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2 지난 1990년대초 IAEA에 의해 폐기된 이라크의 원심분리기 주요부품들, 왼쪽이 원심분리기 외장재들이며, 오른쪽은 탄소섬유 회전자들이다. 출처: Albright, D., Institute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Security; IAEA
지난 1990년대초 IAEA에 의해 폐기된 이라크의 원심분리기 주요부품들, 왼쪽이 원심분리기 외장재들이며, 오른쪽은 탄소섬유 회전자들이다.(출처: Albright, D., Institute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Security; IAEA)
부시행정부는 이 같은 공세에 밀리자 이번에는 "IAEA가 이라크의 핵무기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라늄농축 관련 국제전문지인 Nuclear Fuel(9월27일자)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미국 국무성은 당시 미국 외교관들이 외국 정부나 언론을 만날 때 사용하는 이른바 'Talking Points'로 불리는 브리핑 자료를 통해 IAEA가 이라크의 핵무기개발 재개를 입증하는 위성사진을 증거로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IAEA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IAEA가 보유하고 있는 위성사진은 오직 상업용으로서 핵무기개발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진은 전혀 없다고 발표함으로써 미국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바 있다. 당시 미국 민간전문가들은 미행정부 고위직 소식통을 인용하면서 CIA내부에서조차 이라크 핵개발 의혹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었으나 백악관이 이들에게 함구령을 내리도록 함으로써 진실을 은폐했다고 제기하였다.
북한 핵개발 폭로전에 똑같이 적용된 '작전'
아직 한국, 미국 어느 언론에도 제대로 공개된 바 없지만, 핵기술관련 국제 전문잡지인 Nucleonics Week의 지난 10월 24일자 분석기사를 보면 실제로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 제시되어 있다.
Nucleonics Week의 보도는 미국 정보기관이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는 주요 내용은 북한은 자기(磁氣) 상부베어링 집합체용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코발트 파우더와 6000 시리즈의 알루미늄 합금을 입수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개발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찰위성에 의해 촬영된 영상자료로 그 증거로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표 2. 북핵개발 폭로전에서 미국 정보기관의 주장
부시행정부의 주장
1. 고순도 코발트 파우더 : 가스원심분리기의 베어링 부품용
2. 6000시리즈 알루미늄 합금 : 원심분리기 회전자 재료용
3. 건설공사 포착 위성사진 : '90년대말 원심분리기 제조공장용
표 2는 미국 행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정보와 의혹이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는 한 달 전 부시행정부가 이라크를 상대로 제기한 폭로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증거'를 갖고 있다.
우선 코발트 파우더의 경우, 미국 정보기관의 논리는 '고순도 코발트 파우더를 입수하려던 것 같으며 이는 원심분리기 상부베어링에 사용될 수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미국 정보기관이 과연 북한이 정말로 이를 수입하려 했는지에 대한 증거가 없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직접 가스원심분리기 베어링용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둘째, 고강도 알루미늄의 경우, 논리는 "알루미늄 6000시리즈 합금을 대규모 입수하려 했으며, 이는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 부품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루미늄 6000은 산업용이나 재래식 무기로도 사용될 수 있는 다목적적인 물질로 원심분리기용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물질이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핵심적인 물질은 아니다. 알루미늄 6000계열 합금은 알루미늄-망간-규소 합금으로 내식성과 강도가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대전차 로켓같은 재래식 무기나 건축재, 차량용재, 선박용재, 자전거 등 일반 산업계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이를 북한 핵무기개발의혹의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없다.
셋째, 위성사진의 경우, 이번 경우가 처음은 아니며 지난 1999년 미국 공화당에 의해 똑같은 종류의 북한 농축우라늄 핵개발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도 증거자료라고 제시되었다. 그러나 당시 제출되었던 위성사진은 핵무기 개발의혹을 제기하기에는 근거가 될 수 없으며, 이는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의 정치적 선동이라는 미국 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1990년대말을 중요한 기준으로 잡고 있는 Nucleonics Week의 분석내용을 볼 때, 이번에도 미국 정보기관이 갖고 있다는 위성사진은 이때 제출된 위성사진과 다를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David Albright 전 IAEA 사찰단요원 등 세계의 민간전문가들은 북한이 플루토늄에서 농축우라늄 폭탄개발로 전환했다는 증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난 1994년 미국과 제네바협의를 하기 전, 북한은 흑연 원자로를 통해 플루토늄 핵폭탄을 개발하고 있던 것으로 의혹을 받았다. 서구의 핵전문가들은 일반적인 국가들이 정상적인 해외교류협력을 통해 농축우라늄 핵무기를 개발한다 하더라도 10~15년 정도 걸리는 사안이며, 지금까지의 정보들은 북한이 이 쪽 방향으로 진전시킨 것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혹떼려다 혹붙인" 사나이, 켈리 특사
사실 미국은 이 같이 초보적인 수준의 정보만으로 북한이 무엇을 하고 있다고 폭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 북한의 우라늄농축 의혹이 제기되던 당시 Washington Post지는 이에 대해 북일, 남북 등 북한과 한반도 주변 국가들간의 급속한 관계개선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에 핵개발의혹을 던진 뒤, 북한이 부정하면 이를 근거로 "북한이 거짓말하고 있으니 지금까지의 관계개선은 유보하라"는 식의 동북아외교를 펼 계획이었다고 보도했다.
즉 적당한 수준에서 북한의 핵개발의혹 공방을 일으켜 한국과 일본 등의 외교력 강화에 견제를 가하고, 대이라크 전쟁에 집중하려 했던 것이 미국의 전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또는 그럴 수 있다)고 한 발언은 미국이 실제로 예측하지 못했던 반응이었으며, 미국을 오히려 난처하게 만든 상황이다.
국제 핵확산 전문가들은 북한이 만약 핵무기 개발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면 기존 플루토늄추출방식에서 농축우라늄으로 전환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단언한다. 설사 미국의 폭로전을 백번 양보해서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번 폭로전에서 북한은 사실상 기술적인 한계로 진전가능성이 없는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오히려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폐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예측이 핵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어느 국내 우익 북한전문가가 우려하는 것처럼 미국은 현재 잠재적 핵무기개발능력이 별로 없는 북한에게 협상지렛대만 한껏 키워준 꼴이 되었다. 그야말로 혹떼려다가 혹붙인 꼴이 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와의 회담에서 켈리 특사는 북한핵문제가 타결되면 미국이 에너지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켈리 특사가 비록 제네바협정의 이행여부는 불투명하다고 발언하였지만, 미국이 2003년부터 북한에게 전기를 공급해주기로 약속했던 사실을 감안하면 이는 제네바협정의 기본 원칙은 지킬 용의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발언 자체로만 봐서는 매우 온건하고 진전된 태도 같지만, 켈리 특사 자신이 이번 사태를 불러온 당사자 중 한 사람이라는 점을 볼 때 과연 북한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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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 특사, 우리는 지난해 10월 그가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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