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 김대중처럼 하면 망한다 (2)

범 개혁-진보 진영의 '컨센서스' 부터 확보해야

등록 2003.01.13 11:24수정 2003.01.1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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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적인 사건들'을 나열하자면 이렇다. '인수위 브리핑'을 놓고 벌인 탐색전이 첫 번째 사건이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취소 처분과 관련한 잡음이 두 번째 사건이다. 그리고, 세 번째 꼽을 만한 사건은 비서실장 내정과 관련한 '1등 신문의 특종'이다.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문제점을 지적했고 현재 진행형인 사안들도 있으니 새삼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지금 우리가 곱씹어볼 문제는 세 가지 사건에 대해 각 주체들의 보여준 태도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개혁-진보 진영의 기대만큼이나 큰 것이 수구-보수 진영의 경계심일 것이다. '인수위 브리핑' 사건은 그들이 내심 갖고 있을 경계심의 일단을 살짝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아일보'는 1일자 신문 '기자의 눈'에서 '인수위 신문이 권력이 언론에 보도 기준을 제시하는 장치로 작용할 수도 있다'면서 '인수위 브리핑'을 비판한 바 있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다음날 이를 받아 박종희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사실상 언론을 검열하고 통제하겠다는 것'이라며 공세를 취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김대중 정부 내내 보아오던 그들의 수법이 새 정부 들어서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공격은 이미 시작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나마 당선자 시절에는 허니문 기간이라도 누렸다. 당시 IMF 사태로 모라토리움 위기가 닥치면서 온 나라가 이를 수습하느라 다른 일에 관심 둘 겨를이 없었던 때문이다. 사실상 임기를 시작한 당선자 진영을 총력 지원하는 분위기였고 딴 소리를 냈다가는 즉각 매장당할 분위기였다.

그러나, 노무현 당선자와 인수위를 향한 '그들'의 공세는 매우 빠른 템포로 시작됐다. 취임도 하기 전인데도 벌써부터 '좌파'니 '사회주의'니 색깔론이 횡행하고 인수위가 빚은 각종 '혼선'을 이유로 이러저러한 비판의 칼날이 겨눠지고 있는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에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임기 말 김대중 정부의 공정위가 터트린 과징금 사건은 어쨌든 노무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을 노출시킨 사건이라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취임 초기 공정위를 통해 언론 개혁 문제에 접근하고자 했던 노당선자는 이 사건으로 뒤통수를 크게 맞았다. 따라서, 당선자가 인수위에 '조사'를 지시한 것까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사단이 시작됐다.

인수위가 유감의 뜻을 표하는 선에서 사건을 덮겠다고 순식간에 입장을 정리하면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시민사회가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때 인수위원 선정 문제와 맞물리면서 당선자는 격노했고 급기야 인수위 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한편, 공정위 건을 감사원에서 '특감'하도록 의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잠자코 있었던 야당이 발끈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은 11일 '인수위의 감사원 감사청구는 법적 근거가 없는 월권'이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김 총장의 발언을 전후하여 그들이 비슷한 취지의 보도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것은 물론이다.

한편, 어찌된 영문인지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 뉴스를 '1등 신문'이 8일자 톱으로 '특종'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노당선자와 '1등 신문' 사이의 각별한 인연을 감안하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인수위는 발칵 뒤집혔고 시민사회는 어안이 벙벙했다.

"뒷거래 하자는 것이냐?"는 비판이 쏟아졌고 오비이락인지는 모르지만 이튿날 당선자는 예정에도 잡히지 않았던 '한겨레 신문사'를 방문했다. 이례적인 방문에 대해 당선자 측은 북핵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함이라고 해명(?)했지만 구구한 해석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노무현 후보가 당선자로 신분이 바뀐 지 이제 겨우 이십여 일이 흘렀을 뿐이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이렇듯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앞서 나열한 사건들은 상술한 바와 같이 언론개혁 문제에 있어서 전선이 어떻게 짜여질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언론개혁과 관련하여 노무현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사실 많지 않다. 여론시장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하는 일과 세금을 제대로 부과, 징수하는 '심판 보는 일'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심판'만 제대로 봐도 크게 보아 절반은 성공하는 것이다.

소유구조 문제나 편집권 독립 문제는 국회가 다뤄야 할 사안이며 언론 논조 문제는 언론사 내부의 자정과 시민사회의 견제로 풀 수밖에 없다. 이 사안들에 정부가 끼어 들면 문제만 복잡해질 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정부가 아무리 공정하게 '심판'을 보아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릴 경우 기필코 '꺼리'를 만들어 총공세를 펼쳐 올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싸움판을 정부의 '불온한 언론 길들이기' 내지 '불법적인 언론 탄압'에 맞서는 비판언론과 야당의 '언론자유 수호 투쟁'으로 몰아가는 것이 수지맞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나서야 할 '선수'가 바로 개혁언론과 시민사회인 것이다. 정부는 주거니 받거니 쌍나팔을 불어대면서 세상 시끄럽게 만드는 그들을 직접 상대해야 할 '선수'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만일 노무현 정부가 '과징금 취소 덮기'나 '1등 신문 특종' 같은 '사고'를 칠 경우 잠재적 우군들이 잔뜩 의구심을 가지고 제3지대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공격의 화살을 양쪽 모두에 쏴대야 하는 '비극'이 재현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망가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김대중 정부에 한차례 배신을 당한 경험은 시민사회에 '학습 효과'로 다가오게 되어 있다. 당선자 진영이 '삐끗하는 시늉'이라도 하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반작용이 더욱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언론개혁 진영의 대표 논객인 김동민 교수가 8일자 오마이뉴스를 통해 "인수위를 보면 '언론개혁'이 안 보인다"며 직격탄을 날린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김교수가 특정인을 직접 거명하며 '구시대 정치인'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오버하는 것 아니냐고 힐난할 수도 있겠지만, 언론개혁 문제는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망가지는 것은 일순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김교수가 비판받을 일은 아닌 것이다.

노 당선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시민사회의 비판에 대해 '한겨레 방문'과 '감사원 특감 지시'로 나름의 사인을 보낸 것일 수도 있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그가 취임식 이후 청와대에 갇히고 나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사실 지난 해 12월 19일 밤부터 그랬다. 당선 확정 직후 그의 신분 변화를 실감케 했던 것은 다름 아니라 긴급 출동한 청와대 경호원들이었다. 이제 막 후보에서 당선자로 신분이 바뀐 그 순간 한참 부둥켜안고 감격하고 싶은데 노무현과 사람들 사이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들어와 물리적인 거리를 만든 것이다.

노무현 당선자의 확고한 언론개혁 의지는 믿어 의심치 않지만 문제는 그와 사람들 사이에 어쩔 수 없이 놓이게 될 이러한 거리가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점에 있다.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여야 개혁파 의원이나 개혁적 언론인, 그리고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청와대에 둘러앉아 노당선자와 작전을 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랬다가는 당장 난리가 날 것이다.

김동민 교수가 지적한 것도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언론문제에 있어서 노무현은 개혁적일지 모르지만 그의 정치적 기반인 민주당조차도 개혁성을 의심받는 것이 현실이다. 인수위 시절부터 이처럼 손발이 맞아 돌아가지를 않는다면 인의 장막이 둘러쳐지는 순간 노무현과의 의사소통은 단절된다. 그러면 끝장이다.

이 대목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바로 노당선자 자신을 포함한 범개혁-진보진영의 '컨센서스' 확보 문제다. 각개 전투를 벌여야 할지는 몰라도 각개 약진해서는 안된다. 굳센 단결력을 과시하는 그들이 호시탐탐 '실수'와 '분열'을 노리는 때문이다. 만약 지금처럼 "알아서 잘하겠지..."하고 대충 넘어간다면 십중팔구는 김대중 정권 재판이 될 것이다.

기구를 구성하면 좋겠지만 '심판'과 '선수'가 기구를 같이 만드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만큼 우선 당선자 진영은 '심판' 제대로 보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인 차원이 아니라 가시적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선수'로 나설 사람들은 '포럼'형식이라도 빌어서 정당, 사회단체를 아우르는 의사소통구조부터 갖추어야 한다. 이를 통해 '컨센서스'를 확보한 다음 정당 차원의 역할과 시민사회가 담당할 역할을 분명히 한 후 차근차근 실타래 풀 듯이 일을 진척시켜야 한다.

쓸데없이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경구를 되새김하자. '학습 효과' 때문에 상호 신뢰가 매우 낮은 현 상태에서 별 다른 전열 정비도 없이 각개약진 한다면 서로 엉뚱한 데다가 총질하다가 자폭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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