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7대 의혹' 넘을 수 있을까
야당 개혁파 "정신기강 해이" 비난

시민사회단체도 비판...고건 내정자 23일 3당 방문

등록 2003.01.22 08:33수정 2003.01.2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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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사청문회를 앞둔 고건 전 총리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새정부 초대 총리로 내정된 고 건 전 총리가 20일 자택으로 귀가하고 있다 .
ⓒ 연합뉴스 배재만

새 정부의 첫 총리로 고건 전 총리가 내정됨에 따라 그의 인사청문회 통과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또한 고 전 총리의 총리 내정을 둘러싸고 노 당선자 측과 한나라당 내부 보수파-개혁파 사이의 관계에서 새로운 기류가 형성돼 총리 인사청문회가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 전 총리는 40여년간 공직생활을 거치며 '행정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지만, 인사청문회 자리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 전 총리는 지난 98년 민선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한차례 공개적인 검증의 과정을 거쳤으나, 정치공세로 비취기 쉬운 선거와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지는 인사청문회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노 당선자 측과 민주당에서는 "고건 전 총리라면 인사청문회는 통과한다"는 분위기다. 고 전 총리가 새 정부의 첫 총리로 내정된 이유는 그의 풍부한 국정경험이 노 당선자의 '개혁 대통령과 안정 총리론'에 적합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나라당이 국회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한나라당에 거부감이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고 전 총리는 61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면서 공직에 진출해 박정희 시대부터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을 모두 거쳤다. 75년 박 대통령에 의해 37세의 젊은 나이로 전남지사에 임명된 그는 전 대통령 시절에 교통부 장관(81년), 농수산부 장관(82년), 내무부 장관(87년)을 지냈고, 노 대통령 시절에는 관선 서울시장(88∼90년)을 지냈다. 문민정부 말기 국무총리였던 그는 여야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국민의 정부에도 국무총리와 민선 서울시장(98∼2002년)을 지냈다.

반면 고 전 총리는 서울시정을 이끌면서 복마전(伏魔殿)으로 불리던 서울을 안정시키고 '민원처리 온라인 공개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개혁정책도 편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 노 당선자측은 개혁진영에도 큰 반발은 사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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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공직생활 첫 인사청문회에 나서는 고건

그러나 인사청문회가 그렇게 쉽게만 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한나라당 개혁파 모임인 '국민속으로'는 21일 성명을 통해 "노무현 당선자는 즉각 고건씨에 대한 총리 내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행정의 달인으로 알려진 고건씨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요직은 거의 다 거친 인물"이라며 "안정총리로 적합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무사안일의 표본이고, 그의 처신에 대해 의아한 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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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총리 반대!" 21일 한나라당 안영근 의원이 개혁파 의원 모임인 '국민속으로'가 발표한 고건 전 총리의 총리 내정 반대 성명을 읽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들은 또 "노 당선자의 첫 작품이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고건씨의 총리 임명이라면, 이는 나라의 정신적 기강을 해이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개혁대통령에 안정총리가 아니라, 개혁대통령에 대독총리가 되지 않을까 매우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총리로 내정된 고건씨는 총리제의에 대해 즉각 거절하는 것이 그 동안의 명예와 명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주문하는 한편, "벌써부터 국민의 개혁여망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는 노무현 당선자는 즉각 총리 내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그 동안 한나라당내 서청원 대표 등 주류 보수파들이 노 당선자 측을 공격할 때, 이들 개혁파 의원들은 오히려 당 내부를 향해 "새로운 정권이 출범할 때는 당분간 지켜봐야 한다"며 자제를 촉구해 왔다. 하지만 고 전 총리가 총리 내정자로 지명되자, 구시대 인물이라며 가장 선명한 반대의 깃발을 들고 나왔다.

반면 '좌파 정권 발언'이 상징하듯 지금까지 노 당선자에 대해 비이성적으로 반대를 해왔던 한나라당내 주류 보수파들은 오히려 고 전 총리 내정에 큰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상황이 뒤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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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개혁파 "고건 총리 임명은 나라의 정신적 기강을 해이"

서 대표는 21일 "아직 정식 지명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정치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언급을 유보했다. 박종희 대변인은 "총리가 누가 되든 선입견 없이 국정수행능력과 도덕성에 대해 철저하게 청문회를 통해 가리겠다"며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사항, 개혁과 비전, 안정성을 청문회를 통해 검증할 예정"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이규택 총무는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고건씨는 공개적으로 국회 검증을 받은 적이 없다"며 "장상, 장대환씨도 청문회 이전에는 훌륭하다고 인정받았으나 인사청문회에서 잘 안됐다"고 말해 인사청문회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비쳤으나, 불과 열흘 전과 비교하면 매우 다른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나라당이 노 당선자에게 보인 태도는 의미심장하다. 이규택 총무는 지난 18일 노 당선자와 양당 총무가 만난 자리에서 "새로운 정치의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대단히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한 회동 이후 "얻은 것은 없지만 상당한 의미가 있는 만남"이라고 평가했고, 브리핑을 할 때도 평소와 달리 "대통령 당선자를 모시고 국정현안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내가 심지어는 '점심을 먹고 선물을 하나 주셔야 제가 의원총회 할 때 큰소리 하지 않겠습니까'했더니 (당선자가) 웃기만 하셨다"고 말하는 등 노 당선자에 대해 존칭을 사용했다.

이렇게 분위기가 바뀐 이유는 노 당선자의 각별한 정성 때문이기도 하다. 노 당선자는 17일 병원에 입원해 있는 서청원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만날 뜻을 밝혔고, 18일 의전상 '파격'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양당 총무를 직접 만났으며, 22일 오전 총리 문제와 관련해 협조를 당부하기 위해 양당을 방문할 때도 여당인 민주당이 아닌 국회 다수당인 한나라당을 먼저 방문했다. 뿐만 아니라 공식 발표하기 전에 한나라당에 먼저 통보하고, 내정자를 인사시키기로 하는 등 국회를 존중한다는 최대한의 성의 표시를 하고 있다.

아무튼 지금까지의 정국 구도와 달리 고건 전 총리의 총리 지명을 계기로 노 당선자는 한나라당의 개혁파가 아니라 주류 보수파와 손을 잡는 모양새가 형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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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노 당선자의 전격 제안으로 양당 총무와 회동을 가진후 밝은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이규택 한나라당 총무는 이 회동 이후 "의미있는 만남이었다"고 평가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고건 총리 내정으로 뒤바뀐 한나라당 보수파와 개혁파

이런 상황전개는 일단 고 전 총리의 인사청문회 통과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주류 보수파가 개혁파보다 압도적으로 다수이기 때문이다. "고건 반대"를 선명히 내건 '국민속으로' 회원은 151명의 한나라당 의원 중 이부영·서상섭·안영근·원희룡 등 10여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숫자 못지 않게 인사청문회에서 중요한 요소는 국민 여론이다. 지난해 장상·장대환 총리 내정자 인사청문회 때에도 두 사람이 한나라당에서 특별히 거부감을 가질 만한 인물은 아니었으나 인사청문회를 거치며 여론이 급속히 나빠지자 국회는 거리낄 것 없이 인준을 거부했다.

속좁은 이인제?
노 당선자에 심기가 불편한 자민련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자민련의 심기가 편치 못하다.

22일 노 당선자의 여야 방문은 우여곡절 끝에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당으로 결정됐다.

당초 21일 오전 노 당선자측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방문한다고 발표했다가, 이날 오후 자민련까지 포함해 3당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자민련을 제외한 양당으로 조정됐다고 수정 발표했다.

자민련이 최종적으로 제외된 이유는 자민련에서 거부했기 때문이다. 21일 오후 5시 이낙연 당선자 대변인은 "자민련에서 조금 전에 연락이 왔다"면서 "일본에 계시는 김종필 총재가 주말에 오시는데, 오신 다음에 만났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유운영 자민련 대변인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노 당선자 측에) 내가 연락했다"면서 "총재대행과 사무총장, 대변인, 총무 등이 협의결과 그렇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JP의 부재'는 단순한 핑계로 보인다. 김 총재가 없더라도 이인제 총재대행이 만나면 되기 때문이다.

노 당선자의 자민련 방문 소식이 알려지자 노무현과 '앙숙' 이인제의 만남이 관심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자민련의 거부로 방문이 취소되자 '속좁은 이인제'를 탓하는 목소리가 인수위에서는 흘러나왔다.

유운영 대변인은 '김 총재가 없으면 이 대행과 만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총재가 엄연히 계신데 그럴 수는 없다"면서도 "사실 자민련 분위기가 별로 안좋다"고 말했다. 유 대변인은 "지난번 노 당선자와 총무회담 때 우리를 제외시키고 양 당과만 만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래저래 노 당선자에게 심기가 불편한 자민련은 인사청문회법-인수위법 처리와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노 당선자의 우군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 이병한 기자
고 전 총리도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필연적으로 지난 98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한나라당이 제기했던 '7대 불가사의'가 본격적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당시 한나라당은 (1) 고 전 총리 본인의 군복무 면제 의혹 (2) 차남의 군복무 면제 의혹 (3) 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했는데도 3일간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점 (4) 80년 5·17 비상계엄확대 조치 당시 정무수석으로 1주일간 청와대에 출근하지 않은 점 (5) 87년 6월항쟁 당시 연세대 이한열씨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을 때 내무장관이었다는 점 (6) 90년 수서사건과 관련해 서울시장 재직시 서명을 했음에도 책임을 회피했다는 의혹 (7) 97년 환란 당시 국무총리였다는 점 등을 제기했다.

특히 이중 군복무 면제 의혹은 여론에 민감한 부분이고, 87년 이한열 사망 당시 내무장관이었다는 점은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는 부분이다.

시민사회닩체도 서서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민주노총은 21일 성명서를 통해 "군사독재, 문민정권, 국민의 정부 할 것 없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식 처신술을 펼쳐온 고건 전 서울시장이 노무현 새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에 앉는 것은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국민정서로 보면 매우 실망스런 일"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그렇게도 사람이 없는가"라며 "초반부터 머리 숙이고 들어가는 자세로 어떻게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가겠는가"라고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의 첫 작품인 고건 총리 내정. 국회 최대 다수인 한나라당 주류 보수파가 일단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지만, 인사청문회는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총리 인사청문회는 22일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과 인수위법이 통과될 경우 다음달 10일경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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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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