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2000년대에 열린 대보름축제에 다녀오다

부여 2003 계미년 정월대보름축제

등록 2003.02.18 15:32수정 2003.02.1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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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옛 도읍의 느낌을 주는 이름, 부여.

두 번째 만난 부여는 몇 년 전보다는 조금 번화했지만, 여전히 관광지라기보다는 고향 마을의 이미지다. 마치 휴식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듯, 한쪽에는 백마강이 잔잔하게 흐르고, 들어가 누워도 누가 뭐라하지 않을 것 같은 조각공원이 편안하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부소산성은 좋은 이와 부담 없이 한가롭게 산책하며, 시끄럽고 복잡한 도시에선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누기에 충분히 고즈넉하다.


a 백마강변 하늘을 촘촘히 나는 연

백마강변 하늘을 촘촘히 나는 연 ⓒ 김정혜

그저 들어가면 편하게 안기는 듯한 곳, 부여에서 정월대보름 축제가 열렸다. 지난 15일 오후 구드래 백마강변에서는 부여군의 각 읍·면민들이 모여 어우러지며 축제를 즐겼다.

오후 1시경 축제 장소로 들어가는 길. 군데군데 사람들이 모여 있고 아직은 분위기가 무르익기 전인데 곳곳에서 함성이 터진다. 가까이 가보니 읍면 대항 윷놀이와 제기차기가 한창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윷판 앞에 모여 신이 났다. 옆집 아저씨와 뒷집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제기를 차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물러 나오고, 널뛰기 장에서는 선수를 호명하느라 어수선하고, 본부 마이크는 줄다리기에 참가할 면을 수 차례 외치며 사람들을 모은다.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연이다. 연날리기에 좋은 바람이 분 이날 백마강변에는 300여개의 방패연과 가오리연이 떠 액을 날려보냈다.

한 켠에선 장승과 솟대, 짚 광주리들을 만들며 즐겁다. 긴 나무를 눕혀 놓고 전기톱과 끌, 망치 등 갖은 도구를 이용하여 장승을 깎고, 짚으로 광주리를 엮는 모습들을 둘러 선 사람들이 신기하게 바라본다.

a 낮에 깎은 장승이 동화대 옆에 솟대와 함께 서 있다.

낮에 깎은 장승이 동화대 옆에 솟대와 함께 서 있다. ⓒ 김정혜

슬슬 해질녘이 다가오면서 경연행사가 끝이 나고 강변 한 켠에 솥이 내 걸린다. 대보름에 나눠먹는 오곡밥 짓기도 체험 행사 중 하나. 함께 지은 오곡밥은 행사장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나눠 먹는다. 귀밝이술과 부럼도 푸짐해서, 외지 사람들도 음식을 나누며 한발짝 축제에 가까워진다.


a 쥐불놀이

쥐불놀이 ⓒ 김정혜

어둑어둑해지자 아이들은 연을 날려보내고 쥐불놀이를 할 깡통을 하나씩 차지했다.

동화제가 시작되면 불을 받으라는 공지도 들뜬 마음을 잠재우기는 역부족. 성미 급한 몇몇은 이미 불을 붙여 슬슬 돌려보며 어서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a 동화대에 높이 솟은 불은 부정한 것을 태워 액을 막는다.

동화대에 높이 솟은 불은 부정한 것을 태워 액을 막는다. ⓒ 김정혜

오후 6시 30분. 동화(洞花)에 불이 오른다. 약 4백여년 전부터 부정한 것을 태워 액을 막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했던 동화제는 마을 사람들이 한 단씩 모아온 나무를 쌓아 올린 뒤 동아줄을 홀수로 묶어 동화대를 만들고, 둥근달이 뜨면 불을 붙여 제를 올렸다 한다.

a 한지를 채 받지 못한 한 참가자가 새끼에 동화 불을 붙이고 있다.

한지를 채 받지 못한 한 참가자가 새끼에 동화 불을 붙이고 있다. ⓒ 김정혜

불길이 거세어지며 풍물패가 흥을 돋구고, 쥐불놀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미리 나누어준 종이를 곱게 접어들고, 불을 받아 소지(燒紙)를 올려 행운을 기원한다.

동화대에 불길이 환하게 피어오르자 흐렸던 날씨에도 구름이 약간 걷히며 둥근 달이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모여 있는 모든 이들의 기원을 받아 주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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