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포분교 수빈이 졸업하던 날

등록 2003.02.20 08:14수정 2003.02.2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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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8일 어버이날 아침, 벽지의 한 여교사가 전파로 띄운 눈물겹고 애절한 제자사랑의 사연이 시민들에게 알려진 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수빈이 돕기 성금 대열이 줄을 이어 거제시민들에게 신선한 청량제가 되었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시민들의 도움으로 건강을 되찾은 수빈이는 앞으로“열심히 공부해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착한 사람이 되겠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 했다. 수빈이는 올해 동부중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a 율포분교 졸업식 광경

율포분교 졸업식 광경 ⓒ 서용찬

아름다운 졸업식

전교생 25명, 교사 3명이 오손도손 생활하고 있는 거제시 동부초등학교 율포분교. 이 학교 졸업식이 있었던 지난 18일 율포, 쌍근, 탑포 어촌계, 동부면 바르게살기협의회, 동부면 새마을지도자 협의회장, 시의원 등 지역유지들이 4명뿐인 졸업생을 축하하기 위해 학교 급식소에 모였다.

졸업식의 주인공은 백혈병과 싸워 이겨낸 김수빈 어린이와 김현주, 조아람, 조윤형군. 율포분교의 졸업식은 어떤 학교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 됐다. 지난 1950년 첫 졸업생을 낸 율포분교는 올해까지 모두 184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졸업식이 시작되기 전 학생들은 서로 옷 매무새를 고쳐주고, 얼굴을 두 손으로 곱게 감싸안으며 “언니 보고싶으면 어떡해”, “가끔씩 학교 놀러오면 되지”라며 이별의 정을 나누기도 했다.

학부모, 지역 단체, 동창회 관계자 들이 졸업식장에 들어서자 20여평 남짓한 급식소는 25명의 율포분교생과 유치원생 11명, 학부모들로 금세 자리가 채워졌고 10시33분. 특별한 졸업식(54회)이 시작됐다.

한복을 곱게 입은 4명의 졸업생이 후배들과 학부모가 기다리는 졸업식장으로 들어서자 졸업식장 분위기가 이내 숙연해졌다. 국민의례에 이어 졸업생들에게 졸업장이 전해지고, 이소망양(5년)의 송사와 김현주양의 답사가 이어졌다.


“오빠, 언니들 중학교 가서도 우리들을 잊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사람이 돼 주세요”라던 소망양은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선생님들도, 다른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현주양은 “백혈병으로 고통받아왔던 수빈이가 선생님, 학부모, 지역어른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졸업을 할 수 있게 해 줘서 감사하다”며 “우리 동생들의 기도가 수빈이에게 더 큰 힘이 됐다”고 답사했다.


또 “동생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며, 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변치않을 것”이라며 “열심히 노력해 우리를 가르쳐준 선생님들에게 보답하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위해 간식(과자)을 준비했고, 마을의 각 단체회원들은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으로 졸업생 모두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학부모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꽃다발로 아이들을 축하했다.

이날 졸업식에서 20여년동안 고향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는 최순표씨, 총동창회, 탑포·쌍근·율포 어촌계, 남부면·동부면 바르게살기협의회, 남부면 새마을지도자협의회 등이 졸업생 4명 모두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또 학부모들은 수빈이를 위해 헌신한 김춘자 선생님과 김형만 전 분교장(거제시청소년수련관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으며 이날 졸업식에는 졸업생 4명 모두가 진학할 동부중학교 이기훈 교장까지 특별히 참석, 졸업식을 빛냈다.

20여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주민들의 장학금 지급은 이젠 율포분교의 전통이 됐다.

주민들이 이같은 율포분교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관심이 폐교위기에 있던 율포분교를 구해낸 것은 물론 이제는 거제지역에서 가장 모범적인 공교육 현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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