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노무현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장관이 '평검사와의 대화'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을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서 검찰이 SK그룹의 심장부인 SK구조조정본부를 압수수색했을 때 재계는 물론 정치권과 언론 모두가 경악했다. 검찰이 5대기업 안에 드는 재벌과 그 총수를 향해 그렇게 기습적으로, 노골적으로, 직접적으로 칼을 들이대는 예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언론과 재벌 홍보실 관계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검찰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측은 사전 교감이 있었는가?"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사실'과 정황들을 다 취재하기도 전에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미 예단을 내렸다. SK수사 시작 다음날 <오마이뉴스>의 머릿기사 제목은 <노무현 개혁의 시동....>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오마이뉴스>는 '대통령 노무현'을 단독인터뷰했다. 당연히 초미의 관심사였던, SK에 대한 수사를 대통령이 사전에 알았는가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노 대통령은 그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머뭇거림없이 말했다.
"나도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 다음날 아침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 제일 먼저 드는 걱정이, '어이쿠, 보도에서는 재벌 길들이기로 나오지 않겠나' 걱정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수준이 아니고 아예 그것이 사실인 듯이 한 일부 보도도 있었다."
그러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기획해서 본때를 보여주는 식의 개혁을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기업 경영이 투명해져야 하고 원칙대로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정치적 의도로 또는 기획에 의해서 개혁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개혁에 도움이 되지 않고 성공하지 못한다. 따라서 나는 정말 이런 것을 기획해서 본때를 보여주는 식으로 개혁할 생각이 전혀 없다. 가도 자연스럽게 가기를 바란다. '검찰이 새 정부의 기류를 고려해서 이리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 그동안 미뤄두었던 것을 일거에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적절치 않다."
이런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그가 취임 이틀 후 장관 인선 브리핑을 하면서 검찰을 향해 "평소 실력대로 시험치라"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정말 검찰은 새 정부의 어떤 고위층과도 SK수사에 대한 사전교감을 하지 않았을까? 노무현 대통령은 본인이 거듭 "사전에 전혀 몰랐다"고 하니까 그렇다 치자. 그러나 한국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수 있는 재벌그룹에 대한 전격수사에 대해 검찰은 대통령 당선자는 아니더라도 민정수석 내정자나 인수위의 경제담당자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을까?
최근에 기자는 그런 궁금증을 풀어줄만한 인수위 시절의 고위 경제담당자를 만났다. 그는 검찰의 SK수사에 대해 문재인 민정수석은 물론 자신도 사전에 몰랐다고 했다.
"전혀 몰랐다. 당시 무슨 요일인가, 인수위원들이 모두 모여 인사관련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문재인 수석(내정자)이 회의 중간에 갑자기 어디론가로부터 전화를 받고 그때서야 이리저리 알아봤다. 인수위원 모두가 가판을 보고 검찰수사를 안 거다.
나도 놀랬다. 그래서 당선자와 인수위원들이 함께 하는 티타임에 내가 이야기를 했다. '검찰이 이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이다. '아니 우리가 참여정부라고 해놓고 집권초기부터 무슨 점령군처럼 기업들을 때리면서 가면 누가 좋게 보겠느냐'고 말했다."
그래서 다시 물어봤다.
"그렇다면 왜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물론 민정수석 내정자나 인수위의 고위 경제담당자에게도 알리지 않고 SK수사를 전격적으로 한 것으로 보느냐."
그의 답은 이랬다.
"나는 두 가지로 파악하고 있다. 첫째는 노무현 새 정부에 대해 검찰이 '한상 차려 바치기'를 한 것이다. 또 하나는 '강금실 거부'에 대한 사인이었다. SK 수사 전부터 강금실 변호사가 법무장관으로 기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자 검찰에서는 여러 통로를 통해 반대의사를 밝혔다. 그래도 노무현 당선자가 강금실 카드를 밀어붙이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검찰이 새 정부에 알리지도 않고 'SK수사'라는 카드로 시위를 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