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들은 더 이상 들러리가 아니다"

<밖에서 보는 조국> "민초들의 일상의 삶을 챙기는 일, 대통령의 최우선 업무"

등록 2002.12.31 19:55수정 2003.01.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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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6·25, 5·16, 12·12, 6·29, 6·15 등 격동의 세월을 지내오면서 그동안 우리 조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고 남북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여 그 국제적 위상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이제 북쪽의 고향도 역사의 큰 흐름에 따라 개방의 물결을 타고 있다. 이대로 나아가면 민족의 화해는 오직 시간의 문제다. 아직 걱정스런 문제들이 남아 있으나 이렇게 밝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던 때가 일찍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이러한 밝은 미래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선출은 새로운 세대가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으로 획기적인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으며, 해외에 사는 한 동포로서 노 대통령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이제부터 우리 민족이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해야 할 것인가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나는 우리 민족이 역사의 물결을 타고 도도하게 밝은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그동안 이러한 역사의 큰 물결을 이루어낸 민초들의 삶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어 오히려 초라하게 보인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져보고 싶다.

사실 우리 민초들은 지난 수세기 동안 오로지 생존을 위한 투쟁만이 삶의 일과였기에 자신들의 모습을 비춰 볼 수 있는 여유조차도 없었다. 항상 가진 자들에게 짓밟히고, 착취당하고, 이용만 당하며 사회의 중심에서 소외된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것은 삶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해방 후 삶 역시 그랬었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삶은 대부분 사회 지도층들의 무책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지만 민초들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의식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짓밟고, 이웃의 삶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야망만을 채우려는 출세주의와 이기주의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대표적인 예가 부모세대들의 자식 교육관이다. 자기 자식만을 일류학교에 보내서 오로지 남들이 부러워하는 관직이나 직업을 잡아서 남들이 우러러보는 삶을 살아가도록 부추겼고, 그런 자식들을 둔 부모들은 그것을 자신의 인생의 성공이자 자랑으로 여겼다. 그리고 또 우리 자신들이 그런 부모세대가 되었다. 그러한 교육의 결과로 우리는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냈고, 남이야 어찌 되든 남을 딛고 내가 올라서면 성공하고 출세한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을 수없이 배출해 냈다.

이런 것을 이름하여 한국병이라고 부르자. 한국병의 보편적인 특징은 환자들이 오로지 자기 자신의 출세나 명예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정계진출이고, 이는 한국 엘리트들의 최고의 야망이 되어버렸다. 한국병에 걸린 엘리트들은 오로지 위만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사회적 신분의 상승만 노린다.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가족도 친구도 사회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자신의 출세야말로 자기 가족의 행복과 가문의 명예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출세한 자들, 권력과 금력을 가진 자들은 각종 미디어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살아가면서 어디서든 거리낄 것 없이 활보하고, 다수의 민초들은 이런 자들의 들러리로 평생을 살아가는 사회, 이것이 한국 사회의 단면이라고 한다면 틀린 말일까.

그러나 노무현 정권과 함께 우리는 민초들이 더 이상 들러리가 아니어야 한다는 데 모든 사회 개혁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것은 다수의 민초들의 작은 삶들이 가장 크게 조명을 받는 사회로의 전환을 말한다. 자신의 가족은 물론 작은 이웃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과 직결된다는 사회적 의식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보편화되는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다.

예를 들면 자기 아내의 병을 구하기 위해 국방장관직을 스스럼없이 사임했던 어느 미국인의 모습에서, 암에 걸린 학우가 치료 때문에 대머리가 되자 같은 반 급우들이 모두 머리를 빡빡 깎아버린 인간애 넘치는 행위들 속에서 그런 사회를 엿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아래에서 위로만 쳐다보는 사회"에서 "위에서 아래로 보는 사회"로, "큰 것만을 중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로 변화될 때 우리민족은 비로소 선진민족의 대열에 낄 수 있다. 그것은 신분의 높낮이가 없고,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고, 자신의 직업은 공동선을 위한 수평적 직분이라는 의식이 정착되는 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또한 "출세한 사람"이란 "가진 자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개념으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고국의 동포들이 그러한 일에 신명을 바칠 수 있는 지도자를 선출했다고 믿는다. 그런 뜻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평범하고 작은 것들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고, 민초들의 삶의 작은 결을 어루만지는 일을 자신의 최대의 임무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대통령이 해야 할 우선적인 과제가 무엇일까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자. 예를 들면 대통령 당선자가 강조하는 정치개혁이라든지 재벌개혁 같은 문제는 대통령 재임 5년 동안에 이룰 수 있는 일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장기적인 숙제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대통령이 앞장서서 추진하면 좀 더 빨라질 수 있겠지만 엄격히 말한다면 대통령이 풀어야 할 몫이라기보다는 국회가 앞장서서 시행법을 만들고, 법의 집행은 사법부가 엄정하게 실시하고, 국민 의식의 발전과 함께 선거를 통해서 변화시켜야 할 일이다.

황당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차라리 대통령은 정치는 하되 정치문제와는 거리를 두거나 아예 손을 떼라고 말하고 싶다. 역대 대통령들이 정치 문제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나라가 온통 정치와 정치꾼들의 얘기로만 가득 찼었다. 언론의 주요 보도는 항상 정치꾼들의 얘기로 뒤덮였고, 정치판이 나랏일의 모든 것인 양 간주되었고, 언론의 조명 발을 받기 위해 난다 긴다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정치판에 뛰어드는 가관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출세의 최고 목표가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이제는 전혀 다른 판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의 관심에 따라 나라 전체가 흔들거리는 나라가 한국이라면, 이제 대통령은 지금까지 조명 발을 못 받고 소외되어 왔던 민초들의 삶의 현장에 집착을 갖고 판세를 흔들어 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의 일상의 우선 업무가 민초들의 삶 하나 하나를 챙기는 일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회 계층간에 불평등과 빈부의 격차를 줄일 방법은 없는가? 집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어떻게 집을 마련해 줄 것인가?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보완할 방법은 없는가? 기지촌 주위에 살아가는 힘없는 민초들에게 억울한 일은 없는가? 제 나이에 자기 할 일을 못하고 실패한 사람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만들어줄 수는 없는가? 나이와 성별의 차별이 없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나라가 가난하여 해외로 떠난 동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도와줄 길은 없는가? 어린 학생들이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는가?.....얼마든지 많다. 대통령은 이제 이러한 민초들의 일상적인 삶에 초점을 맞추는 일들을 우선시 해야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정치판과 정치인들에게만 비추어주었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민초들의 삶의 현장으로 돌려야 한다. 왜 정치인들만이, 출세한 사람들만이, 재벌들만이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영욕의 화신들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민초들은 그들의 광대 짓에 울고 웃고 박수만 쳐야 하는가. 아니다. 이제 민초들이 그 자리에 서야한다.

언론 얘기가 나왔으니 덧붙인다면, 선진국 언론은 전국화가 아니라 지역화 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전국신문이 아니라 동네신문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웃집 개가 새끼를 낳는데 그 개의 이름이 무어라는 기사가 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웃 사람들의 착한 얘기, 돈 번 사람들이 이웃을 위해 돈을 어떻게 희사해서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착한 일을 한 민초들을 조명해주고, 격려해 주고, 알아주고, 영웅으로 만들어주고... 이러한 지극히 인간적인 일들에 주로 관심을 가져주고 사회를 변화시켜간다.

그밖에 국가적 대사는 전문가 집단과 전문 언론에 맡긴다. 아직도 조·중·동이 판을 치며 소수의 정치인, 재벌, 어용 학자들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한국 언론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교육 얘기를 해보자면, 미국에는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ege)라는 것이 있다. 돈이 없어 대학 진학을 못하는 학생들 혹은 고등학교 때 공부를 게을리 해서 정규 대학에 진학을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지어진,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아주 값싸게 다닐 수 있는 2년제 동네 대학이다. 또한 늙은 나이에도 언제든지 어떤 공부라도 할 수 있다.

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어느 대학이든 정규 대학 3학년에 편입할 수 있는 우선권이 주어진다. 이 우선권이란 타 정규대학 2년을 마친 학생보다 우선적으로 입학을 시킨다는 말인데, 정규 대학 2년을 마친 학생은 자기가 다니는 대학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차별을 두는 것이다.

대통령은 실패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를 주는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실패할 수도 있고, 엄청난 재앙을 만나는 수도 있다. 제 나이에 상급학교에 못 갈 수도 있고, 나이가 들어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렇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기회가 항상 열려 있는 사회, 성별에 관계없이 기회를 주는 사회가 살맛 나는 사회다. 대통령은 이런 데 관심을 갖고, 언론도 이런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었지만, 이제 우리 조국은 밖에서 보면 그럴 듯 해 보이는 정원이나 숲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 그 정원을 거닐어 보면 온갖 냄새가 진동하고, 썩은 가지들과 추한 것들이 감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전체적인 정원의 모습보다는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온갖 것들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 속에 민초들의 삶이 있고, 그 삶을 어루만지는 일이 대통령의 최우선의 업무여야 한다.

개혁, 개혁을 외치지만 그 개혁은 법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전문가 집단에, 또한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민초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민초들과 함께 사람 사는, 살맛 나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

사랑하는 조국, 사랑하는 동포, 존경하는 대통령 당선자께 나의 간절한 소망을 전한다.

덧붙이는 글 | 이계송 기자는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계송 기자는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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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거주, Beauty Times 발행인, <밖에서보는코리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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