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를 넘어서

석수 이기영 남근전 관람기

등록 2002.12.31 13:54수정 2003.01.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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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면 풍경. 크기와 모양이 각각다른 작품들을 한곳에 모았다. ⓒ 유신준

남근전이라는 단어에서 <버자이너 모놀로그>라는 연극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직접 연극을 본 건 아니지만 아직 기억에 남아 있음은 첫 대사의 충격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여성의 은밀한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란 국어사전에는 있으되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금기의 영역 아니던가.

남성쪽도 왠지 꺼림칙하긴 마찬가지. 그 단어를 맨 정신에 입에 올리는 사람은 없다. 특정 신문에 대한 비하어로서 유명해지긴 했지만 제대로 된 단어가 아니며 그것조차 아직 '통용'되는 수준이 아니다. 포르노물이 넘쳐나는 시대에 성기의 명칭에 대한 금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다.

어찌어찌해서 타협을 본 것이 남근이라는 용어인 모양이다. 버젓이 전시회 명칭으로까지 사용될 정도니 남성의 상징에 관한 용어로는 공인된 수준이다. 감추는 대상에는 호기심이 동하기 마련. 근처에서 열렸던 남근전을 보러간 것도 솔직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남근전을 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아무리 호기심에 기댄다 하지만 그것을 사람들과 함께 '관람'을 한다는 것이 도대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전시장 초입에서 잠시 주춤거렸지만 퇴근길이어서 인지 의외로 사람이 별로 없다.

입구에 서있는 통나무 남근들은 생각보다 얌전하다. 적나라한 표현보다는 상징적인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인 모양이다. 검은 칠을 한 작품 앞에서는 언뜻 영화 스타워즈가 떠올랐다. 어둠의 힘을 상징했던 불행한 제다이 다스 베이더라는 인물. 번쩍이는 검은 투구를 썼으니 검은 망토만 씌워놓으면 영락없는 암흑기사 베이더다.

40대 초반의 조각가 이기영씨는 생활한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고 있었다. 작품활동은 올해로 5년을 맞는단다. 그동안 만든 작품을 일반에 공개하는 것은 최초. 전시회 일정을 잡아놓고도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놓는다. 남근이라면 금기가 현저한 이 땅에 자신의 작품에 쏟아질 일반인들의 눈길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기영씨의 작품 세계는 작가의 과거와 무관하지 않다. 어린 시절에 고 건축을 하는 아버지 이병성씨에게서 자연스레 나무를 익히며 자랐다. 성장하여 가업을 이어받았고, 살아오는 동안 장승에서 뿌리공예까지 나무를 다루는 일이라면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다.

남근조각에 본격적으로 심취하게 된 것은 5년 전부터라고 한다. 일터에서 버려진 나무토막으로 무심코 만들어 본 남근이 시초였다. 자신의 작품(?)을 보며 사람들이 보여준 건강한 웃음들은 그의 작품의 방향을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그때부터 그는 오로지 남근만 깎으며 살았다.

처음 시작할 무렵 자신의 의욕과 달리 주변 사람들의 오해와 질시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때마다 자신을 지탱해준 것은 보는 사람들의 건강한 웃음이었다. 자신은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건강한 웃음을 주고 그 건강한 웃음 속에서 작품을 계속할 힘을 얻었단다.

40여평의 전시장을 가득 메운 2000여점의 작품들은 그간의 결실이다. 나무의 자연스런 질감과 무늬를 이용한 작품들이 많다. 스타워즈를 연상시킨 검은 색의 작품을 보며 사용한 도료를 물으니 뜻밖에 구두약이란다. 다른 도료보다 나무가 숨쉴 수 있어 보존에 용이하다는 것. 분홍, 초록 등의 채색작품들도 전문도료가 아니고 머리염색제를 활용해 본 거란다. 그의 작품은 생활과 멀지 않다.

작품의 힌트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재료도 생활주변에서 얻는다. 가까운 산에는 버려진 나무들이 널려있는 형편 아닌가. 이것들을 이용해 하나하나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로 인해 성에 관해서 왜곡되고 뒤틀린 사람들에게 건강한 웃음을 찾아줄 수 있으니 좋은 일이란다.

그의 작품들을 보노라니 남근조각에 얽힌 씁쓸한 기억하나가 떠올랐다. 얼마 전 평소에 나무 만지는 일을 좋아하는 친구 셋이 모였었다. 뭔가 해볼 요량으로 그동안 각자의 집에 마련해 둔 공구들을 모으니 어지간한 목공소라도 차릴 정도.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한 친구의 사무실 창고에 공방을 차려 작품활동(?)에 들어갔다.

우선 손쉬운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는데 의견을 일치하고 틈만 나면 모여 그릇이며 자질구레한 동물모양 등을 깎아 나가는데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좋아하는 취미가 같으니 의기투합도 쉬운 법. 그간 틈틈이 전시회도 같이 다니고 실력연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무료함 끝에 장난기가 동한 것이 화근이었다. 소나무 막대로 뭔가 깎을 게 없을까 궁리하다가 남근깎기에 도전하기에 이른다. 사실 남근은 적당한 굵기의 나무만 있으면 별 손품 안들이고도 쉽게 깎을 수 있는 주제다. 서로 낄낄거리며 농지거리를 주고 받다보니 삽시간에 물건이 완성되었다.

소나무 나이테와 묘한 조화를 이루니 볼수록 정이 새록새록 솟는 작품. 단언컨대 사십여 평생 살면서 그렇게 예쁜 남근은 첨이다. 깎아놓은 작품들을 앞에 놓고 벌이는 품평회는 당연한 순서. 언제부터 남근애호가들이 되었는지 갑자기 남근에 관한 찬사가 산을 이룬다.

한번이라도 '일'을 안 하겠다고 파업투쟁이라도 벌이는 날에는 인류 역사의 존망이 걸린 중책을 맡고 있음에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위대한 물건. 그럼에도 단지 점잖치 못하다는 평가 때문에 멸시와 천대만 받아온 우리들의 불쌍한 거시기들이라는 것에 의견이 통일된다. 性은 감출수록 추해지지만 드러내놓고 얘기할수록 건전해 지는 법이라며 남근해방을 선언한 우리들의 통쾌한 반란은 시간가는 줄 몰랐으니...

거기서 그쳤으면 좋았을걸. 품평회하느라 두어잔 마신 막걸리가 화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초보들이 자신의 예술품을 자랑하고 싶은 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진대 갑자기 친구가 집으로 가져가서 아내와 창작의 기쁨을 나누어 보겠다는 나선 것이다.

애들이 잠든 틈을 타서 슬그머니 내놓았다고 했다. 친구 아내는 대경실색. 밥먹고 할 일이 그렇게 없냐는 둥 '선량한 미풍을 해치는 해괴한 물건'에 대해 혹평이 그치지 않았단다. 애당초 환호(?)까지야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냥 봐 넘겨주면 어떠냐는 것이다. 결국 사태는 부부싸움까지 갔다. 결과는 친구의 판정패로 작품은 압수, 훼손당하기에 이른다. 애들 교육을 비롯해 도덕적으로 단단히 무장된 공격에 반박할 논리가 궁했다는 것이다.

원래 선구자들은 박해를 받는 법이라며 위로했지만 씁쓸한 건 마찬가지. 나도 감상을 공유해 볼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없던 것은 아니지만 작품공개는 뒤로 미뤄져야 했다. 그 소동덕분에 내 불쌍한 작품 '건강한 아침'은 창고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불행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각설. 금기를 넘어볼 용기가 생기는 분들은 충남 청양의 칠갑산으로 오시라. 내년 1월 20일까지 전시회가 이어지며 관람료는 무료다. 단 여자친구라든가 아내와 같이 오실 분은 남근을 '작품'으로만 이해하고 딴지걸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두실 것. 서로 다른 작품안목은 분쟁의 시초가 될 수 있음을 익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전시회 안내 : 칠갑산 휴게소 041-943-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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