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와 참교육 선생님들께

등록 2003.01.14 10:33수정 2003.01.1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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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어김없이 새해가 밝아왔습니다. 지난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는지요? 교사와 학부모는 함께 교육문제를 풀어 가는 동반자인데, 우리 교육현실에서는 어쩐지 편치 못한 관계처럼 보여 늘 안타까웠습니다. 또한 교육을 둘러싼 행정제도 마저 교사와 학부모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이제 아이들은 새 학년을 맞이하고 진학을 하게 됩니다. 또한 많은 청소년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가족의 품속에 있었던 어린아이들도 학교라는 짧지 않은 여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장애를 가진 딸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예비 학부모로서 걱정이 앞섭니다. 아마도 여러 학부모들이 자녀교육 문제로 고민하게 되는 시점이 이맘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선생님.

지난해 말 온 나라의 이목이 대통령 선거에 쏠려 있었을 때, 저는 또 하나의 일꾼을 뽑는 선거를 눈여겨보았습니다. 바로 9만 전교조 선생님들의 대표 일꾼을 뽑는 선거였습니다. 전교조 선생님들은 우리나라 교육개혁을 현장에서 실천해 온 분들이 아닙니까? 그래서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교육부장관이 되는냐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맞서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원영만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이 일꾼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참교육 세상을 열망하는 부모로서 전교조의 일꾼으로 나선 여러 선생님들께 큰 박수를 보냅니다. 또한 장애 어린이를 초등학교에 보내야 하는 학부모로서 선뜻 참교육 일꾼으로 나서준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땅 40만 교사들 중에 왜 하필 전교조 교사들에게 기대를 거는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원정년을 몇 년 늘려 기득권을 지키려는 구태의연한 교사들과 교육관료들에게서 교육 희망을 찾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자녀를 올곧게 키우고자 하는 부모로서 아이들을 기득권 유지의 도구로 여기는 무책임한 논리를 더 이상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물론 전교조 교사들이 아니더라도 참교육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실천해 온 수많은 선생님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사 학생의 관계를 새롭게' 라는 주제로 충주에서 열였던 전교조 '참교육실천 보고대회' 소식을 들으면서 이 편지를 씁니다. 가장 많은 선생님들이 참여한 이번 대회에서 진지한 참교육 실천 사례들이 발표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기대한 만큼 뜨거운 참교육 희망이 모아지고 열매들이 있었는지요? 결의한 대로 학교혁신을 이루고 알찬 참교육 실천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다음 참교육 실천 보고대회에는 학부모들도 참여하여 함께 고민하자고 제안합니다.

선생님!

이 편지를 읽으시는 선생님은 이미 저의 바람을 짐작하셨을 겁니다. 첫째는 하루하루 교육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800만 아동청소년들을 위한 '참교육 과제'를 다시 가다듬어 보자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둘째는 여전히 교육차별을 받고 있는 20만 장애 아동청소년들을 위한 '특수교육 과제'에 대해서 몇 가지 희망사항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심각한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이 더 잘 알고 있겠지요. '학교가 죽었다' '공교육이 위기다', '교실이 무너졌다'는 오래 전부터 들려왔던 소리들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나라 교육문제가 이미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온 사회의 모순으로 뿌리 박혀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결국 교육개혁은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와 뗄 수 없는 것이고, 선생님들은 교육가인 동시에 지역·사회활동가로서 학교 밖 사회도 함께 바꿔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콩나물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그야말로 고된 노동이요, 격무에 시달리는 선생님들께 교사 이상의 역할을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이겠지요. 무거운 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선생님들이 보여준 참교육 희망 때문에 그것을 요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희 학부모들도 선생님들의 짐을 나누어지고 교육모순의 해소를 위해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참교육 깃발을 들고 지난 15년간 선생님들이 달려온 길을 되돌아봅니다. 89년부터 10년이라는 고난의 세월동안 지배권력의 어떤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지켜온 '민족·민주·인간화' 라는 소중한 교육이념은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입니다.

아무쪼록 전교조 선생님들이 모든 학부모와 대중들로부터 진정한 교육개혁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교조는 지난 99년 교원노조로서 합법성을 쟁취하면서 학부모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교육적 입장에서 우리의 권익보다는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고, 아이들의 배울 권리를 침해하는 어떠한 행동도 단호히 거부하겠다" 고 결의를 밝힌 바 있습니다. 그 결의대로 교육현장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이끌어 준다면 언젠가는 참교육 세상으로 뒤바뀔 것이라고 믿습니다.

선생님!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학생들과 장애가 있는 학생들에게 시급한 인간화 교육에 대해서도 말씀 드립니다. 공교육을 포함하여 학교교육은 아마도 어른들의 이기주의에 의해 왜곡되어 '정글의 논리'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교육체계 전반을 시장화하고 있습니다. 학교 안에서 언제까지 소수의 우등생을 위해 다수를 위한 대안 교육을 희생시켜야 할까요?

교실 안에서는 아이들 스스로 '범생이'와 '영구' 라고 냉소하고, 장애인 친구를 '애자' 라고 놀리는 서글픈 현실을 보게 됩니다. 뿌리깊은 비인간화 교육의 모순은 특히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을 한없이 절망스럽게 만듭니다.

많은 장애아동 부모들은 특히 교육문제 때문에 이민을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학습이 어렵고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더욱 필요한게 교육일텐데, 과연 특수교육의 대안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을 받아야 할 학생들은 2.7% 정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만명의 특수교육 대상 중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교육기회에서 소외되고 있으며, 그나마 우리나라의 특수교육은 아직도 완전한 통합과 차별철폐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수교육 문제는 사회적 약자인 장애 아동청소년들의 입장에서 보면 '교육문제의 절반'을 차지하므로 더욱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12월 '장애인통합법 및 연금법대책위원회' 모임에서 이수호 전 위원장을 뵙고 전교조에서 특수교육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한 전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교사와 부모들이 함께 만들어 가자는 취지로 공감하였습니다. 또한 지난해 장애아동 부모단체 토론회에 참석한 도경만 특수교육위원장을 만나 학부모와 특수교사가 함께 고민하고 연대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특수교육 부문에서 교사와 학부모들간에 자연스런 협력이 이뤄지기 시작한 셈입니다.

선생님.

이제 몇 가지 제안을 드리면서 편지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제도적인 뒷받침이 부족하더라도 올해에도 전교조 선생님들께서 '장애아동 담임맡기 운동'에 적극 나서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그리고 지난해 펼쳤던 '장애체험 공동수업'을 모든 학교에서 '장애인 통합 공동수업'으로 발전시켜 교사와 학생들부터 장애에 대한 편견과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통합교육의 제도화'와 학교교육의 대안화를 위해 저희 학부모들과 긴밀히 연대해 나가자고 제안합니다.

저는 최근 장애인인 딸을 대안학교에 보내 볼까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딸이 함께 지내야 할 많은 아이들을 생각하고는 공교육의 정상화, 모든 학교교육의 대안화가 우선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낮은 눈높이에서 인간화 교육이 시작되고, 교사와 부모가 먼저 눈높이를 바꾼다면 어느덧 교실에서도 대안교육의 희망이 자라날 것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교조 선생님들에게서 그 희망을 보고 싶습니다. 그럼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더욱 전진하시기를 빕니다.

선생님의 '참교육 동지'가 되기를 희망하는 학부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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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함께웃는날> 편집위원 장애인교육권연대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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