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비교 사이트 이대로 좋은가

업체간 출혈 경쟁 유도로 시장 질서 위협

등록 2003.02.10 02:47수정 2003.02.1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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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홈시어터를 장만하기 위해 가격비교사이트에서 검색을 한 주부 김모(44)씨는 구입을 위해 최저가를 제시한 인터넷 쇼핑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해당 인터넷 쇼핑몰의 직원은 재고가 없어 배송이 불가능하다며 다른 제품을 구입할 것을 권유했다.

올해 대학생이 되는 김모(20)군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최저가를 제시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디지털 캠코더가 알고 보니 정식 수입제품이 아닌 밀수품이었던 것이다. 김군은 쇼핑몰에 강력히 항의했지만 해당 업체는 묵묵부답이다.

알뜰 네티즌들 사이에서 쇼핑 길잡이로 각광 받았던 가격비교사이트가 업체간 출혈경쟁을 불러 소비자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운영중인 가격비교사이트는 에누리, 오미 등을 비롯 오케이프라이스, 나와요닷컴, 짠돌이닷컴 등을 비롯 수십여개. 이용자 수의 증가, 입점 업체 수의 증가로 과거에 비해 가격 정보의 폭이 훨씬 다양해졌지만 이로 인한 문제점도 속속 들어나고 있다.

가격비교로 인한 업체간 출혈 경쟁 심화

지난 달 용산전자상가의 상인 단체인 용산전자단지협동조합은 가격비교사이트에 대한 대책회의를 가졌다. 조합측은 최저가 판매로 인한 경쟁이 심화되면서 업체들이 적정가를 제시하지 않고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용산에서 컴퓨터 상가를 운영하는 김모(35)씨는 "인터넷에서 이미 최저가를 보고 오는 손님이 많으나 그 가격에 팔면 인건비는 커녕 세금 신고도 어렵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김씨는 최저가를 제시하는 업체 대부분은 온라인으로 영업을 하는 소규모의 영세업체들로 이들의 가격이 오프라인 전체의 가격구조를 파괴하고 있으며 오프라인 업체를 도산으로 몰고 간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저가를 제시하려는 쇼핑몰들이 많아지면서 카드깡 등 불법 행위에 이용된 제품은 물론 밀수 제품을 등록하여 판매하는 경우까지 생겼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도매상이나 수입원들이 판매 촉진을 위해 소매상들의 최저가 등록을 장려했다가 나중에 적정 마진 자체가 무너져 소매상들이 판매를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외산 음향기기를 수입하는 한 수입원 관계자는 "가격 조정을 위해 애쓰고는 있지만 한번 무너진 가격선의 회복은 쉽지 않으며 이 때문에 대리점의 항의가 만만치 않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카드 결제 회피하는 등록업체도 많아

기자가 취재를 위해 가격비교사이트에 접속하여 검색해 본 결과 현금 카드 동일가 쇼핑몰이 아닌 곳도 상당수 눈에 띄었고 최저가를 제시했지만 막상 구매페이지로 이동하면 재고가 없다고 표시한 쇼핑몰도 있었다.

한 가격비교사이트에서는 현금, 카드 구매가를 분리해 판매하는 것 자체가 위법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출력되는 결과를 '현금가', '현금/카드가 동일' 쇼핑몰로 분리하여 등록 업체들의 위법 행위를 사실상 방조하고 있었다.

a 한 가격비교사이트, 현금 카드 동일가가 아닌 이른바 '위법 쇼핑몰'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한 가격비교사이트, 현금 카드 동일가가 아닌 이른바 '위법 쇼핑몰'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 채경민

교묘하게 현금 구매를 유도하는 사이트도 제법 많았다. 현금, 카드가 동일임을 명시해 놓고도 마일리지를 현금으로 되돌려 주어 사실상 현금, 카드가에 차이를 두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오프라인 업자들은 "가격비교사이트가 사실상 위법행위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는데도 단속은 행정지도 차원의 공문발송에서 끝나고 있다"며 "강력한 단속이 없는 한 가격비교사이트가 이런 식으로 변질되어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가격비교사이트의 책임회피

최근 한 가격비교사이트는 사이트 검색 결과마다 자체 약관을 들어 가격비교검색을 통해 쇼핑을 하다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단 가격비교사이트 측에서는 정보 중개의 역할만을 하기 때문에 소비자 피해에 대해서는 소비자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책임의 한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평소 서비스를 즐겨 이용한다는 신성섭(21, 대학생)씨는 이는 문제 발생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피해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공정위 차원의 표준약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격비교사이트, 자구책 마련 나서

이러한 지적에 대해 가격비교사이트들도 나름의 대책 마련에 애를 쓰고 있다.

일부 품목에 대해 입점 업체가 일정 수준 이하의 최저가를 제시하지 못하도록 하고 지나치게 낮은 가격이 등록될 경우 자체적인 조사를 거쳐 필터링을 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상품의 재고가 없으면서도 허위로 등록해 놓은 경우를 막기 위해 '이용자 신고코너'를 활성화 하는 곳도 있다.

현금, 카드가 차별을 막기 위해 등록업체들에게 불법 행위를 시정하도록 요구하고, 업체가 이를 수용할 경우 등록비(입점비)를 할인해 주는 혜택도 마련했다. 또한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보험의 성격을 띤 인증제도를 실시하여 공신력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짐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다.

인터넷을 통해 가전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최모씨는 가격비교사이트의 주 수익원이 입점 업체의 수수료이므로 입점업체를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보험 형태의 인증제도 역시 유료로 운영되기에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통전문가들은 이러한 업체들의 자구책이 자칫 잘못하면 유통업체간의 담합, 가격통제 등불공정 상거래 행위로 이루어 질 수 있는 만큼 정부가 가격비교사이트 이용자 보호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등록 업체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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