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조세제'를 도입하자

등록 2002.12.31 14:24수정 2002.12.31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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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 당선되신 노무현씨. 축하드립니다. 대통령 당선자를 아무개씨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노 당선자는 우리에게 소박한 인상을 주었고 멀리 있다고 생각해온 정치와 정치인을 우리 가까이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노 당선자의 장점은 "낡은 정치 청산"이라는 구호에도 나타나듯이 기존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멀더라도 바른 길을 가려고 하는 당당함입니다. 대통령에 취임하시더라도 당당한 원칙론을 지켜나갈 것으로 믿기 때문에, 고정관념과 달라 멀어 보이지만 그러나 당당하고 바른 길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노 당선자는 이렇게 공약하였습니다.
"수도권 과밀해소와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충청권에 새로운 행정수도를 건설하고, 청와대와 국회, 중앙행정기관을 이전하겠습니다."

이 공약을 둘러싸고 일부에서는 수도권의 집값, 땅값이 하락한다고 하면서 수도권 중상 계층 유권자의 이기심을 자극하였고 일시적으로 노 당선자의 지지도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지요. 언제는 부동산 가격이 너무 비싸서 서민이 살기 어렵고 기업의 경쟁력도 떨어진다고 하더니 이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고 비판을 하다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반면 행정수도를 충청권에 건설할 경우에 충청권의 땅값이 오를 것이고 그러면 충청권 지주가 불로소득을 얻게 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후보도 언급이 없었습니다. 노 당선자도 일산 건설의 예를 들면서 인구 50만 정도의 행정수도를 건설하더라도 서울의 집값, 땅값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만 대응하셨지요. 수도권의 집값, 땅값이 내리는 것은 안 되고 충청권의 땅값이 오르는 것은 괜찮다는 것인가요? 이것은 정치권이 표를 의식한 결과이고 따라서 "당당한 노무현"에 다소간 못 미치는 모습이었다고 봅니다.

이제부터는 집값은 땅값에 포함시켜 언급하려고 합니다. 금년에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오른 것은 강남의 아파트 시설이 좋아서가 아니라 강남이라는 지역의 인기를 반영한 결과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집값은 결국 땅값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정부정책으로 인해 땅값이 등락할 때 노력하지 않은 일부 국민이 이익을 취하거나 책임 없는 일부 국민이 손실을 감수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이미 노 당선자의 공약에 들어 있습니다. "토지보유세를 높이고 토지거래세를 줄인다"―바로 이것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주택정책 분야에서 투기 억제에 초점을 맞춰 보유세 강화와 거래세의 점진적 축소 방안 등을 제시하였다"고 하는데, 노 후보측에서 집값 문제는 곧 땅값 문제라는 단순한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으므로 저는 이 공약을 토지정책 공약이라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토지거래세는 토지거래를 억제하기 때문에 나쁜 세금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부동산을 사고 팔아 전매차익을 노리는 투기가 성행했기 때문에 부동산 거래는 억제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거래를 억제하면 실수요자까지 피해를 입게 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도둑을 막는다는 이유로 통행금지를 실시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반면 토지보유세는 좋은 세금입니다. 토지불로소득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동시에 토지거래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세금이기 때문입니다. 토지를 투기적으로 소유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상당한 세율의 토지보유세를 부과하면, 소유자가 부담을 피하기 위해 토지를 내놓게 되니까 실수요자 중심의 토지배분이 오히려 촉진되기까지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세금 전체를 살펴본다면 현재 정부 수입의 대종을 이루고 있는 부가가치세나 소득세도 좋은 세금이 아닙니다. 소득이나 부가가치는 장려해야 할 대상인데도 여기에 세금을 매기면 경제가 위축될 것이 자명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엄청난 불로소득을 그냥 놔둔 채 생산적 노력에 세금을 매기는 것은 정의롭지도 않고 진정한 사유재산제에도 맞지 않습니다.

이제 해답은 분명해졌습니다. 토지보유세를 높이고 그만큼 나쁜 세금을 깎아 주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토지보유세를 가장 우선적인 정부수입으로 삼는 세제, 부득이 할 경우에 다른 세금을 보완적으로 징수하는 세제로 가게 됩니다. 이런 제도를 지대조세제라고 합니다. 점진적으로나마 이런 방향으로 이행하면 사회정의도 세우면서 대선공약으로 내건 7% 경제성장도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습니다. 투기와 불황에 시달리던 덴마크에서는 이런 정책을 (실시하기 전에) 예고만 했는데도 굉장한 효과를 본 사례가 있습니다.

생소한 제도라고 해서 신중을 기하고 싶으시다면 우선 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에 지대조세제를 채택하여 효과를 검증한 다음 확대 적용해 나가는 방법도 좋겠습니다. 영국 전원도시 건설의 선구자였던 E. Howard도 신도시에 지대조세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지대조세제는 미국의 헨리 조지(1839-1897)가 주창한 제도입니다. 헨리 조지는 "낡은 정치 청산"을 추구하는 노 당선자처럼 고정관념을 탈피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던 사람으로서 당시 영어 사용권에서는 마르크스보다 더 유명했었습니다. 그 역시 노 당선자처럼 대학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인데 아마도 대학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 편견에 물들지 않고 독창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지대조세제는 근본적으로, 사람이 생산하지 않은 것은 공유로, 사람이 생산한 것은 생산자의 사유로 하자는 건전한 상식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토지와 자본의 사유를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와 양자의 공유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주의의 중간에 있는 제3의 이데올로기입니다.

통일한국이 남한식 자본주의를 채택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병폐가 많은 자본주의를 통일의 모델로 할 이유도 없는데다가 그렇게 된다면 북한 주민은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을 것이고 또 적응하는 데도 매우 힘이 들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이 통일의 장애로 작용하기도 할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남북한 두 체제의 장점을 따서 토지는 공유, 자본은 사유로 하는 체제가 좋지 않을까요? 남한은 토지소유권을 그대로 둔 채 토지보유세 위주의 세제개혁을 하고 북한도 토지국유제를 유지하면서 현 사용자에게 제값 받고 임대하는 방식을 취하면 될 것입니다.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는 당당한 원칙의 사나이 노무현씨의 관심과 결단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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