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두려운 사람들

아이들에게는 방학이 없다

등록 2002.12.31 08:38수정 2002.12.3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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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진도도 다 나가고 학기말 성적까지 처리가 끝난 2월 개학. 다시 봄방학이 시작되는 비효율성 때문에 방학이 12월말에 시작됐다. 대신 1, 2월 두 달 동안 방학이 계속되면서 가정에서는 걱정이 한 가지 더 늘었다.

방학이 되면 '오냐, 오냐'해서 키운 자식들과 부모의 통제권을 벗어난 자녀와의 갈등 때문에 또 다른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밤낮이 바뀌는 자녀들의 불규칙인 생활 때문에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경제력이 있는 가정에서는 방학 동안 어학연수를 보내거나 고액과외를 받는 등 방학이 개인의 성취감을 맛보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서민들의 가장에서는 이웃 아이들이 다 다니는 학원에 떠밀리다시피 보내야 한다.

경쟁사회에서 놀고 있는 자녀를 보고 있는 부모들의 마음은 불안하다. 따지고 보면 사회가 감당해야 할 마땅한 교육시설이 없는 우리의 여건에서는 서민들은 방학이 두렵다.

한국무역협회(www.kita.or.kr)가 발간한 '202개 경제. 무역. 사회 지표로 본 대한민국'이라는 책자에 따르면 GDP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96%로 미국 그리스 등을 제치고 1위에 올라 우리나라의 과도한 교육열을 반영하고 있다. 이 자료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3%로 덴마크(7.17%)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펴낸 '경제사회여건 변화와 재정의 역할' 보고서에도 지난 98년 초·중·고교 과정에서의 과외비는 국내총생산(GDP)의 2.9%로, 12조8866억원에 이른 것으로 추정됐다. 이 보고서는 지난 77년 1256억원이던 사교육비가 90년 2조1456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98년에는 12조원을 넘어섰다.

방학은 했지만 아이들은 학교만 안갈 뿐 방학이란 없다. 방학 동안 적게는 서너 군데, 많게는 일곱여 군데까지 학원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 이 정도라면 중고생들의 생활이란 비참하다.

이름만 방학이지 방학 다음날부터 보충수업이 바로 시작된다. 말이 자율적이지 수당문제 때문에 학생들의 자율적인 참여가 보장되는 보충수업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기적성이라는 이름의 보충수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보충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학원에서 독서실로 하루 15시간 내지 20시간을 과외로 보내야 한다.

세월이 가고 정권이 바뀌었지만 이러한 반교육은 바뀌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입시 위주의 반교육이 이번 겨울방학에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재편의 신자유주의 바람은 자립형 사립고의 확대와 경제특구의 외국인학교의 설립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는 국가가 국민교육을 책임지는 방향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의 논리에 교육을 맡겨놓을 경우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사회적 지위를 세습하는, 시합 전에 승부가 결정난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올바른 교육정책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다. 교육이 계층상승의 수단이 된 사회에서 학부모들의 과열만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가정교육을 포기하는 보모들의 의식 또한 지탄받아 마땅하다.

'공부만 잘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그릇된 부모들의 교육관은 아이들로 하여금 무력한 마마보이로 만들고 있다. 남이 하기 때문에 시키는 과외란 부모의 불안심리 해소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아이들에게는 삶을 파괴하는 무거운 짐이다.

인간을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는 이유는 사회 속에서 사람의 역할과 구실을 배워 사회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 엄마들은 자신의 자녀가 영어도 잘해야 하고 피아노도 잘 치고 웅변도 잘하고 태권도를 잘 하고... 하는 만능인간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모든 아이가 똑같을 수 없다.

진정으로 경쟁에서 이기는 길은 남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다르게 키워야 한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찾아 그 가능성을 개발해주는 교육은 아이도 살리고 가정도 살린다. 이를 위해 방학은 부모의 욕심 때문에 학원으로 무한경쟁에 내몰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창의적인 공부, 자기주도적인 학습은 아이들과 함께 방학 계획을 세워 책임과 보람을 함께 느낄 때 가능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 이야기
(http://report.jinju.or.kr/educate/)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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