분이다.

이러한 부풀리기는 당장에 보수층의 혐오감을 불러일으켜 노무현을 죽이는 작용을 하게 되지만 그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반미 이미지를 부풀려 실체보다 지나친 지지를 가지게 하고 이를 노무현이 채우지 못할 경우에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변절이니 회색분자니 하는 식의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혐오감을 준다. 이는 결국 모두 다 안된다는 식의 냉소주의와 탈정치로 연결된다. 결국 보수 수구층이 기득권을 유지해주는 개혁층의 정치불신을 가속화 한다.

언론의 이미지 부풀리기와 이미지와 실체 사이의 괴리 트집잡기 전략은 먹혀 들어가는 것이고 노무현은 딜레마에서 헤매게 된다. 이는 개혁세력의 분열을 의미한다. 지금 이미지 운운은 그 과정이다. 이미지가 아니라 노무현은 정책때문에 지지했다. 그래서 누누하게 노무현은 정책대결을 강조했다.

사람들이 노무현을 진짜 지지한 것은 정책적 역량 때문이다. 단지 반미 이미지 때문이 아니다. 남북 분열을 해결할 수 있는 대북정책, 지역 구도를 깨는 정책적 역량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책을 말했다. 그런데 노무현은 미국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을 보인 적이 없다. 그가 말한 것은 굽신굽신하지 않겠다. 사진찍으로 가지 않겠다는 행태적인 언급뿐이다.

또한 소파를 개정하겠다는 정도다. 그러나 소파를 개정하지 않겠다고 다시 후퇴한 적이 있는가. 여기에서 정책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이미지에 반대되는 실체의 개념으로 정책적 능력 여부가 주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이들은 노사모로 집약된다고 할 수 있다. 노사모는 반미성향 때문에 결성되지 않았다. 그는 노무현의 이미지가 아니라 실체를 보고 자발적인 조직 운영을 통해 힘을 실어준 것이다. 반미 이미지 때문에 지지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당이라고 할 수 있는 개혁적 국민정당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노무현을 지지하는 것이 반미 때문이었는가. 유시민은 정몽준 사태 다음날 무엇 때문에 표의 이탈을 막기 위해 노력했는가. 이미지 때문이었는가. 아니다. 노무현의 실체 때문에 지원하고 발버둥을 쳤다.

노무현의 대미관이 변했다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결국 보수수구의 이미지 논리에 말려드는 것이고 개혁 세력의 발목을 잡는 딜레마 구조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이미지만 가지고 지지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왜 노무현이 촛불집회에 참가하지 않고 서명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정운현은 이때부터 노무현이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역으로 보수층의 표를 끌어들이기 위한 일종의 전략을 작용했다는 맥락으로 말한다.

노무현의 미국에 대한 발언은 굽신굽신하지 않겠다, 사진찍으로 가지 않겠다 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한다. 지금 노무현이 미국에 굽신 굽신했나 아니면 사진을 찍으러 가겠다고 했나 소파 개정을 하지 않겠다고 하나.

이렇게 이야기하면 '친미적 자주'라는 발언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문제제기 할 지 모른다. 굴종적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과거에 어떻게 쓰여왔는가가 아니라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가를 봐야한다. 그것은 투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냐고 할 지 모른다.

솔직해지자. 미국이라는 변수를, 북한은 물론 러시아 중국, 일본이 있는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공화정을 이끌어가야 하는 수장이 미군을 단 번에 철수시킬 수 있는 지를 말이다. 아니, 적대적인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지 말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자본주의 체제와 경제수준과 규모를 유지해야 하는 이가 말이다. 무엇보다 친미적 자주 발언은 소파개정을 하겠다는 불평등한 관계 개선 노력과는 별개의 발언이다. 즉, 구체적인 정책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솔직하게 한국 대통령이 되어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비판적 지식인이나 시민운동가, 기자가 아니라 굴종이 아니라 어려움에도 뭔가 하려는 노무현이 되어서 생각해 보자. 시간을 달라지 않나!

정책과 이미지를 구별하지 않으면 친미적 자주라는 발언이 가지는 이미지만을 문제삼을 뿐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노무현이 정책을 이야기한 게 없다. 우리는 이미지만을 가지고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을 뿐이다.

노무현이 대선기간 내내 강조한 것은 자신은 시민운동가가 아니고 대통령 후보임을 강조했다. 나중에 책임질 수 없는 활동을 표를 위해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것이 거짓말이고 표를 위한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거짓 여부보다 우리나라의 정책가 수장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는가와 연관되는 문제이다. 노무현은 법률가이기 때문에 법과 원칙을 누누하게 강조하지 않았나. 그것을 모르고 이미지만을 가지고 지지했다면 실수다.

권영길이나 김영규이라도 대한민국 청와대에 들어간 다양한 이해가치들을 조율하고 반영해야 하는 제도의 틀에서 움직일 수 있는 여지의 비좁음을 말한다. 남한이라는 세계 전략적, 지정학적 위치에서 남한의 수장이 선택할 정책 여지가 과연 제도권 밖의 원칙론을 감당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다.

기껏 이야기 해봤자 굽신 굽신 하지 않겠다거나 사진찍으러 가지 않겠다는 정도다. 그것만으로도 난리가 나는 대한민국이다. 소파에 개정에 대한 의지만으로도 너무나 벅찬 정치경제학이 걸려있다.

그것은 단지 국민의 뜻은 반미인데 정책가 수장들은 굴종적이냐는 물음이 타당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아직 국민의 시위가 적다는것을 말한다. 청와대가 아니라 미국을 향한 움직임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시위는 계속되어야 한다.

자, 노무현이 촛불시위를 자제하게 했다고 하자. 노무현에 대한 비난이 빗발친다. 그것은 당연한 기계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이는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이 자제하게 하는 것과 다른 맥락이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자제하게 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미국에 대한 굴종적인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책략이 들어있다.

그런데 노무현이 그런 배경으로 했는가. 나에게 힘을 실어달라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굴종적인 자세를 취하기 위한 배경으로 했다고 몰아 붙일수록 좋아하는 것은 조중동과 한나라당, 보수 수구층이다. 그것은 분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공격을 당했을 경우 노무현은 굴종적인 자세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게 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받은 개혁세력의 분열적 상처가 쉽게 가라앉을까? 그런 중에 노무현의 해명에 다시 보수층과 조중동, 한나라의 집중 포화를 맞게 되고 그 사이 노무현은 그마나 있던 지지기반 마저 붕괴죌 가능성이 크다. 이런 와중에 개혁적인 세력의 분열과 쇠락을 가져온다.

노무현이 나에게 힘을 실어달라는 암시가 중요하다. 노무현에게 누가 있나.

지금 필요한 것은 노무현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노무현이 아니다. 노무현에게, 대미관계를 적어도 굽신굽신하지 않을 정도로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힘을 주는 것이다. 비판은 이미지 기대 충족 여부가 아니라 냉정한 구체적인 정책을 두고 정책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시위는 계속 되어야 한다. 단순히 노무현을 비판하고 개혁 세력이 분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 대한 항의가 목적이어야 한다. 부시가 '반미시위가 거센데 왜 조치를 취하지 않는가'하는 제기가 들어올 때 노무현이 '내가 말려도 소용없다'는 식의 반론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노무현이 지지부진하고 소파를 개정하지 않는다면 가차없이 비판해야 한다. 지금은 우선 신뢰 시간이 필요하다. 노무현을 잡아먹으려는 이들은 널려있다.

지금 무엇보다 노무현이 딜레마 상황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 필요하다. 이는 한국이라는 정치경제학, 지정학적 현실에서 개혁적인 누가 들어가도 마찬가지일 수 있는 딜레마 구조를 인정해야 한다.

단지 이미지만을 가지고 문제 삼으며 이지미적인 상상력을 통해 노무현을 공격하는 것은 보수 수구의 이미지 딜레마 조작하기에 말려드는 것이다. 또 다시 분열과 이를 통한 냉소주의의 시작이다. 다시 거꾸로 퇴행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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