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이 농부님들이 만들어 놓은 샛길 - 왼쪽 중간에 서있는 농부님들이 보인다.
오늘은 12월 23일. 청도[靑島]는 이른 아침부터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지금 나는 자판을 치다가 가끔 한번씩은 고개를 들어 창밖에 흩날리는 눈을 내다보면서 이 글을 이어가고 있다.
이 날에 폭포 같이 쏟아져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달린 기록은 없다. 이유는 그날 교주[膠州]의 교동[膠東]진 사거리까지 달렸고, 그 곳에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전날부터 나를 기다린 아내를 만났기 때문이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날씨는 맑았지만, 바람은 많이 차가워져 있었다.
일조시 맹탄진에서 출발해서 제성까지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지레 겁을 먹고 언덕이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언덕도 없었고 풍경도 그저 그럴 뿐으로 특이점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다만 제성[諸城:쭈청]부터 교주를 연결하는 지방도로 중간이 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차는 다른 길로 돌아야 한다는 것은 이미 그전에 몇 번 왔었기에 알고 있었다.
제성에 닿아서 점심을 먹고 쉴 때까지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오늘만 달리면 집에 가서 편안히 쉰다는 편안함이 벌써 온몸의 피로를 가시게하는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영철이가 한마디한다. 비가 올 것 같단다. 하늘을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나는 느낌이 전혀 없다. 내가 예전에 고국의 시골에 살 때 비가 오고 안오고는 서울 쪽 하늘을 쳐다보면 바로 알아 차렸는데, 이 것은 늘 그쪽에서 구름이 몰려오면 비가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재차 하늘을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모르겠다.
아무렇지도 않은데 뭘? 그러면서도 서두르기로 했다. 오늘은 집에 가서 쉬(?)어야 하니까!
출발을 하자마자, 공사 통제 구간이 나타났지만, 우리는 그대로 차와 같이 진입을 했다. 차가 가다가 못 가면 다시 돌더라도.... 떠난 지 불과 30여분도 안되어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빗방울은 점차 굵어지더니 이내 쏟아지는데, 길에는 많은 농부들이 나와서 가을걷이 타작을 하고 있었는데, 그 농부들도 몹시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번 장정에서 비가 귀한 지방에 비를 몰고 다니면서 골고루 내리게 해 주었다. 감숙성의 정녕현에서 출발한 다음날(9월 10일)에서부터 내린 비는 서안에 들어가던 12일에도 병마용으로 가던 13일에도 화[華]산으로 향하던 14일에도 내렸었다.
다만 화산에 오르는 날은 그 간에 비기 내렸음으로 더욱 청명한 가을날씨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며칠 뜸하던 비는 숭산 소림사로 이동을 하던 20일에도 내렸고, 추석날인 21에는 하늘이 뚫린 듯이 쏟아졌었다. 이렇게 각 구간마다 적당량(?)을 나누어주면서도 남겨 가지고 계속 모시고 와서, 이 곳 산동성의 교주시에 와서는 그 간에 아끼면서 조금씩 내려주고 남은 것을 마지막으로 모두 아낌없이 골고루 쏟아 내려 주는 것이다.
차는 교주까지 문제없이 함께 왔다.
공사 중이라서 군데군데 흙더미를 쌓아 놓았지만, 차가 지나갈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다행이다. 비가 그렇게 많이 쏟아졌는데, 길이 막혀 차가 다른 길로 와서 옷을 꺼내 입지도 갈아입지도 못할 뿐만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찾으면서 자전거를 타려면 곱으로 힘이 들었을 것을 하며 생각하니 말이다.
그 날에 나는 이유도 모른 채로 1,2차 장정을 통 털어서 처음으로 길에 나동그라졌는데, 그 때 생긴 무릎의 상처는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서, 지금도 '그 때에 내가 왜 넘어졌지'하고 골몰이 생각을 하게 된다.
이날도 비가 엄청 쏟아져서 "이제 다 왔는데 차를 타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는 무지한 양을 쏟아 붓고 있었다. 얼마나 추웠는가 중간에 차를 세우고 옷을 껴입기도 했고, 젖은 속옷을 벗어버리고 갈아입기도 했다. 그러나 걱정이 없는 것은, 오늘 우리는 무슨 수를 내든지 집에 가서 쉰다는 계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교주 시내를 지나서 교동진[膠東鎭]에 이르러서는 이미 날도 어둡고 내일 타면 된다는 생각과 빨리 집에 가서 작은딸을 보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에 자전거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