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 목표가 눈 앞에… "

자전거 타고 중국보기[2-24]

등록 2002.12.31 13:54수정 2002.12.3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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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늦은 기상 시간.

마당에 매어 놓은 늠름한 중국산 세퍼트의 우렁찬 짖음에 잠은 벌써 멀리 달아났고, 이렇게 깨어나서 독립운동사를 기록하는 심정으로 나의 자전거 장정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쓰기 시작한다. 해초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듯 아직도 줄기차게 코를 골고 있다.

이번의 장정에서 초안으로 A4용지 80여장을 썼다. 무슨 말을 그리 많이 썼을까? 하지만 아직 빼먹고 쓰지 못한 이야기가 더 많을 것이다. 아니 내가 기록을 하는 한계가 여기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정녕[靜寧]현에서 수많은 구릉을 넘으면서 느낀 감동을 못 난 내가 감히 글로는 써 낼 수 없을 것이다. 그 뿐인가? 요리를 직접하느라고 수 없이 들어가서 본, 상상을 초월하는 주방의 지저분함은 어떻게 써 낼 것이며, 양산[梁山]현에서 동평[東平]현까지의 목가적인 농촌 풍경을 글로 엮어낼 자신도 없고.... 많은 아쉬움이 느끼어진 환경에 대한 중국인민들의 의식은 어찌할까나?

또 우체국에서 우리의 장정의 통과 확인 받은 이야기는 어떻게 처리를 할 것이며, 진[鎭]소재지에 꼭 있는 것과 없는 것, 그리고 있어야 할 것 등에 관한 이야기는 어떻게 해야할까?
시간을 보니 아직은 기상까지 20여분이 남아서 나중에 돌아가면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까봐 적어 놓는다.

어제 마참[馬站]진에서 묶으려다가 한 구간 더 가자는 영철의 말을 듣고 이어서 달렸는데, 번화가를 지나자 마자 공사를 하니 돌아가라는 안내 표지판과 함께 친절하게도 안내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너희 차는 작으니 그냥 가란다.

"아이구 고맙습니다 따꺼[大哥]!!!"

중국은 도로 공사를 하면 에누리없이 양방모두 통제다. 길을 막아 버리고는 돌아서 가라고 하는데, 오늘은 위대(?)하신 우리를 알아보고(?)는 가라는 것이 아닌가?

시간은 벌써 17시 반이나 되었고 일조[日照:르짜오]에서 온다는 아내는 오려면 아직 멀었으니 한 구간을 더 가자는 영철의 말에 동의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짧아진 가을 해는 이미 서산에 걸터 앉았고, 바람은 차졌으며, 해초는 힘든 기색이 알리고..... 나도 그쯤에서 그만 타고 싶었다.

얼마를 더 달렸을까? 이미 어두워졌고, 더 이상 타기가 힘에 부쳤다. 망설이지 않고 해초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소리를 쳤다. "샹처[上車]" 그렇게 우리는 차(자행차:自行車)를 차(기차:汽車)에 실고, 우리의 지정석인 뒷자리에 올라앉았다.

한참을 달렸는데 예상을 한대로 길이 막혀 있었다. 언덕의 꼭데기에 흙을 쌓아서 길을 막아 놓았다. 차가 갈 수가 없는 것이다.

a

차가 모두 서있고..... 다음날 아침에 찍음

그 때다 어떤 촌부[村夫]가 나타나서 조금 뒤로 돌아가서 언덕 중간에서 좌회전을 하면 빠져나가는 길이 있다고 알려 주는 것이 아닌가. 아니구 친절하기도 해라 고마운 아저씨 날도 어두운데 집에 가셔서 저녁을 드시지 않고, 우리를 안내를 해 주시는구나라고 고맙게 생각한 것도 잠시 언덕에 막 달라붙어서 200m쯤 갔을 때에, 또 다른 농부가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 처음에는 우리 차가 고구마 밭을 밟을까봐, 지키는 아저씨인줄 알았다. 그러나 그 두 번째 농부를 지나가는 "순간 아!!!!" 하고 느낌이 왔다. 후에 알고 보니 그도 엄연한 주주(?) 였던 것이다.

그렇게 고구마 밭 사이로 난 꼬부랑 길을 한참을 덜거덩대면서 가는데 마루턱에는 차들이 서있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아쉽게도 나의 유창한 푸통화(普通話:표준말]실력으로는 알아들을 수가 없는 투화[土話:사투리]로 난리들이었다.

그 농부님네들이 떠드는 이유가 통행료를 내라는 것이다.

나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는데, 나를 뺀 세 사람의 중국인은 무지하게 화가 났다. 아니 외국인이 있는데 창피한 꼴을 당한다고 생각을 한 듯(?)도 하다.

나는 역으로 오늘 참으로 재미있는 일을 겪는구나하며 기다려졌다. 예전에 중국에 대한 교과서(?)에서 본 일을 겪게되는 구나하는 기대와 함께….

그 때에 나는 농부의 아들답게 영철이에게 점잖게 훈육(?)을 했다. 우리가 지금 저들의 고구마 밭을 밟고 지나왔으니 당연히 고구마 값을 후하게 치뤄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한대씩 그렇게 힘겹게 통행료를 내고 통과를 하는데, 우리 차례가 왔다. 처음에는 핸들을 잡은 쑈씽이 우리는 북경 올림픽 어쩌구 저쩌구로 시작되는 우리의 대본(?)을 씨부렁 댔다. 하지만 먹고 살기 바쁜 농민들의 귀에 북경올림픽 어쩌구 하는 소리는 씨알이 먹히지도 않았다.

곧 바로 성질이 휘발유 같은 해초가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중국어는 존대말이 없으니까)은 중국인이 아니냐"고 하지만 그 것은 해초가 촌놈(?)을 무시한 말이었다. 당시 그 들의 기세는 중앙당에서 서기가 내려와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통행료를 요구하고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이 하늘에 닿았는데..... 코풀래기 해초가 씨부렁대는 소리쯤이야 까딱도 않는것이다.

차 한대당 20위엔이었다.

약 500여 m의 고구마 밭을 밟은 댓가로 지불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액수였다. 하지만 뒤에는 많은 차들이 밀려 있고..... 결국 우리는 50% 할인된 가격으로 통과를 했다.

"고맙습니다 농부님!"

당신의 밭으로 지나가게 해주시어 시간이 적게 들었고, 싸게 해 주어서 고맙고, 제 집사람 만나면 꼭 전해 드리겠습니다. 고마웠다고… 아마 그 농부들은 어젯밤만 해도 수억(?)의 돈을 챙겼을 것이다.

a

왼쪽이 농부님들이 만들어 놓은 샛길 - 왼쪽 중간에 서있는 농부님들이 보인다.

오늘은 12월 23일. 청도[靑島]는 이른 아침부터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지금 나는 자판을 치다가 가끔 한번씩은 고개를 들어 창밖에 흩날리는 눈을 내다보면서 이 글을 이어가고 있다.

이 날에 폭포 같이 쏟아져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달린 기록은 없다. 이유는 그날 교주[膠州]의 교동[膠東]진 사거리까지 달렸고, 그 곳에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전날부터 나를 기다린 아내를 만났기 때문이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날씨는 맑았지만, 바람은 많이 차가워져 있었다.

일조시 맹탄진에서 출발해서 제성까지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지레 겁을 먹고 언덕이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언덕도 없었고 풍경도 그저 그럴 뿐으로 특이점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다만 제성[諸城:쭈청]부터 교주를 연결하는 지방도로 중간이 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차는 다른 길로 돌아야 한다는 것은 이미 그전에 몇 번 왔었기에 알고 있었다.

제성에 닿아서 점심을 먹고 쉴 때까지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오늘만 달리면 집에 가서 편안히 쉰다는 편안함이 벌써 온몸의 피로를 가시게하는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영철이가 한마디한다. 비가 올 것 같단다. 하늘을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나는 느낌이 전혀 없다. 내가 예전에 고국의 시골에 살 때 비가 오고 안오고는 서울 쪽 하늘을 쳐다보면 바로 알아 차렸는데, 이 것은 늘 그쪽에서 구름이 몰려오면 비가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재차 하늘을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모르겠다.

아무렇지도 않은데 뭘? 그러면서도 서두르기로 했다. 오늘은 집에 가서 쉬(?)어야 하니까!

출발을 하자마자, 공사 통제 구간이 나타났지만, 우리는 그대로 차와 같이 진입을 했다. 차가 가다가 못 가면 다시 돌더라도.... 떠난 지 불과 30여분도 안되어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빗방울은 점차 굵어지더니 이내 쏟아지는데, 길에는 많은 농부들이 나와서 가을걷이 타작을 하고 있었는데, 그 농부들도 몹시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번 장정에서 비가 귀한 지방에 비를 몰고 다니면서 골고루 내리게 해 주었다. 감숙성의 정녕현에서 출발한 다음날(9월 10일)에서부터 내린 비는 서안에 들어가던 12일에도 병마용으로 가던 13일에도 화[華]산으로 향하던 14일에도 내렸었다.

다만 화산에 오르는 날은 그 간에 비기 내렸음으로 더욱 청명한 가을날씨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며칠 뜸하던 비는 숭산 소림사로 이동을 하던 20일에도 내렸고, 추석날인 21에는 하늘이 뚫린 듯이 쏟아졌었다. 이렇게 각 구간마다 적당량(?)을 나누어주면서도 남겨 가지고 계속 모시고 와서, 이 곳 산동성의 교주시에 와서는 그 간에 아끼면서 조금씩 내려주고 남은 것을 마지막으로 모두 아낌없이 골고루 쏟아 내려 주는 것이다.

차는 교주까지 문제없이 함께 왔다.

공사 중이라서 군데군데 흙더미를 쌓아 놓았지만, 차가 지나갈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다행이다. 비가 그렇게 많이 쏟아졌는데, 길이 막혀 차가 다른 길로 와서 옷을 꺼내 입지도 갈아입지도 못할 뿐만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찾으면서 자전거를 타려면 곱으로 힘이 들었을 것을 하며 생각하니 말이다.

그 날에 나는 이유도 모른 채로 1,2차 장정을 통 털어서 처음으로 길에 나동그라졌는데, 그 때 생긴 무릎의 상처는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서, 지금도 '그 때에 내가 왜 넘어졌지'하고 골몰이 생각을 하게 된다.

이날도 비가 엄청 쏟아져서 "이제 다 왔는데 차를 타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는 무지한 양을 쏟아 붓고 있었다. 얼마나 추웠는가 중간에 차를 세우고 옷을 껴입기도 했고, 젖은 속옷을 벗어버리고 갈아입기도 했다. 그러나 걱정이 없는 것은, 오늘 우리는 무슨 수를 내든지 집에 가서 쉰다는 계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교주 시내를 지나서 교동진[膠東鎭]에 이르러서는 이미 날도 어둡고 내일 타면 된다는 생각과 빨리 집에 가서 작은딸을 보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에 자전거에서 내렸다.

a

빗속을 둘이서 - 쭈청[諸城]에서 지아오저우[膠州]구간

오늘은 평균 속도 20.6km로 6시간 31분 39초를 타서 134.05km를 이동했으며, 지금까지의 총 이동 거리는 1,873.25km이다.

어젯밤에 자전거에서 내려 차를 타고 공사구간을 어렵게 통과하여 맹탄[孟田+童]진의 여관 까지는 세 개의 언덕을 넘어서 가는 5.2km이었다. 오늘 아침에 흙을 쌓아 놓은 고갯마루에서 차를 세우고 자전거를 타고, 어제 자전거에서 내린 지점까지 갔다가 그 곳에서 출발을 했는데 흙을 쌓아 놓은 마루까지는 4.2km이다.

덧붙이는 글 | 1차는 산동의 청도에서 상해와 남경,제남,천진을 거쳐 북경까지의 2397km에 이르는 평지 여행이었고, 2차는 감숙성의 정녕현에서 서안과 화산 낙양, 정주, 태안의 태산을 거쳐 청도에 이르는 1941km의 여정으로 3/5은 언덕길이었다.

1차 장정의 목적은 월드컵에서 중국과 함께 16강에 들라는 기원과 한중 수교 10주년을 기념하고, 2008년 있을 북경 올림픽을 맞이하는 여행이라고 하였다. 2차는 부산 아시안게임의 성공을 기원을 추가하였다.

이렇게 두번에 걸쳐서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중국의 여러 대도시를 여행한 것은 내게 있어 가슴뿌듯함으로 남아 있는데...

덧붙이는 글 1차는 산동의 청도에서 상해와 남경,제남,천진을 거쳐 북경까지의 2397km에 이르는 평지 여행이었고, 2차는 감숙성의 정녕현에서 서안과 화산 낙양, 정주, 태안의 태산을 거쳐 청도에 이르는 1941km의 여정으로 3/5은 언덕길이었다.

1차 장정의 목적은 월드컵에서 중국과 함께 16강에 들라는 기원과 한중 수교 10주년을 기념하고, 2008년 있을 북경 올림픽을 맞이하는 여행이라고 하였다. 2차는 부산 아시안게임의 성공을 기원을 추가하였다.

이렇게 두번에 걸쳐서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중국의 여러 대도시를 여행한 것은 내게 있어 가슴뿌듯함으로 남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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