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언어장애는 부시 자체"

마크 크리스핀 밀러의 <부시의 언어장애>를 읽고

등록 2003.02.18 20:23수정 2003.02.2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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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조롱과 진지한 비판정신

한국방송출판
한국방송출판김태우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기자는 제목이 풍기는 위트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부시의 언어장애; The Bush Dyslexicon>. 이 책의 제목은 저자 마크 크리스핀 밀러가 조지 W 부시를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 잘 나타내주고 있다. 그는 부시의 정책과 논리를 반박하는 차원을 넘어서, 부시가 내뱉은 언어를 근거로 그에게 조롱을 선사한다.


엄연히 미국의 대통령이 부시라는 현실은, 조롱이 싸구려 말장난으로 그치지 않게 해준다. 저자가 선사하는 조롱은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재의 국제정세를 진지하게 바라볼 마음의 준비를 하게끔 만든다. 이 책의 좋은 점은 바로 이러한 위트를 바탕에 둔 날카로운 비판정신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부시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일은 의미 있어 보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조지 W 부시로 규정되는 현재 미국정부의 정책과 논리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미국은 더 이상 슈퍼맨의 나라가 아니다. 마치 그들은 크리스마스 유령을 만나기 이전의 스쿠루지 영감처럼 속 좁고, 이기적인 수전노일 뿐이다. 그들의 가장 큰 이데올로기는 단 하나. 바로 국가 이기주의이다.

진실한 언어에는 책임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이다. 물론 다른 표현방법도 존재하지만, ‘언어가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사람들이 소통하고, 토론하고, 투표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언어’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 안에서 매끄러운 언어의 소통은 러시아워에 주차장으로 변하는 도로 상황처럼 그리 간단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특히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인의 언어는 때때로 일방적이고, 교활하기까지 하다. 이슈가 될만한 사건을 두고, 정당의 대변인이 나와서 발표하는 멘트들은 재주 없는 코미디언의 오버연기를 보는 것처럼 짜증난다. 그들은 품위를 지키며, 진실되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인 언어는 대중들에게 그들의 주장을 전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뉴욕대학교의 미디어학 교수인 저자는 부시가 미국의 여러 매체들과 나눈 언어를 토대로 그의 모순과 자기합리화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가장 눈에 띄는 부시의 언어장애는 ‘A는 A이므로 A다’라는 동어반복이다. 이러한 논법은 주장할 내용에 대해서 화자가 분명히 알고 있지 못하거나, 혹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경우에 주로 사용된다.

우리나라 TV에서 방영하는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이런 식으로 말하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 대해서 자신이 주장하는 바의 핵심을 말하기를 거부한다. 핵심에는 강점과 동시에 약점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약점도 말해야 하는 것이 토론에 임하는 화자의 의무일 것이다.

대중들이 정치인에게 듣고 싶은 말은 자신의 주장과 더불어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이러한 장치를 하겠다”, “이러한 문제점도 있지만, 이러한 것은 이렇게 해결하겠다”는 다짐일 것이다.

부시의 언어장애는 바로 부시 그 자체다

하지만 부시를 포함한 적지 않은 정치인들은 핵심을 피하며 교묘한 말장난을 한다. 그 이유는 이러한 다짐엔 ‘책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언어장애를 부추기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미 공동의 목적이 성립되어 있기 때문에 따로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재벌에게는 더 큰 이익을, 고위 정치인들에게는 안정된 정치적 지분을, 지역주의에 근거한 대중들에게는 정치적인 성취감을… 공동의 목표에 대한 암묵적 동의는 정치인들로 하여금 ‘A는 A이므로 A다’라는 말이 먹혀 들게 만든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조지 W 부시의 이러한 언어장애가 현실에서 먹혀 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9.11테러’와 ‘핵사찰’이다. 기독교 원리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세상을 악과 선의 이원론적 싸움을 보는 부시는 ‘9.11테러’로 인해 영웅화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상황을 유지하고, 중동에서 미국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너무나 많은 예와 논법을 정리해서 여기에 다 전하기는 어려울 듯 싶다. 하지만 이렇게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부시의 언어장애는 바로 부시 그 자체다”라고.

언어를 통한 사회적 인물 바라보기

이 책은 다분히 미국사회의 입장에서 서술되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는 조지 W 부시의 언어장애는 비단 그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기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말투와 논법들이 부시와 함께 떠올랐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언어를 통해 사회적 인물을 바라보고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부시의 언어장애

마크 크리스핀 밀러 지음, 김태항 옮김,
한국방송출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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