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담배를 끊으며…

등록 2002.12.31 14:48수정 2002.12.3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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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같은 반에 혼자서 좋아하던 여학생이 있었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내 변화의 각론 중에 허영의 증폭이 있었다. 사랑이 내 가슴에 내려앉은 이후로 내 짧은 스포츠 머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결국 5cm도 안되는 짧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미용실가서 상고머리를 해달라고 했더니 미용실 누나가 "이 머리로는 하이칼라도 힘들다"며 난색을 표했다.

토요일엔 교복을 안 입어도 됐었는데, 그 하루를 위해 몇 달 동안 모아뒀던 용돈을 털어 난생처음 메이커 옷을 샀다.

내 허영은 결국 흡연으로까지 이어졌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선생님으로 인식되는게 싫었다. 넘어선 안될 선으로 경계했던 담배를 그렇게 시작했다.

담배의 해악은 건강만이 아니었다

처음엔 담배쯤 끊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다. 정확히 29번 금연에 실패하고, 30번째 금연을 준비하고 있다.

분명히 내 폐는 지금도 썩어가고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담배 때문에 특별히 건강이 축나고 있다는 느낌은 받아보지 못했다.

반면에 담배가 나에게 가져다준 치명적인 해악은 자신감의 상실이었다.

대학 때 난 선배들 사이에서 '똥고집'으로 불렸다. 고집이 지나쳐서 가끔 필요없는 사고를 치긴 했지만, '나는 생각한 건 한다'라는 자신감은 있었다.

초등학교 때 마약처럼 중독 됐던 전자오락실도 "내일부턴 안 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나서는 중학교 들어올 때까지 얼씬도 안 했다.

아무리 늦게자도 "몇 시까지 일어나야지"하고 결심하면 그게 기상시각이었다.

그러던 나의 고집을 담배가 농락했다.

"이제 나에게 담배가 필요없다"는 생각을 처음한 건 사랑했던 여학생과 함께하지 못 할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나서였다. 그날 바로 금연을 시작했다.

실연을 당하고 담배가 끊어질리가 있나? 며칠 못 가서 결국 88담배가 입에 물려져 있었다.

그러기를 몇 번 거듭하다보니 "어라? 이거 내 의지대로 안되네?"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의지에 대한 자신감의 상실은 생활전반으로 이어졌다.

맘먹은 기상시각이 지켜지는 경우가 드물었고, 자기합리화의 능력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했다.

담배 끊는건 연중 몇 번씩 있는 정기적인 행사가 되버렸다. 양력 설, 음력 설, 7월 1일, 추석, 음력 5월 1일(생일).이게 벌써 29번째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키스하는 것은 재떨이를 핥는 것과 같다

대학 다닐 때 모 학습지 광고지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한적 있다. 봉고차를 타고 다니면서 일주일간 강원도 전지역에 걸쳐서 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다 광고지를 뿌리고 도망치는 아르바이트였다.

3일째였나? 정선의 어떤 고등학교를 들어가는 길에 충격적인 표어를 봤다. '담배피우는 사람과 키스하는 것은 재떨이를 핥는 것과 같다' 그런 과격한 표어가 학교건물 들어가는 입구에 커다랗게 붙어있었다.

한참을 웃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면 방안에서 담배 피우는 거랑, 방안에서 불 안나게 장작 태워서 연기 날리는 거랑 별 다를바가 없는거다. 훗날 내가 방안에서 담배 피우고 있을 때, 아내가 자기는 방안에서 장작 태우겠다고 협박하면 나는 무슨 얘길 해야하나?

기가막힌 얘기같지만 흡연에 대한 일반화된 관용의 정서를 걷어내고 보면 흡연이 가진 이기심은 뭐라고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제 지겹다. 같이 끊자!

담배를 하루에 한 갑정도 피운다. 잠들기 전에 이를 닦았음에도 불구하고 호흡 할 때마다 묻어나는 역겨운 냄새, 이젠 지겹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찌뿌둥한 느낌은 긴 잠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

서른 번째 실패를 향한 서른 번째 도전일지도 모른다.

내가 새해부터 담배끊는다고 선언하자, "담배 너무 오래 끊으면 건강에 나쁘다"면서 비아냥 거리는 주위의 반응만큼이나 난 내가 불안하다.

하지만 실패할까봐 두려워서 미리 포기하기엔 난 충분히 실패에 익숙하다.

이 글을 읽는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같이 끊자.

이 글 아래 독자의견란에 이름쓰고 절규 섞인 각오를 쓰자. 그리고 가끔 <오마이뉴스>에 글 올려서 금연의 고충을 서로 함께 나누자.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후 나는 다시 글을 쓸 것이다. 금연에 성공한 1년을 자축하고, 성공한 사람들끼리 칭찬하고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한번 시도해보라고 권유할 것이다.

담배 피운다고 구박받고 사는 것도 이제 지겹다.
다함께 이제 담배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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