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죽지 못해 사는 거지요..."
재개발에 내몰리는 가난한 삶들

인간답게 살 권리 (1) 서울 하월곡동 달동네를 찾아

등록 2003.01.07 00:44수정 2003.01.0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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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권 박탈의 현 주소를 5회에 걸쳐 살펴본다. 차디찬 겨울, 서울의 몇 남지 않은 달동네 중의 하나인 성북구 하월곡3동 주민들이 살아가는 삶 속에서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주거권, 사회보장권, 건강권, 노동권, 교육권'의 참 모습을 찾아보고자 한다.(필자 주)

이지현
"그저 죽지 못해서 사는 거지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산 2번지 김태환(무직·70)씨의 집을 처음 들어갔을 때의 느낌은 이렇게 비좁고 열악한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냉장고와 작은 찬장, 그리고 한사람이 누울 수 있는 요가 차지하면 남는 공간은 거의 없다. 공책 크기만한 창으로는 한낮에도 볕이 들지 않아 불을 켜지 않으면 어두 침침하다.

김태환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산 2번지의 주민들은 대부분 공동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 집안에 화장실이 없는 가구가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있는 집도 고장으로 사용할 수가 없어서, 공동화장실을 쓰는 실정이다.

이렇듯 산 2번지 주민들의 대부분은 화장실, 부엌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단칸방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또한 가옥자체가 낡고 위험한 경우도 눈에 띈다. 김예덕(무직·79) 할머니의 집은 지붕에서 물이 새고 있다. 이 때문에 천장이며 벽면까지 곰팡이가 슬었으며, 천장 지붕이 약간 내려앉았다. 또 문이 틀어져서 맞지 않아 바람이 사정없이 들어온다.


이 때문에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집안 전체는 썰렁하기만 하다. 난방비가 부담스러워 심하게 추운 날씨가 아니면 보일러를 켜지 않는다는 할머니는 "따스게 자면 난방비는 어떻게 대"느냐고 하신다.

하월곡동 산 2번지와 맞닿아 있는 77번지는 이미 재개발이 확정되었으며, 산 2번지의 경우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다. 철거가 예정되어 있는걸 대부분 알고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이후대책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주민들은 "그냥 이렇게 살다가 돈 맞춰서 싼 데로 가야지요"라는 막연한 대답을 한숨 섞어 할 뿐이다.


얼마 안 되는 이주비를 받고 주민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많은 주민들이 곧 철거가 공시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집 값을 현실적으로 지불할 수 있는 산 2번지로 이주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산 2번지 8통에서 오래 살았다는 통장 아저씨는 "77번지의 재개발로 산 2번지로 이사온 사람이 많다"라고 했다.

이지현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은 사실상 입주요건이 까다로울 뿐 아니라, 그나마도 일정 정도의 돈이 있어야 입주할 수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체계를 통하여 일정 정도 이주희망자를 수용하여야 하지만, 현재 민간건설회사가 초기단계부터 개입하는 이러한 사업은 공공성보다는 수익성을 우선시하고 있다.

실례로 현재 재개발중인 인근 하월곡 4동의 공공임대아파트의 경우 총 1610세대 중 단지 288세대만이 임대 아파트로 건설되고 있으며, 그나마도 전용면적 9평이어서 부양가족이 많은 경우 입주하기가 꺼려지는 것이 현실이다.

77번지에서 임대아파트를 분양받아 들어가려 했었던 한 주민의 경우 식구가 다섯이라 13평에 방 두칸 짜리로는 살기가 힘들어서 대신 이주비를 받고, 그 돈으로 집을 구할 수 있는 산 2번지로 다시 들어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금 소원은 임대아파트에 들어가는 거야"라며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고는 싶었으나,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해서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한다.

곽길자(무직·32)씨의 경우에는 하월곡 4동에서 이주비를 받고 산 2번지로 이사를 와서 살고 있다. 여섯 식구가 모두 함께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있을 만한 충분한 공간은 아니지만, 보증금 없이 매달 10만원 방세를 내고 있는 형편에 재개발이 된다면, 이주대책은 전혀 없다고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고정적이지 않은 남편의 노동을 통해 여섯 식구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형편으로 1천만원이 넘는 임대아파트 입주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고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사는 김민생(무직·44)씨의 유일한 이주대책은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얻어 나가게 되면, 자신도 숙식이 해결되는 직장을 얻어 사는 것이다. 이산가족이 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행 재개발 사업은 주거환경개선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방식은 실질적으로 비용부담을 할 수 없는 어려운 이웃들을 무책임하게 내몰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주거의 문제는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해주어야 하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정책이다. 그러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미명 하에 오히려 삶의 터전을 빼앗고 더 어려운 환경으로 내모는 일이 지금도 하월곡 3동에서 자행되고 있다.

주거빈곤자의 주거권 확보에 우선을

2000년 9월 건설교통부는 '4인 가구 최저면적 11.2평, 전용 부엌 및 화장실 확보, 적절한 환기, 채광 및 냉난방 설비'등을 내용으로 하는 최저주거기준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2002년 하월곡동 산2번지, 77번지에서 엿본 달동네의 주거환경실태는 이러한 최저주거기준이 과연 정책지침으로서 주거정책에 반영되어왔는지 의심을 품게 한다.

최저주거기준 이하의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달동네 사람들에게 재개발은 그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해주는 사업이기커녕 오히려 그들의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박탈하는 것이었다.

이지현
철거지역 세입자에게 공급되는 1500만원 보증금의 임대아파트는 가난한 달동네 세입자들에게 너무 비싸 대안적 주거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잠정적 재개발 후보지로 옮겨다녀야 했다. 한편 기초생활수급권자를 위한 영구임대주택은 93년 이후 더 이상 짓지 않고 있다. 필요한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공식 대기자만 3만5천여명에 이르고, 서울지역의 경우 지구에 따라 2-3년은 기다려야 입주가 가능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란 최저생계를 겨우 해결할 수 있게 되어 수급권자에서 탈락한 기존 입주자를 내쫓는 것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또 다시 주거빈곤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적절한 주거를 향유할 권리'는 세계인권선언과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아래 사회권규약)'을 비롯한 여러 국제인권규약들에서 보편적 인권으로 인정된 지 오래다.

특히 한국정부가 가입한 사회권규약은 주거빈곤자의 주거권 확보에 우선성을 둔 주거정책을 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주거빈곤자에게 대안적 주거를 마련하는 것은 정부의 시혜가 아니라 국가의 당연한 의무로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거권운동 진영은 1998년 말부터 주거권을 인권으로 인정하고 그에 따라 '최저주거기준, 주거환경개선, 임차인과 철거민보호' 등을 규정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주거기본법' 제정을 주장해왔다.

보편적 인권은 일정한 국가의무를 발생시킨다. 최저주거기준의 현실화에 목표를 둔 △공공임대주택의 확충 △부담능력에 따른 주택가격 차등적용 △주거비 보조제도 시행 등의 조치는 국가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다.

덧붙이는 글 | <인권하루소식> 2249호 2003년 1월 7일자

덧붙이는 글 <인권하루소식> 2249호 2003년 1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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