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끓여 본 김치 청국장

새해 첫 음식만들기로 기쁨을 느끼며

등록 2003.01.02 13:02수정 2003.01.0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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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1일 밤 종로에서의 촛불 시위를 마치고 무악재에 있는 처갓집에 도착했을 때 장모님께서는 난생 처음 보는 음식을 만들어 주셨다. 충남 논산군 연산면 출신이시라 그런지는 몰라도 가끔 우리 자식들에게 정말 독특한 맛을 즐길 수 있도록 해 주신다.


'봄동'하면 된장국에 넣거나 겉절이를 만들어 그 신선함을 즐기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엔 밀가루 부침옷을 걸쭉하게 입혀 프라이팬에 올려 일종의 '지짐이'를 만들어주시는 것 아닌가?

뜨겁게 부쳐 낸 봄동 지짐이를 식초와 고춧가루를 넣은 간장에 찍어먹으니 그 씹히는 맛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프라이팬의 뜨거운 기운에 살짝 말려들어간 봄동의 이파리 부분을 입에 넣는 느낌은 한겨울에 맛보기 힘든 '싱그러움' 그 자체였으니까.

이렇게 음식이라는 것은 굳이 '퓨전'이라는 개념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낯설게하며 조금씩 달라지는 것들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리라.

아내의 도움으로 내가 끓인 김치 청국장
아내의 도움으로 내가 끓인 김치 청국장심재철

그날 장모님께서 직접 띄우셨다며 주신 청국장을 가지고 와서, 바로 오늘 '김치청국장' 만들기에 직접 도전했다. 내 어머니께서 전에 끓여주시던 것을 떠올리면 잘 익은 총각무김치가 필요했지만 없었기에 그냥 신 김치를 넣기로 했다.

아내와 내가 넉넉하게 먹을 정도의 넓은 뚝배기에 물을 부은 다음 멸치 다시다를 1/4 숟가락 정도 넣고 끓이며 청국장을 서너 숟가락 정도 퍼서 넣었다. 그리고는 청국장이 골고루 퍼지도록 휘휘 저었다.


옆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아내 말로는 원래 멸치를 직접 넣고 끓이며 국물을 우러내는 것이 더 좋단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잘 모르는 음식만들기를 새로 익히는 과정이니까 그냥 생략하는 것이란다. 다음엔 그 부분도 고려해서 제대로 시작해보리라 마음먹었다.

멸치 냄새가 나는 국물에 청국장만 끓고 있었지만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던 특유의 고약한(?) 냄새는 별로 없었다. 지난 가을 장모님 고향에 함께 내려가 처이모님 댁에서 직접 얻어온 시골 콩 덕택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냄새가 심하면 우선 우리 아이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금방 반응을 나타내는데 오늘은 그런 반응이 전혀 없었다.


다음에는 청국장이 잘 끓고 있는 국물에 지난 12월 1일 아내와 내가 직접 담근 김장 김치를 약간 작게 썰어 넣었다. 김치가 잘 익은 터라 구수한 청국장 국물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김치가 어느 정도 익을 무렵 두부 반 모를 넣은 다음 5분 쯤 더 끓여냈다.

잘 익은 김장 김치 덕분에 따로 간을 할 필요가 없었다. 첫 작품(?)이 그런대로 먹을만 했는지 아이들도 몇 숟가락 거들어 주었다. 외할머니댁에서 먹었던 청국장 이야기를 다시 꺼내면서 말이다. 정말 난 청국장을 이렇게 쉽게 끓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척박한 땅을 일궈 콩을 길러주신 연산의 처이모님댁에 다시 가서 고맙다는 인사를 한 번이라도 더 올려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소중한 콩을 얻어다가 삶아서 양념을 넣고 띄워주신 장모님께도 설거지 끝내고 전화해야겠다.

10년쯤 지났는가? 신혼 때, 고모께서 주신 냄새나던 청국장을 마지못해 가져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다가 냉동실에 넣어두기만 했던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쓸쓸하게 남아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두부를 넣기 전 끓고 있는 청국장
두부를 넣기 전 끓고 있는 청국장심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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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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