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을 둘러싼 <조선>과 <동아>
그리고 분노한 시민들의 대결

등록 2003.01.02 23:49수정 2003.01.0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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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007 어나더데이>가 한국에 상륙했다. 제임스 본드의 화려한 액션과 매력적인 본드걸로 잘 알려진 '007' 시리즈의 뒤를 잇는 <007 어나더데이>는 차인표씨가 이 영화 출연을 거부하면서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노사건'으로 반미감정이 고조되어 있던 당시 차인표는 <007 어나더데이>가 한국을 비하하는 내용을 담는 등 내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이 영화에 출연을 거부했다. 이로써 그는 할리우드에서 스타로 부상할 기회를 저버렸지만 대신 국민들의 더 큰사랑을 받았다.

초기부터 심상찮은 문제를 지닌 채 데뷔한 이 영화는 결국 자신들의 기획안을 완성시켜 우리나라에 무사히 상륙했다. 그렇지만 <007 어나더데이>의 앞날이 그렇게 환해 보이지는 않는다. 정작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는 한국과 북한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개봉된 이 영화는 북한과 한국을 왜곡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한국 내 시민단체들의 상영반대 운동에 직면해 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영화 속 한국묘사에 대해 "완전 구라다" "웃긴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고, 매체들의 영화 평에서는 '코미디'라는 혹평까지 나오고 있다. 북한도 관영 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이 영화를 거세게 비난했다.

많이 논의되고 있는 <007 어나더데이>의 문제점에 대하여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다만 여기서는 유독 독특한 반응을 보이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살펴보도록 하자.

조선일보의 "'007 어나더데이' 이틀간 19만여명 관람"이란 기사는 <007 어나더데이>에서 현재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았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향후 영화가 거둘 성적에 궁금증을 유도하고 있다.

이 기사의 관전포인트는 그 논조가 '얼마나 선전할 것인가'에 대단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기사는 엄청난 광고 물량공세에도 불구하고 흥행 실적이 대단히 저조한 것으로 드러난 007 영화의 흥행 참패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다.

반면 "이번 '007 어나더데이'가 99년 상영된 '007 언리미티드'보다 흥행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며 초점을 '<007 어나더데이>가 얼마나 선전할 것인가'에 두고 있다.

이는 대다수의 우리 언론들이 <007 어나더데이>가 우리 민족을 비하하는 등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과 정 반대의 반응이다.

동아일보의 반응은 더욱 가관이다. '횡설수설'란을 통해 홍찬식 논설위원은 "기본적으로 영화에 대한 평가는 관객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며 '안티 007운동'이 창작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일까. 문화 제작자의 창작의 자유가 소중하듯 문화 수용자의 선택의 자유 또한 존중받아 마땅하다. 문화 수용자들은 상품을 이용하고 즐기기 위해 그 전에 그것의 성격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접할 권리가 있다.

<007 어나더데이>가 우리 민족의 인격과 명예를 심대히 손상시키고 심지어 최근의 북핵사태와 관련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취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면 최소한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한 상태로 보는 것이 소비자의 기본적인 권리가 아닐까.

요즘은 예전처럼 군사적인 대결보다 일상적이고 의식적인 단계에서 문화의 영역을 통해 자신들의 세계관과 패권을 넓혀가는 문화 전쟁의 시대이다. 미국의 패권확대를 꾀하며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심대히 손상시킨 <007 어나더데이>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응원 속에 어떠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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