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토까이 겉은 넘들아아~"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40>자치기

등록 2003.01.09 11:31수정 2003.01.09 16:3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자치기는 당시 아이들의 겨울철 건강을 지켜주는 훌륭한 놀이였다.

자치기는 당시 아이들의 겨울철 건강을 지켜주는 훌륭한 놀이였다. ⓒ 당진군

"그 참! 날씨 한번 희한하네~"
"아, 멀쩡한 하늘만 자꾸 쳐다보모 우짤 낀데? 마른하늘에서 쎄(돈)가 떨어질 끼가, 쌀이 떨어질 끼가?"
"아, 날씨가 이럴 줄 알았으모 아침에 나무라도 한짐 하러 가는 긴데."
"허어~ 이 사람 정말 못 말릴 사람 아이가. 오늘 같은 날 나무하러 갔다가 잘못하모 생사람 잡는다카이."
"안 그라모 심심한데 산토끼나 잡으러 가보까?"

그날은 밤새 내린 쌀눈이 우리 마을의 초가집은 물론 우리 마을을 둘러싼 산들과 들판을 하이얀 눈의 나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 눈이 내렸냐 싶게 눈 시리게 푸르른 하늘에서는 따스한 겨울 햇살이 내려 쪼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햇살에 온 마을이 은빛으로 빛나 눈을 뜨기조차 어려웠다.


초가집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드름에선 술에 취해 밤새 얼어죽은 아들을 부여잡고 아이고, 아이고, 하며 하루종일 울던 그 듬정댁의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마을 앞에 유일하게 한 마지기 정도 있는 미나리꽝에서는 시퍼런 코를 줄줄 흘리는 서너 살짜리 동생들이 우리들이 만들어준 그 스케이트를 신나게 타고 있었다.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
부엉~ 춥다고서 우는데~
우리들은 할머니 곁에~
모두 옹기종기 앉아서~
옛날 이야기를 듣지요~

붕붕 가랑잎이 우는 밤~
붕붕 춥다고서 우는데~
우리들은 화롯가에서~
모두 옹기종기 모여서~
밤을 호호 구워 먹지요~

얼어붙은 물꼬에서 거울처럼 투명한 얼음을 따는 아이들, 들마당에서 제기를 차고 있는 아이들, 활과 새총을 들고 마당뫼로 새 잡으러 가는 아이들, 신작로에서 팽이를 돌리고 있는 아이들, 산수골 들판을 향해 연을 날리고 있는 아이들, 그 곁의 양지 바른 곳에서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 이란 노래를 부르며 까만 고무줄 사이를 폴짝폴짝 뛰며 놀고 있는 마을 가시나들...

내가 열 살 남짓했을 때, 우리 마을의 겨울 아침은 아이들의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와 고함소리, 누군가 징징 우는 소리 등으로 정말 시끌벅적했다. 특히 눈이 소복히 쌓인 그날 아침은 더욱 시끌벅적했다. 그날은 우리 마을의 평소 겨울아침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그날은 대부분의 마을아이들이 공동우물이 있는 들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들었고, 산수골로 열린 들판에서 편을 갈라 눈싸움을 했다.


"저~ 저 넘의 손들이 누구 눈깔(눈알)로 뺄라꼬 또 저 지랄이고. 내 저 넘의 손들을 당장 붙잡아서 메가지(목)로 쥐어틀어놓고 말끼다"
"야, 튀어! 앵금통이다."
"잣대하고 토까이(새끼자)는?"
"야, 이 문디야! 지금 그기 문제가. 일단 튀고 봐야지."
"하여간 저 영감탱이 하고는. 저 영감탱이 볼떼기 좀 봐라. 심술이 혹부리 영감처럼 주렁주렁 매달렸다카이."
"게 섰거라~ 이 토까이 겉은 넘들아아~"

그날, 열살 남짓한 우리 또래들은 눈이 하얗게 덮인 신작로에 나가 자치기를 했다. 신작로는 사람들이 제법 다니는 길이어서 그런지 눈이 꼭꼭 다져져 몹시 미끄러웠다. 자치기를 하기 위한 홈을 찾기도 파기도 쉽지가 않았다. 눈이 워낙 꽁꽁 다져진 데다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에 홈을 파는 데도 시간이 제법 걸렸다.

당시 우리가 했던 자치기는 두 종류였다. 한 가지는 공격하는 쪽이 새끼자를 홈 위에 놓고 잣대로 새끼자를 멀리 띄워내며 노는 놀이였고, 다른 하나는 공격하는 쪽에 원을 그려놓고 잣대로 새끼자를 멀리 쳐내며 노는 놀이였다. 이 때 수비를 하는 쪽은 공격을 하는 쪽의 앞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서 날아오는 새끼자를 막아내야 한다.


이때 새끼자를 땅에 닿지 않고 손으로 받으면 공격하는 쪽이 지게 되며 공수가 뒤바뀐다. 하지만 만약 새끼자를 받지 못하게 되면 새끼자가 떨어진 자리에서 홈에 놓아둔 잣대를 맞추거나 작은 원 속에 던져 넣어야만 공수가 뒤바뀌게 된다. 하지만 수비측에서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에는 공격수가 잣대로 새끼자를 툭 쳐서 튀어 오른 새끼자를 잣대로 힘차게 맞춰서 멀리 띄워 보낸다.

공격수는 이렇게 연속으로 세 번을 칠 수가 있었다. 점수는 새끼자가 떨어진 자리에서 공격수의 홈이나, 원까지 잣대로 한 자 두 자 재어서 계산하고, 이 동작은 곧 다음 공격수에게 넘어간다. 야구처럼 공격수가 죽지 않으면 공수교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때 승부를 가르는 최종 점수는 서로가 정하기 나름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놀이를 모두 즐겨했다. 또 들판보다는 주로 신작로에서 했다. 왜냐하면 자치기는 바닥이 신작로처럼 단단해야 새끼 자가 잘 튀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논에서 자치기를 하게 되면 논바닥이 편편하지 않기 때문에 새끼자를 치기가 몹시 어려웠다. 그런 까닭에 당시 우리 마을 앞을 지나는 신작로 여기 저기에는 자치기 홈이 많이 패여져 있었다.

또 간혹 자치기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서운 흉기가 되기도 했다. 왜냐 하면 우리가 '토까이'라고 부르는 새끼자는 양쪽이 뾰쪽하기 때문에 잘못하여 사람의 얼굴에 맞으면 큰 상처를 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눈에 맞으면 실명을 할 수도 있었다. 그날 앵금통이 우리를 그렇게 쫓아낸 것도 사실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시 우리를 그렇게 쫓아내는 그 앵금통을 두들겨 패주고 싶도록 미웠다.

앵금 앵금통이 우는 밤~
앵앵 춥다고서 우는데~
우리들은 자치기하며~
모두 토까이를 날리며~
앵앵 앵금통을 때려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앞두고 날아드는 문자, 서글픕니다 추석 앞두고 날아드는 문자, 서글픕니다
  2. 2 "5번이나 울었다... 학생들의 생명을 구하는 영화" "5번이나 울었다... 학생들의 생명을 구하는 영화"
  3. 3 개 안고 나온 윤 대통령 부부에 누리꾼들 '버럭', 왜? 개 안고 나온 윤 대통령 부부에 누리꾼들 '버럭', 왜?
  4. 4 추석 민심 물으니... "김여사가 문제" "경상도 부모님도 돌아서" 추석 민심 물으니... "김여사가 문제" "경상도 부모님도 돌아서"
  5. 5 계급장 떼고 도피한 지휘관, 국군이 저지른 참담한 패전 계급장 떼고 도피한 지휘관, 국군이 저지른 참담한 패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