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들령-'옛날은 가고 없어도...'

옛날 이 길로 원님이 나리고... 등짐장사가 쉬어 넘고

등록 2003.02.27 19:52수정 2003.03.0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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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은 국악 꽤나 듣는 듯이 너스레를 탬버린 떨듯 하고 넘어져 있지만 고백하자면 난 뽕짝 가문의 장손으로서 뽕짝의 간드러지고 오묘한 맛을 후대에 전승해야할 사명을 띄고서 이 땅에 등기된 몸이다.

사실 요나누키 단음계라 일컫는 이 왜색가락 뽕짝 속에는 듣는 사람을 청승맞은 비애의 오솔길로 이끄는 고혹이 있어 한 번 빠져들면 쉬 끊기 어려운 애착이 생기나니 아마도 이 뽕짝가요의 성분을 분석하면 혹 니코틴이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추측해본 적도 있었다.


어릴적에야 누군들 영특하지 않을 리 없지마는 난 정말 남다른 데가 있는 소년이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남들이 초등학교 6년이 걸려도 습득할까 말까하는 동요라는 "무색무취한 세계"를 건너뛰어 일약 "우려내고 우려내도" 결코 청승앚은 맛을 잃치 않는 뽕짝의 세계로 단 번에 진입한데서도 능히 알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내가 이 맛대가리 한 개도 없는 동요의 세계를 허위허위 떠나올 적에 부엉새도 울었으며 나도 울었다. 그러나 이후로는 결코 가랑잎이 휘날리던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밤을 그리워 하진 않았다. 싸나이 뜻한 바 있어 간드러지고 구성진 뽕짝에의 길로 떠나게 되니 어찌 동요 따위가 눈 앞에 아른거릴 수 있을 것인가.

즐비한 동요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드디어 만난 명곡이 있었으니 바로 울 나라 뽕짝계의 마리아 칼라스, 이미자 언니가 부르던 <동백 아가씨>였던 것이니 진정한 뽕짝을 추구하는 길에서 그닥지 헤매지 않고도 곧장 뽕짝의 맥을 짚었다 할 수 있으리라.

이 "동백아가씨"는 자기가 청량리 사는지 섬에 사는지 나이가 열 아홉인지 스물인지도 결코 털어놓지 않으니 주소 불상에다 정체까지 불명인데 우는 사연 또한 분명치 않았다. 본시 동백꽃은 벌 나비 대신 동박새가 이리 저리 수분을 해줘야 꽃을 피울 수 있는 법인데 이 아가씨도 자신을 수정해서 꽃을 피워줄 "동박새"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가슴을 도려내는 위경련 때문에 우는 것인지 명확치 않으니 누가 나서 울음을 달랠 길이 전혀 없으려니와, 더구나 이 아가씨에겐 불면증 겹치기 눈물에 대한 선천성 면역 결핍증이란 불치의 병까지 있다는 것이 이 노래의 대강의 줄거리라 할 수 있는데... 뭐하러 여러 놈 키울 것인가. 똑똑헌 놈 하나만 잘 키우면 되제.

이후 난 "동백 아가씨"하나로 그 한 많은 미아리 고개도 스리 슬쩍 넘어뿔고 비내리는 고모령이야 우산도 없이 넘어불고 그 배고프고 현기증나는 보리고개도 고구마 한 알로 넘고 넘어 어느덧 중학생이 된 것이었다.


이 때는 어느 땐고허니 보이스틱한 문주란이 "너무나도 그 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미움"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미움으로 발효하는 화학적 과정 까지 자상하게 일러주는 <동숙의 노래>가 가요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렇게 <동백 아가씨>와 나와의 인연은 끝이 나는가 싶었더니 그게 아니었다.


그 아가씨와 다시 만난 건 고등학교 국어 시간이었는데 이 아가씨 이 참엔 아예 그 동안 결혼은 했는지 안했는지, 이혼녀가 되었는지 어쨌는지 조차 아리까리한 상태였으니 말하자면 그냥 <동백>으로 피었을 뿐이었다.

동백

정훈(丁薰)


백설(白雪)이 눈부신
하늘 한 모서리

다홍으로
불이 붙는다.

차가울사록
사모치는 정화(情火)

그 뉘를 사모하기에
이 깊은 겨울에 애태워 피는가.


그렇다. 유부면 어떻고 이혼녀만 무엇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역시 세월은 성능 뛰어난 안약이란 점이었다. 이미 아가씨는 하염없는 눈물 대신 "사무치는 정념"만 애타게 피워대는 성숙한 여인으로 변해 있었다는 얘긴데 어쨌던이 "동백 아가씨"는 나의 뇌세포에 정훈이란 시인의 이름을 각인시켜논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함평천지 젊은 놈이 할 일 없이 백수로 어영부영 세월을 보낼 적에 지금은 모 대학 국문과 교수가 된 아무개 시인에게서 이 정훈이란 시인이 대전에서 <머들령>이란 문학 동인을 이끌고 있는데 한 번 만나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기에 이른다.

머들령이라, 고개일시 분명한데 거 이름 한 번 곱다.

백수란 본디 오라는 곳 없어도 갈 곳 많은 나그네라... 더구나 그때는 노사연의 <만남>이란 노래가 나오기 한 참 전이니 "만남"이 그렇게 중요헌 의미를 지닌 것인줄 어이 알았으리요.

詩 <머들령>이 새겨져 있는 정훈 詩碑
詩 <머들령>이 새겨져 있는 정훈 詩碑안병기


머들령

정훈


요강원을 지나
머들령.
옛날 이 길로 원님이 나리고......
등짐장사가 쉬어 넘고
도둑이 목 축이던곳
분홍 두루막에
남빛 돌띠 두르고
할아버지와 이 재를 넘었다.
뻐꾸기 자꾸 우던 날
감장 개명화에 발이 부르트고
파랑 갑사댕이
손에 감고 울었더니
흘러간 서른 핸데
유월 하늘에 슬픔이 어린다.


세월과 행운(行雲)은 유수(流水)이거니와 이 불초소생 또한 한 세상 둥둥 떠다니다 우여곡절 끝에 몇 해전 한밭 땅을 밟게 되었것다. 그리하여 만나는 사람마다 <머들령 문학회>를 아느냐 수소문 하니,고모령은 알고 있으되 "머들령'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하늘 웬 구름 아래 "머들령"은 있는가. 혹은 어디 꼴아박혀 있다냐!

그렇게 대전 근교의 산을 넘나들다가 아름답지만 실용적이지 못한 원 이름 대신 "추부터널'이란 스피디허고 래디컬한 이름을 알게되는데 그게 바로 금산군 추부면과 대전시 동구 삼괴동 경게에 있는 "머들령"이었다. 더욱 웃기는 것은 거기 마달령 혹은 머들령에 시인이 20세 때 두 번 째로 이 고개를 넘으면서 7~8세 무렵 할아버지와 함께 이 고개를 지나던 추억을 노래한 <머들령>이란 시비가 바로 옆에 있거늘 머들령 고개에 있는 만인산 휴양림에 와서 가무음주를 즐기는 이를 붙들고 머들령 고개가 어디 있는지 물으면 백이면 백 모른다고 고개를 젓는다는 것이다. 하기사 그 덕분에 "머들령'은 시방도 청순한 이름 그대로 홀로 아름다운 추억을 수놓고 있을런지 모른다.

머들령으로 오르는 산책길
머들령으로 오르는 산책길안병기

난 가끔 비오는 날의 빗소리와 비 내리는 풍경을 보기 위해 그 곳을 찾아가서 <비내리는 머들령> 혹은 "비 내리는 뽕짝 속의 고모령"을 슬픔의 음계를 밟으며 홀로 걸어 내려오곤 한다.

옛날은 가고 없어도, 마음은 거기 오롯이 남는것이어니...

덧붙이는 글 | 1962년엔가 만들어진 <머들령 문학 동인회>는 지금도 고등학생들로 이어지고 있다한다. 아마 우리나라 最古의 문학 동인회가 아닌가 한다.

덧붙이는 글 1962년엔가 만들어진 <머들령 문학 동인회>는 지금도 고등학생들로 이어지고 있다한다. 아마 우리나라 最古의 문학 동인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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