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와 평화' 10만 촛불행진

등록 2003.01.01 12:00수정 2003.01.1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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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자주와 평화를 위한 태극기 옮기기

자주와 평화를 위한 태극기 옮기기 ⓒ 김용한

"우리의 주권이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언제까지 미국의 그늘 속에서 미선. 효순의 죽음 앞에서도 단 한마디 말도 못한 채 숨죽여 살아야 한단 말인가요?"

세모밑 12월의 마지막 날 대구백화점 광장 앞에서는 '주권회복을 위한 10만 촛불평화대행진'이 펼쳐졌다. 지난번 1만 주권회복을 위한 모임 때보다는 그 숫자나 다소 침체된 듯하기는 하였지만,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4,000여명에 이르는 시민. 학생. 종교인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가족단위의 촛불시위 참가자, 스님, 시민단체, 교원단체, 학부모 등이 각양각색의 깃발을 내세운 채 매섭게 추위가 엄습하는 광장을 평화의 노래와 촛불의 열기로 차디찬 광장과 추운 겨울을 훈훈하게 해주었다.

소리타래와 청소년 댄스의 식전행사 등으로 행사장은 열기는 더해져 갔고, 본 행사가 펼쳐진 오후 6시 대구백화점 앞 광장은 또다시 촛불인파로 가득 찼다.

시민들은 "자주와 평화의 새아침을"이라고 쓰인 빨간 천을 이마와 목에 두른 채 미국의 패권주의와 무죄판결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시민들은 "미국반대, 전쟁반대"등을 외치면서 촛불평화대행진의 대열을 흐트림없이 지켜갔다.

시민들은 가수 소리타래, 박창근의 무대공연 등을 지켜보면서 '미군처벌'과 '부시사과'를 강력하게 촉구해 나갔다. 시민들은 가수들의 '아리랑' 선창에 이어 목청을 높여 한 목소리로 아리랑을 불러되면서 고(故) 미선. 효순의 넋을 기렸다.

a 매향리 사람들의 삶을 표현해낸 연극

매향리 사람들의 삶을 표현해낸 연극 ⓒ 김용한

광장에서 마련된 문화공연과 청소년발언대를 통해 미선. 효순을 생각하는 대구 시민들의 애절한 감정과 안타까움을 한껏 표현해 내었다.


청소년발언대에 나선 김현아(고) 학생은 "효순. 미선과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며, 우리가 행하는 평화적 시위에 다함께 동참하여 우리의 단결된 힘을 보여주자"고 하였다.

대구네티즌 대표로 나선 김효은(중3) 학생은 "우리 두 아이들이 비참하게 죽어갔는데, 자기들은(미군지칭) 2002년을 편히 보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라고 되물으면서 "우리가 이처럼 촛불시위에 나선 것은 한미주둔군 지위협정, 소파협정 때문이었다"고 말하였다.


또 그는 "저는 사회 책에서 배웠지만....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인데, 가장 기초적인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대구백화점에서 여는 마당을 마친 시민들은 동성로→ 중앙통까지 촛불대행진을 하면서 미군의 불평등한 소파협정 개정 촉구와 부시사과 등을 평화적 시위행렬에 나섰다.

한일로에서 1시간 가량 한쪽 방향 차선을 가득 메운 상태에서 평화대행진을 이어갔다. 한일로 에서는 대형 미국 성조기 찢어 맨 앞쪽 선두를 시작으로 맨 뒤 후미 부분까지 촛불 파도타기를 비롯한 성조기, 태극기 넘기기 등을 통해 안으로는 자주와 평화의 회복을 확인하였고, 밖으로는 미국의 오만함과 거들먹거림을 거세게 비난하는 함성과 미군처벌, 소파개정을 촉구하는 구호로 대구 시민들의 분노에 찬 모습을 대. 내외적으로 확인시켜준 자리가 되었다.

a 미군처벌, 소파개정을 염원하는 시민들

미군처벌, 소파개정을 염원하는 시민들 ⓒ 김용한

대명 5동 주민이라고 말하는 차태봉 씨는 "10여년 동안 미군기지 철거를 위해 미군부대 앞에서 홀로 싸웠던 경험도 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미군의 콧대를 꺽어줄수 있어서 마음이 후련하고, 그 동안 답답했던 엉으러진 가슴의 한(恨)이 풀리는 듯한 기분이다"고 하였다.

그는 "소파개정, 부시사과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미군의 군비축소와 군부대 외곽지 이전이 가장 시급한 일일 것이다"고 언급을 하면서 "우리 지역에서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소음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로 정신착란으로 고생을 한다"

예비대학생인 백지은 양은 "우리가 이렇게 벌이는 촛불시위의 위대한 힘이 미국민들에게 전해져 그들 스스로 경각심을 갖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와 함께 촛불시위를 벌이던 권효정(대1) 학생도 "대학생들이 막무가내로 반미시위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설명을 하면서 "대선에도 촛불시위가 상당한 문제의식과 영향력을 끼쳤듯이 이제는 소파개정의 차원을 넘어 정책적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내세웠다.

최성택 경북대총학생회장은 "장기간 동안 시민. 학생들이 평화적 시위를 벌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붉어진 북핵문제로 인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고 설명하면서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시민사회의 여론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는 염려의 목소리도 높다는 것을 잊지 말고, 새로운 국면에 대처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또 그는 "북미관계가 악화일로에 있으면서 분쟁위기로 내몰리고, 미국이 북한을 맞춤형 공세정책으로 일관하는 입장에서 우리가 벌이는 촛불시위가 그저 맹목적인 반미시위가 아닌 전쟁반대, 평화시위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a 어린 꼬마들까지 촛불시위 동참

어린 꼬마들까지 촛불시위 동참 ⓒ 김용한

촛불시위 참가자 중에는 교수, 학생들 틈새에서 자녀들과 함께 시위대열에 동참하여 주권회복의 목소리를 높인 가족들도 많이 보여 눈길을 끌었다.

김영배. 배명희 부부는 자신들의 2살된 자녀는 유모차에 태워 갖고 촛불시위에 동참했고, 4살된 다른 자녀는 일반 시민들과 동일한 조건 속에서 2Km에 이르는 구간을 아이와 함께 나란히 촛불시위를 벌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촛불시위에 참가한 소감에 대해 "인터넷을 보고 참가했는데, 막상 참가해 보니 많은 것을 느낀다(김영배)"고 하였고, 그의 아내인 배명희 씨는 "몸이 불편하여 같이 동참할 입장이 못되었는데 직접 참가를 해보니 매우 좋은 경험이 된 것 같고, 보람된 일인 것 같다"는 소감을 내 비췄다.

촛불행렬은 거리집회를 벌인 한일로를 출발하여 국채보상공원 종각 앞까지 계속되었고, 국채보상공원에서는 자주와 평화의 새해맞이 행사로 간단한 무대 공연과 문화행사로서 꾸며졌다. 이날 무대공연에는 풍무악 예술단 '랑'의 흥겨운 공연을 시작으로, 인디밴드 아프리카의 열정적인 무대, 청소년 랩과 댄스동아리인 '부상뮤직'의 멋진 율동과 랩으로 미군의 무책임한 행동과 전쟁만 일삼는 부시정책을 노래로서 꼬집었다.

특히, 이날 단막극 형식의 연극을 선보인 '함께사는세상'이 미군의 폭격기와 소음으로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매향리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려낸 연극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았다. 매향리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잘 그려낸 연극답게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고, 극중에 나타난 미선. 효순의 등장으로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은 삽시간에 숨을 죽였고, 자못 숙연해진 모습 속에 연극을 지켜봤다. 연극은 촛불든 여인의 한풀이로 죽었던 영혼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또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두 여중생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배성철 무용단이 한풀이 현대무용을 선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마무리 공연으로 소리타래와 박창근 가수의 아리랑 노래를 끝으로 10만 촛불평화대행진은 별탈 없이 무사히 막을 내렸다.

참가자들은 연이어지는 대구시청 주관 새해맞이 행사(타종식)를 맞이하면서 신년소원을 빌면서 다시는 이 땅에 미선. 효순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재발되지 않는 마음을 새해 벽두에 신명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담아 훨훨 날려보내는 마음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a "자주와 평화가 숨쉬는 나라에 살고파"

"자주와 평화가 숨쉬는 나라에 살고파" ⓒ 김용한

"미선. 효순이에 대한 싸움은 이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는 사회자의 말처럼 200여일을 촛불로서 거리를 메워왔던 시민들의 가열찬 함성과 열정을 얼마나 추진력 있게 지속해 나갈 것이며, 또한 미국의 반감 없이 얼마나 실질적인 영향력과 압박을 해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일 것이다.

4시간 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고 시종일관 광장을 지켰던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도 자랑스럽지만, 중증장애인으로서 촛불시위 현장을 오랜 시간동안 지켜냈던 적지 않은 장애인들의 열정과 혼신의 촛불항거를 지켜보면서 그들로부터 솟아오르는 애국심과 위대한 시민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이제는 더이상의 촛불시위가 필요치 않는 2003년, 미군에 의해 한국민이 괄시당하고, 약소국민 취급당하는 일이 없는 살기좋은 2003년의 나라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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