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10행 79자의 명문은 사자빈신사터 사사자석탑의 내력을 설명해주고 있다. 만약 이런 기록 외에 더욱 정확한 기록들이 남아있었다면 사자빈신사터와 사사자석탑은 더욱 생생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으리라. 아래 기단 정면에 새겨져 있다.권기봉
바로 이 탑을 ‘사사자석탑(四獅子石塔)’이라 불렀다. 상층 기단부에 네 마리의 사자가 있기에 후대에 와서 그런 이름을 붙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모양새가 퍽 재미나다.
일단 숏다리에 두툼한 살집이 돋보이는 가슴, 포효하듯 벌린 입 등 일반적인 사자의 이미지와는 달리 유순하면서도 귀여워 보이기만 하다. 아무리 사자빈신삼매(獅子頻迅三昧)에 들어 위엄을 뽐낸다 한들 그저 귀여운 아기 사자에 지나지 않을 모습이다. 위엄 있어 보이려 애쓰는 사자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런데 여기 더욱 정겨운 것이 하나 있다. 네 마리의 사자 한 복판에 책상 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나비매듭’ 사나이. 두건을 두른 한 사내가 네 마리 사자의 중간에서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싼 채 정좌하고 있는데, 요상하게도 두건을 나비매듭으로 질끈 동여맸다. 지권인(指卷印)을 했으니 과거불인 비로자나불인데, 두건을 두른 모습이며 앙증맞은 나비매듭이 그 동안의 부처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다. 역시 먹기만 하고 운동은 안 하고 앉아만 있었는지 온몸이 탱탱해,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자아낸다.
| | 그대, '아우훔(AUM)'과 ‘침묵’을 아는가? | | | 네 마리 사자의 입 모양에 서려 있는 진리 | | | | 사자빈신사터 사사자석탑이나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괘석리 사사자삼층석탑 등의 사자들은 각기 다른 크기로 입을 벌리고 있다. 과연 여기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허균은 <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돌베개, 2000)에서 “네 마리의 사자가 각각 다른 정도로 입을 벌리고 있는 데에는 나름의 오묘한 불법이 서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사자가 입을 크게 벌려 치아가 드러난 상태를 산스크리트어(Sanskrit; 梵語)의 ‘A'(아) 발음으로, 그것보다 약간 작게 벌린 것을 ’U'(우) 발음으로, 그것보다 작게 벌린 것을 ‘M'(훔) 발음으로, 마지막으로 완전히 꽉 다문 상태는 ’M'(훔) 발음 뒤에 뒤따르는 ‘침묵’ 상태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AUM'(아우훔) 소리가 고대 인도 브라만교(敎)의 경전인 베다의 찬미와 주문의 신성한 언어로부터 왔다”며
1) “‘A'는 경험의 세계와 함께 있는 의식의 상태이고, 2) ‘U'는 꿈의 미묘한 형태에 대한 경험과 더불어 꿈꾸는 의식의 상태이며, 3) ‘M'은 꿈꾸지 않는 깊고 잠잠하고 미분화된 의식의 자연적 상태이고 4) ‘A'와 ’U'와 ‘M' 뒤에 오는 침묵은 궁극적인 신비의 세계이며, 그곳에서 선험적인 법성(法性)과 일체가 되어 법성이 자아로서 체험되는 단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그는 “‘AUM'(아우훔)의 발음과 침묵은 존재의 전체에 대한 의식을 발음으로 상징화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 권기봉 | | | | | |
한편 이 비로자나불 머리 윗부분 즉 갑석 아랫부분에 아주 선명한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까이 가서 유심히 살펴보지 않고 그저 멀리서 조망만 했다면 찾아볼 수 없었을 탐스런 연꽃 한 송이다. 특히 도톰한 꽃잎과 확연히 드러나는 꽃술이 매력적이다.
사자들은 자리를 바꾸고, 몸돌은 영영 떠나버렸네
그런데 아무리 사자빈신사터 사사자석탑 네 마리 사자가 아기자기하고 ‘나비매듭’ 사나이가 귀엽다 한들, 여유를 갖고 찬찬히 뜯어보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든다. 바로 ‘네 마리 사자의 배치’와 ‘석탑 몸돌과 지붕돌의 놓임’에서 드는 느낌이렷다.
먼저 네 마리의 사자가 앉은 모양새는 퍽 그럴 듯하지만,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의 그것과 비교하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인다. 보통 사사자석탑의 경우 구례 화엄사의 사사자삼층석탑이나 원통전 앞에 있는 사사자석탑 등에서와 같이 앞에서 보았을 때 왼쪽 것이 입을 가장 크게 벌렸고 오른쪽이 그 다음, 그 뒤 사자의 입은 보다 작게, 마지막으로 왼쪽 뒤편의 사자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즉 앞 왼쪽 사자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벌린 입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