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은 사실상 입주요건이 까다로울 뿐 아니라, 그나마도 일정 정도의 돈이 있어야 입주할 수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체계를 통하여 일정 정도 이주희망자를 수용하여야 하지만, 현재 민간건설회사가 초기단계부터 개입하는 이러한 사업은 공공성보다는 수익성을 우선시하고 있다.
실례로 현재 재개발중인 인근 하월곡 4동의 공공임대아파트의 경우 총 1610세대 중 단지 288세대만이 임대 아파트로 건설되고 있으며, 그나마도 전용면적 9평이어서 부양가족이 많은 경우 입주하기가 꺼려지는 것이 현실이다.
77번지에서 임대아파트를 분양받아 들어가려 했었던 한 주민의 경우 식구가 다섯이라 13평에 방 두칸 짜리로는 살기가 힘들어서 대신 이주비를 받고, 그 돈으로 집을 구할 수 있는 산 2번지로 다시 들어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금 소원은 임대아파트에 들어가는 거야"라며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고는 싶었으나,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해서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한다.
곽길자(무직·32)씨의 경우에는 하월곡 4동에서 이주비를 받고 산 2번지로 이사를 와서 살고 있다. 여섯 식구가 모두 함께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있을 만한 충분한 공간은 아니지만, 보증금 없이 매달 10만원 방세를 내고 있는 형편에 재개발이 된다면, 이주대책은 전혀 없다고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고정적이지 않은 남편의 노동을 통해 여섯 식구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형편으로 1천만원이 넘는 임대아파트 입주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고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사는 김민생(무직·44)씨의 유일한 이주대책은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얻어 나가게 되면, 자신도 숙식이 해결되는 직장을 얻어 사는 것이다. 이산가족이 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행 재개발 사업은 주거환경개선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방식은 실질적으로 비용부담을 할 수 없는 어려운 이웃들을 무책임하게 내몰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주거의 문제는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해주어야 하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정책이다. 그러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미명 하에 오히려 삶의 터전을 빼앗고 더 어려운 환경으로 내모는 일이 지금도 하월곡 3동에서 자행되고 있다.
주거빈곤자의 주거권 확보에 우선을
2000년 9월 건설교통부는 '4인 가구 최저면적 11.2평, 전용 부엌 및 화장실 확보, 적절한 환기, 채광 및 냉난방 설비'등을 내용으로 하는 최저주거기준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2002년 하월곡동 산2번지, 77번지에서 엿본 달동네의 주거환경실태는 이러한 최저주거기준이 과연 정책지침으로서 주거정책에 반영되어왔는지 의심을 품게 한다.
최저주거기준 이하의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달동네 사람들에게 재개발은 그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해주는 사업이기커녕 오히려 그들의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박탈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