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역사의 고도 루앙프라방 (3)

<세계문화유산답사> 라오스

등록 2003.01.04 13:36수정 2003.01.0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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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고 있었다. 사원의 거리도 활기에 가득차 있다. 뜨거운 동남아의 열기는 무더위를 안겨주었고 연신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목마져 말라왔다. 근처의 가게에서 시원한 과일주스로 목을 적셨다. 탄산음료보단 아무래도 천연과일즙이 갈증해소엔 더 나은 듯싶다.

보다 효율적인 루앙프라방 관광을 위해 자전거를 대여했다. 아무래도 걷는 것보다는 속도감 있는 진행이 시간과 노동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며 천년의 고도를 달리는 기분이 상쾌하다. 가속도가 붙은 자전거의 움직임에 바람이 불어오기도 했지만 산뜻한 거리의 풍경이 촉각은 물론 시각마저 자극하기 때문이다.


한참 시내를 가로질러 달리다보니 거리 곳곳에서 양산을 쓰고 걸어가는 승려들이 눈에 띈다. 노란 치온을 두르고 바리때를 들고 가는 모습이 아무래도 탁발에 나서는 모양인 듯싶다. 가끔씩 승려가 지나가면 공손하게 합장을 하며 머리를 숙이는 서민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사원의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평화로운 일상의식이었다.

이곳 사람들의 마음 속엔 항상 부처의 가르침이 삶을 지탱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승려가 많은 만큼 사원들도 많은 루앙프라방은 역시 성스러운 불상의 도시답다. 한 집 건너 사원이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교회만큼이나 많았다.

a 황금의 사원 왓씨앙통

황금의 사원 왓씨앙통 ⓒ 홍경선

'왓씨앙므엉', '왓빠파이', '왓농씩쿤무앙' 등 비슷한 모양의 사원들을 지나치다보니 문득 눈부신 빛을 발하는 사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왓쌘'이라는 사원으로 거대한 불상과 부처님의 발바닥 동상을 모셔놓은 게 인상적이다.

크기만 작을 뿐 태국의 '왓포'에서 보았던 와불상의 발바닥과 비슷했다. 다시 반짝거리는 높은 탑들이 인상적인 '왓쏩'과 동네 절 수준의 '왓씨리뭉쿤', '왓씨분흐앙' 등을 지나고 나자 드디어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라고 하는 '왓씨앙통(Wat Xieng Thong)'에 도착했다.

왓 씨앙통은 메콩강과 칸강이 만나는 300m 남쪽에 위치해 있다. 1560년 쎗타티랏왕때 건립된 사원으로 이곳 루앙프라방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사원에 속한다고 한다. '금으로 된 도시'라는 사원의 이름답게 화려한 금색이 유난히 눈부셔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황금의 사원 안에는 부처님이 타고 다니던 것 같은 커다란 수레가 놓여 있었다. 안의 내용물은 별로이나 햇살에 비쳐 이글거리는 사원의 모습은 눈이 부실 정도다.

a 씨앙통 사원의 화려한 벽장식

씨앙통 사원의 화려한 벽장식 ⓒ 홍경선

넓은 부지 안엔 여러 개의 사원이 있는데 그 내부는 다른 사원과 별다를 바 없었으나 외곽 장식이 워낙 예쁘고 다양하게 그리고 특색 있어서 전혀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씸이라고 불리는 본당의 지붕은 일본무사들의 투구모양처럼 널따랗게 아래로 내려 앉았는데 풍부하고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어 멋져보였다. 또 불교와 관련된 설화와 건립 당시의 생활상이 색유리로 모자이크 된 본당과 사당의 벽, 그리고 여러 몽들의 때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 아름답게, 그리고 화려하게 조화를 이루며 그 이름값을 하고 있었다.

잠시 앉아 쉬어가고픈 매력을 주는 휴식같은 느낌을 주는 사원이다. 그늘진 곳에 앉아 햇살이 출렁이는 색유리 모자이크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있을 즈음 novice '씬'이 다가왔다.

a 왼쪽의 '씬'과 오른쪽의 '콘'

왼쪽의 '씬'과 오른쪽의 '콘' ⓒ 홍경선

18세 소년 수행자인 '씬'은 유난히 귀여운 외모 때문인지 사진작가들이 모델을 제의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사진 찍는 것을 왜 그리도 부끄러워하는지 옆에 있던 '콘' 녀석은 아예 도망가 버린다.

'씬'은 정말로 티없이 깨끗하고 맑은 아이였다. 외모가 풍기는 이미지도 그렇거니와 말투마저 온화한게 그림 속에서나 보던 동자스님 같았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스웨덴인이라며 함박웃음을 짓는 그의 모습에선 보통의 아이들과 다름없는 세속적인 귀여움이 드러난다.

이미 베트남과 태국 등 주변 나라들도 여행해봤다는 그는 내년엔 비엔티안에 있는 불교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라 한다. 졸업 후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고 하는 그의 작은 소망이 그의 불심처럼 간절하다면 무난하게 이루어지리라 생각된다.

'콘'은 20세로 몇 달 뒤에 비엔티안의 불교대학에 진학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역시 대학졸업 후 전혀 다른 쪽의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과연 이들은 왜 이렇게 어린 나이에 수행을 하는 것일까? 둘다 벌써 11년째라고 한다. 라오스에선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불도승이 되어야 나중에 출세를 할수 있는 걸까? 아니면 가난한 신분으로 태어나 어쩔수 없이 택해야 하는 길일까? 젊은 혈기로 잠시 몸담는 곳인가 아님 삶의 일부가 되어 중생을 구제하고픈 마음에서인가. 아무래도 소승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자기수양을 위한 준비과정이 아닐까 싶다.

유럽풍의 사당이 인상적인 '왓킬리'를 지나 길의 끝에 있는 마지막 사원 '왓빡칸'에 가보니 언제 왔는지 씬 녀석이 잘 가라며 손을 흔든다. 쉬는 시간이라 인근의 사원에서 수행중인 친구들을 만나보고 다니는 중이란다. 길이 끝나는 곳의 아래로는 시원스런 메콩강이 흐르고 있다. 동네아이들이 검정튜뷰나 보트를 타고 노는 모습이 정겨워보인다. 아직 이들에겐 때묻지 않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모습이 남아 있다. 또 이런 순수함을 찾기 위해 라오스를 찾는 게 아닌가 싶다.

a 탓루앙 사원의 대불탑

탓루앙 사원의 대불탑 ⓒ 홍경선

어느덧 시간은 오후 5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반대편 길로 한참을 달리고보니 넓은 공원뒤로 높은 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사원인가 싶더니만 '왓탓루앙'이란 곳이었다. 1910년에 건립된 대불탑안엔 '씨싸욍왕'의 유해가 들어 있다고 한다. 왕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불탑이어서 그런지 확실히 크긴 컸다. 탑의 주변엔 공양을 드리고 있는 신도들도 보였다.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서둘러 돌아갈 준비를 했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서인지 루앙프랑방의 하루해는 금방 저무는 듯했다. 자전거를 돌려주러 오는 길목엔 '왓파마하탓'과 '왓호씨앙'이 사이좋게 붙어있다. '왓파마하탓'은 입구까지 나 있는 계단의 난간을 장식하고 있는 용의 모습이 특이했다. 계단 끝까지 감싸고 있는 은색의 용 입 안에 앙코르왓에서 보았던 성스러운 뱀 '나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신성한 뱀인 나가를 삼키고 있는 용의 모습이 얼핏 혀바닥처럼 보인다. 사원은 작았지만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았다.

a 계단을 장식하고 있는 나가를 물고 있는 용

계단을 장식하고 있는 나가를 물고 있는 용 ⓒ 홍경선

두 사원을 지나쳐오니 날이 금방 어두워져버렸다. 도중에 야시장이 들어서 있어 한번 들려봤다. 골목 안을 가득 메운 좌판 위에는 온갖 종류의 음식이 나열되어 있었다. 노란 백열등 불빛아래 돼지, 닭, 튀김, 국수, 밥, 과일, 어류 등 온갖 식품들이 먹음직스럽게 놓여있었다.

저녁 찬거리를 사가려는지 시장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여기저기 흥정하는 모습이 우리네 동네 시장과 비슷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음식 위로 파리들이 윙윙 날아다니지만 왠지 더러워 보이지가 않는다. 오히려 정겨운 냄새가 물씬 풍겨나온다. 돼지살 튀김과 고기산적, 참쌀밥 등 야식거리를 잔뜩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밤이 되면 영락없이 라오비어의 시원함이 목구멍을 적신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난 후 들이키는 라오스의 맥주맛은 일품이다. 녹아 없어지는 거품 속으로 루앙프라방의 하루가 투영된다.

천년 역사의 고도 루앙프라방은 말그대로 사원의 도시였다. 조그만 도시 안에 무려 80여개의 사원이 있기 때문이다. 또 불교와 관련된 유적들이 거리 곳곳에 산재해 있는 이 도시는 그자체로도 박물관이라 칭할 수 있다. 1353년 라오스의 수도가 된 이후 약 600년간 역사적·예술적인 문화의 요충지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냈다.

하지만 사원이나 왕궁과 같은 역사적 유물보다도 더욱 이 도시를 빛내는 것은 노란 치온을 두른 승려들과의 만남이 아닌가 싶다. 해맑은 표정과 투명한 눈빛으로 오고가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불심의 세계를 인도한다. 그런 그들에게선 낯선 이방인에 대한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다. 높은 교육 수준으로 뛰어난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기에 국경을 넘어선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

하지만 불심으로 다져진 삶이 있기에 언어와 종교를 더욱 높이 뛰어넘어 누구와도 쉽게 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 10년이 넘는 시간을 불심에 정진하는 이들. 하지만 누구 하나 강제로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스스로의 결정으로 자아실현을 위한 불심의 길을 나선 것이다.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머나먼 길을 떠나는 여정을 여행이라 정의내릴 때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여행가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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