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운 쫓고 풍년 비는 신명 굿판

정월 초 진도 걸궁농악놀이

등록 2003.02.06 01:16수정 2003.02.0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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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상쇠를 잡은 국악협회 조열환 회장과 걸궁행진

상쇠를 잡은 국악협회 조열환 회장과 걸궁행진 ⓒ 김문호

서민들의 삶 속에 함께 하던 민속놀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일상화되던 민속놀이가 이제는 규격화된 무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형식화 혹은 상품화 되고 있다.

아직까지 거리와 마당에서 펼치는 걸궁농악이지만 귀신을 불신하는 과학적 사고에 시민들의 호응도가 떨어져 걸궁패는 신명의 불을 지피는데 어려움이 많다.


진도국악협회(회장 조열환)는 정월 초이틀부터 3일 동안 마을과 집집을 돌며 굿판을 벌였다. 보통 정월 초부터 대보름날까지 이어지는 걸궁농악은 마을의 액운과 질병을 몰아내고 그 해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농악놀이이다. 국악협회 회원으로 구성된 진도농악단원은 매년 새해를 맞아 농악 굿을 벌여 사라져 가는 세시 민속놀이를 전승하고 있다.

a 걸궁농악단 기

걸궁농악단 기 ⓒ 김문호


a 인기 만점 포수. 익살과 공포감을 주는 포수는 걸궁농악에서 인기를 독차지 한다

인기 만점 포수. 익살과 공포감을 주는 포수는 걸궁농악에서 인기를 독차지 한다 ⓒ 김문호


a 올바른 군정을 위해 의회에서 한판 굿을 벌였다

올바른 군정을 위해 의회에서 한판 굿을 벌였다 ⓒ 김문호

걸궁농악의 발상지, 지산면 소포리 주민들이 중심이 된 농악단원은 초이튿날 소포리와 안치리 마을에서 굿을 치고 다음날은 진도읍에서 행정기관 및 사회단체를 돌며 진도의 반영과 무사안일을 빌었다.

걸궁패는 마을에서 당산굿과 거리굿을 치고 집에서 청하면 이들은 대문 앞에서 "쥔네 쥔네 문열어주소!"하면서 문굿을 친 후 마당에 들어서서

깽매 깽매 깽 서방
노랭이 삼촌 이서방
장가라고 같더니
조각 잠지를 얻어서
데테라고 매놓니
빵그작자 벌어져!


a 장구를 치고 있는 아름다운 춤사위

장구를 치고 있는 아름다운 춤사위 ⓒ 김문호


가락에 맞춰 마당굿판을 벌이고 본채 및 사랑채 등 동서남북 및 중앙의 5방진을 돌며 굿을 친다. 이 때의 축원은


당산 하납시(할아버지), 한마니(할머니)모시고
5방 신장, 6방 천리궁에
잡귀 잡신을 몰아내어
당산주산을 처 올리세.


반침(마루) 앞에서는 가정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성주를 향해 성주굿을 올리고 정재(부엌)에서는 조왕굿을, 우물에서는 '어따 이 샘물 잘 난다. 벌떡 벌떡 잡수쇼'하며 샘굿을 친다. 외양간, 돼지우리에서도 각각의 굿을 처 무사하기를 빌었다. 어디에든 신은 존재하고 그런 신들이 길흉화복을 주관한다고 믿었다.


a 장구치는 소녀

장구치는 소녀 ⓒ 김문호

그래서 나쁜 행동이나 초상집을 다녀오면 부정탄다하여 일정한 기간이 지나지 않으면 제례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보이지도 않는 귀신들이 세상사를 지배(?)했다. 그래서 신에 대한 반항으로 마을공동체는 살아 움직였을까?

걸궁농악은 집사, 한량, 광대, 포수가 각각 1명에 쇠, 징, 북, 장구, 소고 등 30여명으로 구성되며 상쇠의 쇳소리 가락에 맞춰 굿이 진행된다.

집사는 앞이 붉은 색과 뒷면이 푸른색 옷에 색동소매가 달린 도포를 입고 뿔관을 쓰고 부채와 쇠꼬리가 끝에 달린 지휘봉으로 굿판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포수와 한량, 광대는 구경꾼들에게 익살스런 모습으로 분위기를 돋운다. 주민들에게는 가면과 총을 든 포수의 익살스런 동작이 최고 인기를 끌었다. 개구쟁이 꼬마들은 '모자란 듯 익살스런 모습'의 광대를 향해 혀를 내밀어 놀리는가하면 살짝 굿판에 끼어 들어 엉덩이를 때리고 도망치곤 했다.

a 걸궁농악에 등장하는 선비, 혹은 바람둥이 한량

걸궁농악에 등장하는 선비, 혹은 바람둥이 한량 ⓒ 김문호


a 걸궁농악에서 청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포수

걸궁농악에서 청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포수 ⓒ 김문호


a 어리숙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광대

어리숙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광대 ⓒ 김문호


굿판이 무르익으면 주인은 주안상을 내와 대접하고 곡식이나 돈을 집사에게 전달했다. 술기운에 거나해진 걸궁패는 더욱 신명난 굿판을 벌였다. 온 종일 뛰고 춤을 춰도 지치지 않았음은 온 동네 주민들이 함께 하는 축제였기에 가능했으리라.

a 안내를 맡은 이병진 예총진도지부장

안내를 맡은 이병진 예총진도지부장 ⓒ 김문호

집사역을 맡은 이병진(65) 예총진도지부장은 "세상이 바뀌어 주민들의 참여가 적다"고 아쉬움을 나타내며 "60년대까지만 해도 각 가정에서 먼저 굿을 처 달라고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며 옛날을 회고했다. 당시에는 웬만한 마을에도 걸궁패가 있어 마을경쟁이 심했다. 특히 소포 걸궁은 당대 최고였고 진도읍 남동리 걸궁 등도 군민들 사이에 명성을 날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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