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선 옛집, 철거만이 능사인가

'기념'이 아닌 '기억'의 공간으로 승화할 수 없을까

등록 2003.01.16 17:44수정 2003.01.16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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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민중들은 조선의 3대 천재로 춘원 이광수, 벽초 홍명희, 육당 최남선을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그들 3인의 개인적 재능만을 높이 산 것이 아니고 그들이 장차 식민지 조선의 독립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비원도 분명히 담겼을 찬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 중 벽초 홍명희를 뺀 2인이 친일의 길로 나아갔으니 당시 그들의 이름깨나 듣고 알았던 조선 민중들의 좌절 또한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당시에도 역시 지명도 높은 인물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컸다.

지난 해 11월 30일자 <동아일보>에는 최남선의 우이동 옛집 보존 논란 문제가 보도됐다.

최남선이 1941년부터 기거하면서 집필활동을 했던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옥 소원(素園)의 보존 여부를 놓고 서울시와 문화재 전문가들이 고민에 빠졌는데 최근 서울시는 이 고택을 시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해달라는 강북구의 요청에 따라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심의했으나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보존 반대론자와 찬성론자의 각각의 주장을 들어보자.

“최남선은 우이동에서 살기 시작한 1941년부터 본격적으로 친일활동을 했다. 친일파의 집을 왜 보존하느냐. 게다가 이 한옥은 건축물 자체로도 그다지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표석 정도만 세워도 되는 것 아닌가.”(보존반대론)

“최남선은 친일파라고 해도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최초의 신체시를 발표하는 등 대표적인 역사인물이고 친일파의 집 역시 소중히 지켜야 할 문화재다. 그래야만 후대에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보존찬성론)



3·1독립선언서를 기초하였고, 문학사적으로 최초의 자유시인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지은 문인이자 역사가인 최남선은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마포형무소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 항변하는 자열서(自列書)를 쓴 바 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죄목을 스스로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다.

첫째, 왜곡기관인 조선사편수회 편수위원이 된 사실(1928년). 둘째, 조선총독부의 중추원 참의가 된 사실(1938년). 셋째, 만주 괴뢰국의 건국대학 교수가 된 사실(1939년). 넷째, 일제말기에 학병권유 연사로 활동한 사실(1943년). 다섯째, 악명 높은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부르짖은 사실 등.


물론 최남선은 자신의 죄를 나열하면서 자백이 아닌 변명을 위해 자열서를 작성했지만 그가 언급한 다섯 가지 죄목은 그대로 반민특위가 정한 친일범죄의 항목에 모두 속하는 내용으로 스스로 범죄를 자백한 꼴이 된다. 프랑스의 경우 나치에 협력한 문인, 언론인, 예술인에게 프랑스 정신을 훼손하였다고 하여 더욱 가혹한 처벌을 가한 것에 비춰봐도 그의 변명은 오히려 그의 죄악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낼 뿐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같은 날인 11월 30일치 <경향신문>에는 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한국 최초 서양화가 살던 근대미술 산실 '고희동 가옥’ 사라질 위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1886∼1965) 선생이 살던 가옥이 한 기업이 이곳에 연구소 건립을 추진하면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종로구 원서동 16번지 창덕궁 서쪽 담장 부근에 있는 이 가옥은 1918년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고희동 선생이 직접 설계해 41년간 살았던 곳.(중략)전문가들은 고희동 가옥에 담겨 있는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존중, 이를 복원해 북촌 및 창덕궁에 어울리는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김태현 간사는 “전통 한옥은 아니지만 한국 근대미술의 산실 인 동시에 일제시대의 주거모습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가옥”이라며 “고희동이라는 화가의 삶이 그대로 담겨있는 문화유적인 만큼 보존돼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문화재적 가치가 없는데다 이 가옥을 매입할 재원도 마련하기 어렵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서양화단의 태두격인 고희동(高羲東)은 일반인에게는 그리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잠시 그의 약력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예술인으로서는 화려한 경력이다.(아래 박스기사 참조)

a 매일신보 1943년 8월 1일치에 실린 고희동의 친일 그림

매일신보 1943년 8월 1일치에 실린 고희동의 친일 그림 ⓒ 방학진

1943년 8월 1일 전쟁 막바지에 몰린 일제는 마침내 조선 청년들을 전선에 내몰기 위해 조선인 징병제를 실시한다.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는 '조선징병제 실시 감사 결의 선양주간'에 맞춰 8월 1일부터 8일까지 (2일은 제외) 1면에 연재 특집으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라는 시화를 대대적으로 내보낸다. 이것은 당대 이름있는 조선인 문인과 화가가 짝을 이뤄 전쟁 동원을 선동한 극악한 범죄행위이다. 고희동의 그림은 바로 8월 1일자에 역시 친일파인 팔봉 김기진의 시에 어울려 실리게 된다. 이 특집 시화에는 문인으로는 김동환, 노천명, 김상용, 이하윤 등이 화가로는 김인승, 김기창 등이 참여한다.

이런 고희동의 생가 보존에 대해서 문화연대와 같은 시민단체에서도 그 문제의식이 희박한 듯 보여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던 중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결국 최남선의 고택이 서울시 문화재 지정에서 제외돼 머지않아 철거될 것이라고 한다. 대신 그 자리에는 새 건물이 들어선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의 판단에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그들의 주장처럼 비록 그 고택 자체로서 보존가치가 떨어지고 최남선이 그 곳에 기거하면서 친일행위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 장소를 친일을 '기념'하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기억'하도록 하는 공간으로 승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번에 최남선과 고희동의 옛집 보존과 관련해 우리는 어떠한 관점을 가져야 할까. 역사적인 인물이 남긴 유형의 잔형을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 인물이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면 두 말할 것도 없고 설령 부정적인 영향은 남긴 인물이라 할 지라도 후세에 반면교사의 산 교육장으로 충분히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공간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도록 만들 것인가'이다. 친일행위자의 물적 유산의 보존과 철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개별 사안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북한산에 박힌 쇠말뚝 뽑아내듯이 모든 친일파의 잔형을 모두 철거하는 것은 오히려 과거사 인식 제고에 걸림돌이 된다. 그런 잔재들이 발견될 때마다 진지하고 깊이 있는 논의로 친일문제를 토론의 광장으로 끌고 나와야 한다.

최남선과 고희동이 친일활동에 적극 참여하던 시절의 옛집은 보존하되 그 곳에 그들의 친일상을 소상히 기록해 후세에게 반성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함이 어떨까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은 누구

1918 최초의 미술단체인 서화협회 창립 주도
1940 조선남화연맹전에 참가, 판매수익금 전액을 일제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헌납
1941 총독부 제2회 조선예술상 회화상 부문 수상
1945 해방 후 조선미술건설본부 중앙위원장과 조선미술협회 회장
1948 한민당 상임위원
1953 대한미술협회장
1955 예술원 원장
1960 참의원

※ 국전에서 오랫동안 심사위원장 역임, 화단 정치의 실세로 커다란 영향력 행사.
/ 방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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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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