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저널" 1월 27일자 전면
"진"님에게
안녕하십니까? 저는 코리안 저널을 2년 넘게 매주 구독하고 있는 독자입니다. 귀사에서 구독신청자들에게 무료 우편발송을 해주는 덕택에 신문을 집에서 편히 받아오고 있는 터라, 그 동안 맘에 들지 않는 기사가 있거나 무언가 반론을 제기하고 싶어도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었습니다.
지난주 발행된 코리안 저널을 오늘(28일) 받았습니다. 1면에 실린 칼럼('사설'이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으니 칼럼이라고 하겠습니다)을 읽고서는 편향적인 논조와 논리의 비약 때문에 할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조용히 우송 중지를 요청하려 했으나 어차피 신문사에 절독을 알리려면 그 이유를 밝혀야 될 것 같아, 서로간에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2년이 넘는 기간을 무료로 받아보고 있는 독자로서 그간의 구독료를 대신 할 겸해서 다소 글이 길어지더라도 되도록 정확하고 의미있는 반론이 될 수 있게 적절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려고 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이 '반론문' 혹은 '절독이유서'를 코리안저널 웹사이트에 올릴까도 고려해 보았으나, 정작 그 곳에는 문제의 칼럼이 올라와 있지도 않을 뿐더러 게시판에 올리더라도 님께서 못 보실 수 있을 것 같아 오마이뉴스의 지면을 빌리게 되었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여 제가 난처한 것은, 1면에 있으면서 여러분들이 돌아가면서 쓰시는 것으로 보이는 그 칼럼란에 그 글을 쓰신 분의 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글의 경우 '진'이라는 필명이 남겨져 있기 때문에 편의상 '진'님으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종로인가 누가 한강인가
칼럼 제목이 "종로서 빰 맞고…"여서 그런지 님의 칼럼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흘긴다'는 속담이 주제를 관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칼럼의 첫 문장입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한국에서의 반미사태나 북한 핵문제 등등을 보고 있으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흘긴다'는 말이 떠오른다."
님의 칼럼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질문은, 대체 '종로'는 누구고 '한강'은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수미쌍관의 어법으로 칼럼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부분에
"어떤 때는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흘기는 것' 정도가 아니라 종로에서 맞긴 맞았는데 누가 뺨을 때렸는지도 모르는가 싶어 걱정이 된다"고 하셨지요. 제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아마도 '미국'을 눈흘김을 당하는 '한강'에 비유하신 듯 싶은데 그렇다면 잘못 비유하신 듯싶습니다.
객관적인 증거로 보기에, 님께서 우려하시는 이른바 '반미사태'의 본질은 종로에서 뺨 맞았기 때문에 종로에서 항의하는 것입니다. 글이 장황해질 것 같아 주한미군 주둔 62년 동안 10만건에 달하는 범죄를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겠지만, 수많은 한국민들로 하여금 분노의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이게 한 것은 바로 죄없는 여학생을 무참하게 탱크로 깔아죽이고도 아무 거리낌이 없는 외국군과 그 재판조차 우리 손으로 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상황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 살인사건의 책임자(주한미군)의 처벌과 그 외국군의 통수권자인 대통령(부시)의 공개사과을 요구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이 용인되는 불평등한 조약(SOFA)의 개정을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이 일은 반미나 친미를 논하기 이전에 이미 상식에 관한 문제인 것입니다. 광화문에 모였던 수많은 사람들, 소파개정을 한 목소리로 외치는 국민들의 의식과 정서는 반미 이전에 최소한의 인간적 상식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정녕 모른다는 말씀입니까?
님은 논리적인 주장에 앞서 <뉴욕타임스>의 사설을 인용하셨지요.
"당신들이 원하지 않으면 우리는 떠난다. 감사할 줄 모르는 한국인들이 지하철에서 미군의 뺨을 때리는 마당에 3만7천명의 미군을 이곳에 주둔시키기 위해 매년 30억 달러(탱크와 비행기 비용을 빼고도)를 써야 하는가."
그러나 님께서는 뉴욕타임스의 사설을 인용하시기 전에 그 사설에서 지적하고 있던 사건에 대한 전말을 좀더 살펴보셔야 했습니다. 지하철에서 뺨을 맞았다고 주장한 바로 그 미군도 상대방 한국인을 폭행했고,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 사건의 전말은 가벼운 시비가 섞인 상호간의 폭행이지요. 여기에서 누구의 잘못이 더 컸는지 잘잘못을 따지고자 함은 아니지만, 사건에 대한 공정한 시각을 당부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그 사설을 직접 인용하심으로써 미군이 한국의 안보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가며 희생하는 분위기를 풍기셨지요. 그러나 오히려 실무를 맡고 있는 미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1989년 10월 10일, 미국의 보수적인 헤리티지 재단 세미나에서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담당 실무자였던 국방부 아시아 지역 담당관 조든 대령이 했던 "한국의 방어는 미국만의 제안도 아니고, 한국의 이익만을 위해 미군이 주둔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부족하시다면, 지난 90년 2월 8일 미국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루이스 메네트 주한미군 사령관이 말한 "주한미군 유지가 미국의 국가 이익과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데 있어 가장 돈이 적게 드는 방안"이라는 증언을 귀담아 들으실 필요가 있겠지요.
칼럼에서처럼
"미국의 젊은이들이 먼 남의 나라까지 와서" 겪는 고생을 염려하시는 것도 좋지만,
"그들이라고 왜 실수가 없겠는가? 그들도 잘못한다"라고 이해해주시는 것도 좋지만,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감정적으로 비약해 반발하는 모습이 너무나 위험해 보인다"라고 폄하하시는 것은 정당한 문제제기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세간에 알려진 매향리 미군 폭격장의 문제만 보더라도, 폭격장이 생기고 나서 200여 가구 주민 중 32명이 자살을 기도하고 28명이 죽었으며, 9명이 오폭과 오발탄에 맞아 죽었고, 13명이 심한 부상을 당했으나 보상 문제는 입에 올리지도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간과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92년 이후 법무부 공식집계만 하더라도 주한미군 범죄는 연평균 603건에 이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파의 형사관할권이 보장되지 않아 미군 피의자에 대한 자유로운 조사가 보장되지 못하고 많은 강력사건들이 미해결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주권국가'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현재 군산 미군기지에서는 하루 3천톤 정도의 오폐수가 정화되지 않은 채 서해안 갯벌로 방류되고 있다고도 합니다.
아시아평화연대의 웰든 벨로씨가 말한 대로 "정상적인 사회라면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것이 남한에서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라는 명분으로 너무 오랫동안 정당화되어 왔다"는 현실에 대한 뒤늦은 자각이 어이해서 '반미사태'라는 말 한마디에 도매금으로 넘어가야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언론인이라면 어린 학생들부터 앞장서서 메신저에 리본과 삼베를 붙이는 기막히는 우리의 현실을 보고 '피플파워'를 앞세워 미군범죄수사권을 넘겨받은 필리핀의 예를 알리면서 균형잡힌 한미관계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계속해서 님의 칼럼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지만, 칼럼의 나머지 절반을 채우는 논리의 비약에는 더 이상 대꾸할 가치를 못 느낍니다. '반미'와 '북한 핵'을 뒤섞어서 '대책없는 배짱'과 '모순된 행동'이라는 지적이 정당하다면, 똑같은 잣대로 님에게 "미국만의 입장을 대변할 것 같으면 칼럼을 영어로 써서 뉴욕타임스에 기고하라"고 응수해야 되는 것인가요?
정도를 걷는 동포신문을 기대하며
저는 결코 님에게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한국에 대한 충실한 대변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지 않고 핏줄과 국적을 들먹거리며 편을 가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힘겹게 이민의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재미동포들 가운데 인터넷이 익숙하지 않아 유일하게 한국소식의 전달창구 역할을 할 수도 있는 신문에서 개인적인, 너무도 개인적인 관점을 가지고 진실을 오도하지 말아주시기를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국가이건 권력이건 간에, 언론이 힘있는 자들의 나팔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균형감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얼마 동안의 신문 구독을 끊으면서 쓴소리로 마무리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지는 못할망정 거스르지는 않도록, 그리하여 고단한 이민과 유학생활의 좋은 동포신문으로 남아주기를 당부하는 마음에서 고언을 드립니다.
건필 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에 인용된 자료는 한겨레 논설주간이신 정연주님의 저서 "정연주의 워싱턴 비망록1 서울-워싱턴-평양"과 인터넷 웹사이트 "평화네트워크(peacekorea.org)"에서 도움을 받았음을 밝힙니다.
* "코리안저널(Korean Journal Dallas)" 1월 27일자에 실린 칼럼의 전문입니다.
"종로서 빰 맞고…"
최근 일어나고 있는 한국에서의 반미사태나 북한 핵문제 등등을 보고 있으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흘긴다'는 말이 떠오른다. 굳이 적을 만들어 싸우자는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우려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대상을 잘못 생각하고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생각해도 미국이 한국의 적으로 불릴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뉴욕 타임스는 사설에서 '한국인들은 미국 주둔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는 한국인들이 보호받기를 원하는 이상으로 그들을 보호할 수 없다. "당신들이 원하지 않으면 우리는 떠난다. 감사할 줄 모르는 한국인들이 지하철에서 미군의 뺨을 때리는 마당에 3만7천명의 미군을 이곳에 주둔시키기 위해 매년 30억 달러(탱크와 비행기 비용을 빼고도)를 써야 하는가"'라고 쓰고 있다.
이 사설이 아니더라도 생각해보면 미군 철수, 반미 하지만 미국이 누구 때문에 남의 나라에 가서 생떼같은 젊은이들을 고생시키고 있다는 말인가? 내 아들이 전방 철책선에서 근무하면 오금이 저리고 눈물겨운 고생에 가슴 아파하면서 한국과 아무 상관도 없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먼 남의 나라까지 와서 있음은 왜 당연한 것인가? 그들이라고 왜 실수가 없겠는가? 그들도 잘못한다. 폭력도 하고 살인도 하는 등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걸 부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상황을 바로 판단하자는 것이다. 잘못은 잘못대로 따져야겠지만 감정적으로 비약해 반발하는 모습이 너무나 위험해 보인다. 북한과의 대화 운운하면서 남한내의 국민들끼리의 대화도 안되고 있는 모습이 참 딱하다.
입으로 반미를 부르짖으면서도 미국으로 이민을 바라고, 미국으로 유학을 원하며 미군의 철수를 바라면서, 북한핵에 대해서는 "설마 핵전쟁이야 일으키겠냐"며 대책없는 배짱과 모순된 행동을 보일 때, 경제적으로 세계 선진국이 되겠노라는 한국에서 "미국인은 사절합니다"라고 상점에 포스터를 내걸며 미국인을 공적 1호로 생각하고 있음을 온 세계에 알릴 때 우리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지금 남한만도 60만명의 실직자에다 그 가족들, IMF가 다시 오는 것 같다고 전하는 많은 국민들의 불안감이 여기까지 느껴진다. 한쪽에선 명품으로 휘감고 다니고 BMW를 사기 위해 몇 달전에 예약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며 대낮부터 사우나를 가득 메우고 있는 남녀 등과 반미, 북한 햇볕 정책 등의 부조화와 모순된 부조리가 불안하다.
굶주림을 피해 탈출하는 북한 국민들의 처절함은 또 어떤가? 북한 어린이들의 그 앙상한 팔다리와 퀭한 눈을 바라보며, 그들을 그런 위기로 몰고 간 김일성, 김정일의 대를 물린 독재가, 국민들의 피로 만든 미사일, 핵 등 군사무기와 그들의 권력 놀음에 화가 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전투적이고 섬찍한 이들의 포스터를 보았는가? 이 모든 위협에 대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
어떤 때는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흘기는 것' 정도가 아니라 종로에서 맞긴 맞았는데 누가 뺨을 때렸는지도 모르는가 싶어 걱정이 된다. 다만 이런 모든 염려가 단지 우려와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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