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68

별은 지고 (3)

등록 2003.03.06 16:26수정 2003.03.0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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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졸들에게는 두 가지 부류가 있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는 이회옥의 의연함을 높이사는 자들과,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 내기를 걸며 희희덕거리는 자들이었다.

내기를 건 옥졸들은 부근을 지날 때마다 혹시 죽었나 싶어 작대기로 쿡쿡 찌르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오물이 입술 위로 넘나들기에 연신 퉤퉤 거리고 있는 것이다.


"제기랄! 네놈 때문에 잃은 은자가 이백 냥이다. 이봐! 아직 안 뒈졌냐? 임마, 이왕 뒈질 거면 아침에 좀 뒈져주지 왜 아직 살아서 은자를 잃게 만들어? 에이. 빌어먹을 놈! 제기랄!"
"으으읍! 에이, 퉤에! 퉤퉤퉤!"

지나던 옥졸이 또 다시 작대기로 쑤시자 오물이 입술 위로 올라왔다. 질겁을 한 이회옥은 연신 퉤퉤거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이미 생기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아마 오늘 중으로 죽게 될 것이다.

옥졸은 지난밤에 살금살금 다가와서는 억지로 입을 벌린 뒤 물을 잔뜩 먹이고 갔다. 오늘 새벽, 해가 뜰 무렵에 뒈지는데 은자 이백 냥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 같으면 화가 날 법도 하지만 이회옥은 화를 내지 않았다. 아등바등 살려고 발버둥쳐도 아무런 소용도 없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옥졸은 은자를 잃고 말았다. 해가 떴건만 이회옥이 아직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회옥이 지난 사흘 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순간 이회옥은 발광이 터질 것만 같은 느낌에 잔뜩 힘을 준 채 고민하고 있었다. 그대로 배설한다면 입술을 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죽는 시간이 더 빨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버틸 수도 없는 법이다. 생리적인 현상을 의지로 견뎌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제기랄! 이제 죽는 건가? 제기랄! 하늘은 더럽게도 파랗군.'

처음 지옥갱에 왔을 때에도 오늘처럼 하늘이 높고 파랬다. 그런데 오늘 이제 죽음이라는 갱도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에도 하늘이 파랗다는 사실이 못 마땅했던 것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이회옥은 아랫배의 힘을 풀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이제 잠시 후면 세상과 하직하여야 할 것이다.

죽어도 곱게 죽지 못하고 글자 그대로 더럽게 죽는 것이 억울했던 것이다. 같은 순간 그의 뇌리에는 짧은 일생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있었다.

너무도 행복했던 태극목장에서의 순간들과 청룡무관에서의 생활이 스쳤다. 그리고 추수옥녀와의 만남이 떠오를 때였다.

"으음? 지금 뭐 하는 거냐? 너는 지금 즉시 삼천이십칠견이 들어 있는 포대를 풀고 그를 꺼낸 후 깨끗이 씻겨 냄새를 제거한 뒤 본좌에게 데려와라! 알겠나?"

"앗! 갱주님, 알겠습니다. 명대로 시행토록 하겠습니다."
"……?"

누군가의 명에 지날 때마다 작대기로 쿡쿡 찌르면서 네놈 때문에 은자를 잃었다고 투덜대던 옥졸의 복명 소리가 들렸다.

이회옥은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얼핏 삼천이십칠견을 풀어주라는 소리는 들은 듯하였다. 그것은 분명 자신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죽는 순간에 들린다는 환청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지난 몇 달 간 깨끗한 물에 씻는 것이 최대의 희망사항이었다. 그러니 그런 소리를 들으니 잠시 헛갈린 것이다.

주루룩! 주루루룩! 주루루루루루룩!
"우우우욱! 냄새… 에이, 더러운 놈! 무지하게도 많이 쌌네."

이회옥은 오물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순간 이상하게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너무도 큰 충격에 정신이 아찔해진 것이다.

분명 오물은 줄어들고 있었다. 지금껏 까치발로 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이와 동시에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함을 맛보면서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오랜 동안 잡고 있던 긴장의 끈을 놓았기 때문이다.

"에이, 더러운 놈!"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있던 옥졸은 계속하여 쏟아지던 오물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자 가까이 다가오다가 코를 잡고 물러섰다. 지독한 악취 때문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현재 이회옥이 들어 있는 가죽 포대 아래에는 제법 깊숙한 구덩이가 하나 파여 있었다. 이회옥이 죽으면 매장될 곳이었다.

경험상 포대를 내리고 어쩌고 하다보면 오물이 쏟아지고 그와 동시에 엄청난 악취가 진동한다는 것을 알기에 냄새가 퍼지기 전에 재빨리 매장하기 위하여 파 놓은 것이다.

피거형에 처해지면 죽어서도 오물 속에 담겨져 있어야 하니 비참한 죽음 중에서도 정말 더러운 죽음이었다.

오물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은 옥졸이 포대의 아랫부분을 길게 찢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포대 안에 있던 오물들이 그 구덩이 속으로 떨어져 내리며 악취를 풍긴 것이다.

"으으으음! 허억! 여, 여긴…?"
쏴아아아아!

오랜 혼절 끝에 정신을 차린 이회옥은 눈을 뜸과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괴이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욕조 가득 담겨 있던 물이 쏟아지는 소리였다.

이 순간 그는 자신이 죽어 저승길에 왔다 생각하고 있었다. 손가락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한 운무 때문이었다.

"여, 여긴…! 혹시 지옥…?"

사물을 전혀 식별할 수 없는 운무 때문에 잠시 제정신을 찾을 수 없던 이회옥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제기랄! 난 나쁜 짓을 한 게 없는데… 흐윽! 난 억울하게 죽었어. 그런데 지옥이라니…? 난 너무 억울해! 억울하단 말이야!"

이회옥의 눈에서는 눈물이 솟았다. 죽기는 세상에서 가장 더럽게 죽었으나 사후에는 극락으로 향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생전에 착한 일을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을 해코지 한 일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옥으로 왔으니 몹시 억울한 마음이 든 것이다. 하여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것이다. 이때 걸걸한 음성이 들렸다.

"야, 임마! 깨어났으면 어서 씻고 못 튀어나와? 너, 나왔을 때 똥 냄새나면 뒈질 줄 알아! 알았어?"
"허억…! 아, 알았습니다."
첨벙―!

염라국(閻羅國) 소속 저승사자의 음성이 분명하다 생각한 이회옥은 황급히 물 속으로 들어갔다. 저승에 온 것이야 억울하지만 어찌 무시무시한 저승사자의 명을 어긴단 말인가!

하여 온몸 구석구석을 정신 없이 씻었다. 하지만 너무도 오랜 동안 오물에 담겨 있었기에 냄새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회옥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지독한 악취지만 그 냄새에 너무도 익숙해 있었기에 맡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냄새가 지독할 것이라는 추측만은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열심히 씻은 것이다.

"너, 나왔을 때 냄새나면 끓는 기름에 튀겨 버릴 거야!"

밖에서는 연신 겁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순간 이회옥의 이마에서는 구슬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통속에 있던 물을 다 썼건만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듯하였기 때문이다.

물도 없지만 마냥 씻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저승사자가 기다려 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신 나오라는 소리는 점점 더 마음을 급하게 하고 있었다.

"어서 안 나와? 끓는 기름에 튀겨지고 싶어?"
"예! 알았습니다요. 곧 나갑니다요."

이회옥은 겁이 나서 나갈 수가 없었다. 하여 문고리를 잔뜩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상념이 있었다.

'어! 이상하다? 죽었는데도 냄새가 나나?'

"야, 임마! 어서 안 나와? 벌써 몇 시진 째냐? 너, 빨리 안 나오면 죽도록 맞을 줄 알아! 알았어?"
"어! 저 음성은…? 혹시… 맞다. 맞아!"

재촉하는 음성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음성이었다. 죽기 직전에 은자를 잃었다면서 작대기로 포대를 찔렀던 바로 그 옥졸의 음성이었던 것이다. 이에 이회옥은 얼른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으으윽! 그, 그렇다면 정말 내가 안 죽었단 말이야?"

통증이 느껴지자 이회옥의 얼굴에는 희열의 빛이 흘렀다.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피거형에서도 풀려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적어도 냉혈살마나 비접나한과 같은 최후를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의복을 걸친 그는 문을 열고 나섰다. 문을 여는 즉시 죽더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어휴! 이 냄새… 이런 더러운 자식! 대체 얼마나 더 담가져 있어야 냄새가 없어지는 거야? 에이… 어서 따라와!"

이회옥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는 사실 조금도 줄지 않고 있었다. 너무 오랜 동안 담겨 있었기에 몸에 완전히 배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혼절해 있던 지난 사흘 동안 황산의 계류 하나가 완전히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옥졸이 포대를 내렸을 때 그 안에는 오물로 범벅이 된 이회옥이 혼절해 있었다. 너무도 지독한 악취에 코를 감싸 쥔 그는 포대 째 질질 끌고 허벅지 정도 되는 깊이를 지닌 계류로 갔다.

잠시 후 이회옥은 목만 남기고 물 속에 잠겨있었다. 이런 상태로 사흘이 지났을 때 이회옥의 몸에는 더 이상 오물이 묻어 있지 않았다.

대신 계류의 하류는 난리가 벌어졌다. 너무도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오물이 연신 떠내려 왔기 때문이다.

이후 옥졸은 이십여 개의 통 속에 온갖 약재를 넣고 혼절해 있던 이회옥을 담갔다. 열 아홉 개의 물통을 거칠 무렵 이회옥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이 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옥졸은 이십 번 째 물통에 담가놓고 밖으로 향했다. 지독한 악취 때문에 머리가 어질어질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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