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덮인 백무동 계곡임소혁
어느 여름날 오후, 마침 수업이 비어 쉬고 있는데 구내 전화가 왔다.
“선생님, 여기 수위실인데요 옛날 제자 성봉주(가명)라는 분이 찾아왔습니다.”
“네?! 기다리라고 하세요. 곧 나가겠습니다.”
‘성군, 그 녀석이 어떻게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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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군 역시 1972년 주만성(가명)군과 같은 해 담임 반 학생이었다. 키가 가장 작아서 출석부에 1번이었고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은 탓으로 몹시 절름거렸다. 거기다가 열병까지 몹시 앓아서 지능 지수가 낮은 지진 학생이었다. 모든 게 뒤떨어지는 녀석이었지만 학교만은 하루도 빠짐없이 언제나 가장 먼저 등교했다.
수업 시간 질문에는 언제나 꿀 먹은 벙어리로 시험 답안지에는 자기 이름만 간신히 쓸 뿐, 나머지는 제멋 대로였다. 그래서 학급에서 꼴찌는 그가 늘 도맡았다. 짓궂은 반 아이들 등쌀에 무수한 놀림을 받고 시달렸지만, 그는 덤빌 줄도 모르고 언제나 눈물만 훔칠 뿐 나에게 찾아와 자기가 받은 시달림을 한번도 하소연하지 않았다.
소풍 전날 종례 시간이었다.
“성봉주!”
“네, 선생님.”
원거리 소풍 때는 장애 학생이나 신체 허약자는 담임 재량으로 가정학습을 허용케 했다.
“너는 내일 오지 않아도 좋아요. 결석으로 치지 않을 테니.”
“아니에요, 선생님. 전 갈 수 있어요.”
나는 다소 불안했지만 그의 애절한 눈빛에 허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혼자 오지 말고 희규랑 손잡고 같이 와야 돼.”
“네, 선생님.”
금세 표정이 밝았다. 이튿날 내가 소풍 집결지로 갔을 때 그는 벌써 도착해 있었다. 미처 그를 확인하지 않자 열중에서 절름거리며 나에게 다가와서 도착 인사를 했다.
“선생님, 저 왔어요.”
“그래, 고생 많았지?”
“아니에요, 선생님. 희규랑 같이 손잡고 버스 타고 왔어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활짝 웃으며 열중으로 사라졌다.
어느 날 성군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왔다. 서무실에다 등록금을 내고는 내게 인사하려고 왔다. 어머니는 쉰은 훨씬 넘었을 듯,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많은 한(恨)을 간직한 듯 했다.
“선상님, 철모르는 제 자슥 때문에 얼매나 고상이 많으십니까?”
어머니는 더 말을 잇지 못하시고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묻고 한참이나 흐느꼈다.
“글쎄, 자슥이 하도 시원찮아서 중핵교는 안 보내려고 했는데, 그 자슥이 새벽같이 일어나서 핵교 가겠다고 졸라대니 안 보낼 수 있어야지요. 제 자슥 제가 봐도 답답하고 속 상한데 선상님은 얼매나 속이 터지겠습니까?”
“아닙니다. 아이가 착하고 정직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상님. 첫 돌 지난 후 우연찮게 앓더니 한쪽 다리도 절고 열병이 머리까지 옮았나 봐요.”
어머니는 내내 울다가 갔다. 아들 같은 내게 몇 번씩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담배 한 포를 책상서랍에 재빨리 넣고서는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