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인사에 평검사도 참여해야
정치 공방 예상되면 '특검'도 수용하라"

[현장] 서울지검 평검사들의 '도전적 문제제기'

등록 2003.02.15 16:49수정 2003.02.1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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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15일 밤 10시>

"검찰총장 인사에 평검사 참여하도록 해야,
검사동일체 원칙 보완 위해 '항변권' 인정"


평검사 회의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조욱희 검사(왼쪽)와 유일준 검사.
평검사 회의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조욱희 검사(왼쪽)와 유일준 검사.오마이뉴스 황방열

평검사들이 검찰총장 인사에 참여하겠다고 나서 파문이 예상된다. 이들은 또 검찰 수뇌부들이 기본적으로 취해왔던 '특검제 불가' 입장과는 달리 정치공방이 예상되거나, 국민들이 요구하면 특검제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주목된다. 아울러 이들은 그간 논란이 되어온 '검사동일체' 원칙과 관련, '검사들의 항변권'을 수용할 것과 '사건처리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서울지검 평검사들은 2월 15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무려 10시간에 걸친 마라톤 간담회 갖고 이같은 검찰개혁 해법을 제시했다.

서울지검 평검사들은 이날 진행된 간담회에서 평검사가 참여하는 검찰총장 추천위원회를 통한 검찰 총장 임명과 검사 항변권 인정 등을 포함한 개혁안을 제시했다. 검찰총장 인사에 평검사들이 직접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청와대 등 정치권 인사들의 비공식적인 채널이나 접촉을 통한 외압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대처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사건 처리 관련자들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명시해 놓자"


또 그간 논란이 돼 온 검사동일체 원칙을 보완하기 위한 방안으로 '검사 항변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더불어 어떤 사건을 처리했을 때 결정 선상에 있는 관련자들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기재해 놓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처럼 주임검사 한 사람이 책임을 뒤집어쓰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날 발표된 회의 결과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정치적 공방이 예상되거나 국민들이 요구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특검제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검찰의 수사가 국민적 의혹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판단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초기에 법무부 장관이 특검제 실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져, 이후 법무부와 검찰내부에서 많은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8시경 서울지검의 평검사들의 최선임으로 ‘평검사 간담회’를 이끈 조욱희 검사(형사 7부)가 기자실에 내려와 5쪽 짜리의 회의결과 발표문을 읽어내려갔다. 조 검사가 밝힌 평검사 회의 내용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준사법 기관으로서의 위상확보 방안
△평검사들이 포함된 '검찰총장 추천위원회’구성, 복수 후보를 대통령에게 추천한 후 대통령이 지명한 총장 후보를 국회 인사청문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
△검사인사는 검사심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 검찰총장이 행사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의 구체적 사건 지휘권은 폐지하고, 검찰총장의 지휘권 행사도 투명하게 행사
△검사동일체 원칙 중 상명하복 규정은 존치하되 항변권을 인정하고, 결재과정에서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개선

▲청와대나 정치권의 외압에 대한 대처 방안
△청와대 관계자나 정치권 인사들이 비공식적인 채널이나 접촉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폐해를 근절하도록 철폐
△향후 검찰 내부의 정치적 중립 훼손 사례에 대해서는 평검사회의의 공론화를 통해서라도 철저히 문제 제기

▲특별검사제도 관련
△검찰의 수사결과와 상관없이 정치적 공방이 예상되고, 국민들이 특검제를 요구하는 사안에 대하여는 특검제 수용
△법무부장관에게도 특별검사의 발동 요청권 부여

▲검찰 인사 관련
△검찰인사는 평검사들 대표가 참여하는 검찰인사위원회의 실질적인 심의를 거쳐 행사
△검사장 승진심사 시 일정 근무경력 이상 검사들의 평가가 반영되어야 하고, 검사 인사시 에도 상급자뿐 아니라 동료, 후배 검사들의 평가도 반영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음.
△검사들이 승진이나 보직에 구애받지 않고 평생 검사로 근무할 수 있도록 검사인력 운용방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였고,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었음.
△평검사협의회를 정례화하고 아울러 수석검사모임, 기수별 검사모임 등을 활성화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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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검 평검사회의 결과 발표문 전문.



이들은 또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고조되고 있어 본질적 기능마저 위축될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진단하고,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것은 검찰 스스로 개혁해 나가지 못한 데에 큰 책임이 있다고 반성했다.

또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국민들의 고충을 충분히 들어주고 이를 속 시원히 해결해 달라는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자성하는 의견들이 많았다.

"전체 검사를 개혁대상으로 매도하지 말라“

그러나 이들은 전체 검사들을 일방적인 개혁대상으로 매도하고 타율적인 개혁대상으로만 간주하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 우려했으며, 한편으로는 검찰 개혁은 검찰구성원의 중지를 모아 추진할 때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 하에 평검사회의를 개최하게 된 것이라고 이날 모임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들은 회의 결과를 담은 건의문을 만들어 다음 주 초 유창종 서울지검장을 통해 검찰총장에게 전달키로 했다.

유 지검자은 이날 오전 "기존 방침과 다른 안이 나오더라도 지검장으로서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고,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선에서 결정할 문제는 적극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누가 검찰총장 적임자인지는 검사들이 더 잘 안다"
조욱희 검사, 김기동 검사와의 일문일답

-특검제를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봐도 되는 것인가.
“그렇다. 한발 더 나가서 검찰이 아무리 해도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할 사건, 즉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법무부 장관이 미리 특검제로 수사하자는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검찰총장 추천위원회를 구성안은 기존 법무부안과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위원회에 평검사들이 참여하자는 것은 검찰총장 인사에 평검사들이 개입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그런 내용이다. 누가 장관과 총장의 적임자인지는 같이 일한 검사들이 제일 잘 안다. 검찰총장 추천위원회에는 검찰외부인사들도 참여해야겠지만, 외부인들은 사실 언론보도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하는 것 아닌가.”

-검사 항변권은 법무부에서도 얘기한 부분인데.
“그렇다. 검사항변권은 법무부도 개선안에 포함시킨 부분이다. 오늘 더 중요하게 논의된 것은 사건처리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담당 부장과 차장, 검사장이 이런 의견을 내서 사건이 어떻게 처리됐는지를 확실히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검찰개혁의 주체는 검사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으로 봐도 되나.
“당연한 것 아닌가. 내부 사정을 제일 잘 알고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검사들이다.”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도출한 건가.
“서울지검 평검사 96명 중 대부분이 참석했다. 미리 의견을 받아 정리한 20여개 주제를 갖고 토론을 벌였다. 각 사안에 대해 검사들 사이에 이견이 많았고 개별 안건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검찰 총장에게 내는 건의안은 어떤 방식으로 작성할 것인가.
“의견이 모아진 결론만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각 안에 대해 찬성 얼마, 반대 얼마 식으로 각각의 의견을 그대로 보여줄 것이다.”

-언론에 알리지 않기 위해 발표문에 제외한 부분이 있나.
“없다.”

-외부의 검찰개혁 방안 중에 반대목소리가 높았던 부분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

-대북 송금 사건에 대한 논의는 없었나.
“처음부터 특정사안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기로 배제했다.”
/ 황방열 기자


<1신:15일 낮 5시>

말문 터진 검사들, 그간 왜 침묵했나?


서울지검 평검사 90여 명이 오전 ‘서울지검 평검사 간담회’를 열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와 인사문제, 국민 신뢰회복 방안 등에 대해 격론을 벌이고 있다.

주요 시국현안 처리를 위해 간부급 검사들이 회의 형식으로 모인 경우는 그간 더러 있어왔으나 평검사들이 간담회 형식을 빌어 이처럼 공개적으로 모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오늘 간담회에서 모아지는 평검사들의 의견은 검찰 수뇌부에 적잖은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무슨 얘기들을 나누고 있을까? ‘서울지검 평검사 간담회’에 참석한 검사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는 모습.
무슨 얘기들을 나누고 있을까? ‘서울지검 평검사 간담회’에 참석한 검사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는 모습.오마이뉴스 황방열
오늘 평검사회의는 오전 10시 15분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비공개로 진행된 탓에 그 토론내용을 두고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검찰개혁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데다 현대상선 대북송금건에 대해 검찰이 '수사유보'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검찰내부에서도 논란이 적지 않아 이에 대한 젊은 검사들의 반응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졌다.

평검사회의 대변인을 맡은 김기동 검사(마약수사부)는 기자들의 요청으로 오후 4시경 회의 진행상황을 전하기 위해 기자실에 내려와 “검사들 간에 격론이 벌어져 저녁 늦게나 결말이 날 것 같다”며 “이렇게 말 잘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말을 안하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 검사는 “중요사안에 대한 외부자문, 상향식 평가 등 20여 가지의 세부안건 중에 아직 절반도 얘기를 끝나지 못한 상태”라며 “회의내용을 모두 녹음해 나중에 문서형태로 정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어제(14일) 대북송금건에 대한 대통령의 해명이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토론도 있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김 검사는“대북 송금 건을 비롯해 특정 사건의 처리방향과 특정인에 대한 부분은 처음부터 토론대상에서 배제하고 순수하게 검찰개혁방안에 대해서만 토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북송금', 특정인에 대한 부분은 토론에서 배제

이날 검사들은 20여 소주제를 선정, 기본적 쟁점이 되는 사안부터 차례대로 토론을 거쳐 대략적인 결론을 내리며 회의를 진행했다. 이들은 각 안건에 대해 토론을 통한 합의도출을 원칙으로 정했으나, 합의가 안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표결에 부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날 선정된 소주제에는 ▲ 특별검사제 도입 ▲ 정치적 중립성 확보방안 ▲ 검찰 인사제도 ▲ 검사동일체 원칙 ▲ 수사자문위원회 구성 ▲ 상향식 인사평가 등 외부에서 제기한 개혁방안과 그 외 검사들이 제기한 아이디어들이 포함됐다.

서울지검 청사 15층 중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는 평검사 간담회에서 앞서, 오전 9시 30분 같은 장소에서 유창종 서울지검장과 간부진이 참석한 서울지검 전체검사회의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우수수사 사례와 무죄판결 분석발표, 대북송금 사건 수사유보 결정과정에 대한 설명 등으로 진행됐다. 이 회의를 끝낸 뒤 부부장급 이상 간부들이 퇴장한 가운데 90여명의 평검사들만 참석한 가운데 '평검사 간담회'가 시작됐다.

이날 평검사 간담회에는 카메라, 사진기자 등 30여명의 기자가 취재에 나섰다. 검찰측은 평검사 회의장인 중회의실에서 5m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철문을 막았으며, 회의장 촬영도 평검사 회의 시작에 앞서 5분 정도만 허용할 정도로 보안에 극도로 신경을 썼다. 직원증을 달지 않은 한 검찰직원이 출입을 제지당하기도 했다.

평검사 간담회 참석자들은 점심식사도 김밥과 음료수를 주문해 해결했으며, 쉬는 시간에도 회의장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유창종 지검장 “어떤 내용이든 적극 반영하겠다”

서울지검 평검사들의 간담회장 입구에 나붙은 안내문.
서울지검 평검사들의 간담회장 입구에 나붙은 안내문.오마이뉴스 황방열
평검사 간담회가 시작된 뒤인 오전 11시경 유창종 서울지검장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검찰의 자생력과 단합력을 테스트하는 시금석이 되는 모임이니만큼 조직을 기사회생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며 “평검사회의의 결과를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유 지검장은 “평검사들이 수석검사 모임과 평검사회의를 열었으면 한다는 제안을 해와 적극 수용했다”면서 “내가 검사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100%다 할 것이고, 검찰총장과 장관께 보고해야 할 것은 적극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 내부 움직임을 결속시키기 위한 평검사 회의가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유 지검장은 “후배 검사들이 그렇게 좁은 시각으로 회의를 진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또 “서울지검 간부들이 최근의 수석검사 모임과 평검사 간담회를 허락한 것이 수사유보라는 틀을 이미 정해놓고 여기에 평검사들의 의견을 맞춰가려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애초 나온 안은 수사불가와 수사착수 두 가지 밖에 없었다”며 “그렇게 해서 틀이 맞춰지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유 지검장을 비롯한 서울지검 간부들은 평검사 간담회가 끝난 뒤 퇴근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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