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생도를 사위로 맞을 걸 그랬다구요?

이래도 그런 마음이 드십니까?

등록 2003.03.20 11:19수정 2003.03.2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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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님


요즘 각군 사관학교와 학군 장교 임관식에 가 보시면서, 늠름한 신임 소위들의 모습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아마 그들에게서 대통령께서는 힘찬 패기를 느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위를 사관생도(현역 군인이라고 해도 좋겠죠?) 중에서 찾을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님 그건 정말 겉만 보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실상을 아신다면 아마, '군인에게 딸 시집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도시락 싸서 말리러 다니겠다'라고 하실 겁니다.

노 대통령님

일단 대통령의 따님과 신임 소위들 간의 나이차 문제는 접어 둔다고 치더라도, 신임 소위들의 생활이 어떤지나 아십니까?

언제 지었는지 알 수 없는 다 찌그러진 독신자 숙소에 살면서(전방의 경우 더욱 심합니다) 24시간 휘하 병력과 함께 해야 합니다. 혹여 훈련이라도 떨어지면 일주일 동안 집에 들어갈 생각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최근 들어서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곤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런 곳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그런 방마저도 2인 1실 심한 경우는 4인 1실을 사용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미군은 사병들도 1인 1실을 사용하고, 상병 이상이 되면 방이 2개가 딸린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우리 군의 장교들에겐 꿈 같은 이야깁니다.

그런 시설문제만 놓고 본다면 좀 나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이 혹여 고참이라도 된다면, 그 때부터 고생길이 훤할 겁니다. 물론, 결혼을 하게 되면 따로 관사를 배정받게 될테죠. 그러나 만약 관사가 부족할 경우, 어쩔 수 없이 부인과 따로 살아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 소위 때 결혼을 하고 신접살림을 할 관사에 가 봤더니, 장부상으로는 이미 철거된 것으로 되어 있던 폐 관사였습니다. 그걸 제 돈 주고 수리했습니다. 벽지 바르고 장판 깔고, 수도꼭지 새로 달고, 심지어 보일러도 고쳐야 했습니다.

그나마 보일러는 부대 군수담당관이 어디서 부품을 끌어 모아와 어떻게 고치는 바람에 몇 푼 안 들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죠

그나마 고칠 수 있는 건 고치기나 했지, 비가 새는 지붕은 두꺼운 비닐 포장을 덮은 다음에 폐타이어로 얼기설기 엮어 살았고, 거실 문 두짝이나 없어진 상태였기에 역시 비닐을 사서 발라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불평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제 관사 옆에 3층짜리 관사가 한 채 더 있었는데, 거기도 가관이었습니다. 겉모습은 멀쩡한데, 수돗물이 샐 뿐만 아니라 습해서 아기들이 감기를 달고 사는 건 기본이고, 방음이 안되서 어느 집에서 뭘 하는지도 훤히 알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일껏 집을 꾸며 놓고 나니, 대대장 부인이 집구경 왔다며 영내 거주하는 군인가족들을 끌고 와서는 '커튼이 이상하다'는 둥, '왜 이런 걸 달았느냐'라고 핀잔을 주는 바람에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짜낸 그 '판자집'을 신혼집처럼 꾸미느라 애먹었던 제 집사람 무안만 당했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군인가족 특히 지휘관 부인네들에 대해서도 한마디하겠습니다. 아마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남편이 중령이면, 마누라는 대령이고, 아들은 장군이다'라고 말입니다.

처음엔 저도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 안 그런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군 생활하면서 5개 부대를 돌아다니면서 정말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 대대장 부인이 어느 날 우리 집에 와서 집사람을 보고 '영어 잘 하느냐'라고 묻더랍니다. 철없는 제 집사람, 외국 언어연수도 2년 갔다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더랍니다. 그랬더니 '우리 아이들 가르쳐 주면 좋겠네'하고 가더랍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갑자기 부대 내에 이상한 소문이 도는 겁니다. '누구네 가족이 대대장 아들 영어 가르치기로 했다'는 겁니다. 그런 소문이 돌자 온 군인가족들이 달려와서 '우리집 애도 가르쳐 달라'라고 하더랍니다. 물론 공짜로 말입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장기 복무 지원하면서, 지휘관한테 잘 보이려고 그런다는 소문까지 돌고, 심지어 병사들의 귀에까지 들어가더군요.

제가 당시 정훈장교였는데, 그런 '추문(?)'이 도는 장교가 어떻게 병사들 앞에서 정신교육을 하겠습니까? 전쟁이 나면 저 같은 장교는 '나라를 위해 죽으라'고 병사들을 '선동(?)'해야 하는데, '뒷구멍으로 호박씨나 까는' 제 말을 듣고 누가 죽으러 가겠습니까?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가 모 후방부대에서 근무할 때인데, 몇몇 장교들이 전출되고 새로 신임 장교들이 전입오면서 인사이동을 하게 됐습니다.

저 같은 정훈 장교야 연대에 1명밖에 없으니 옮길래야 옮길 수 도 없지만, 다른 장교들은 인사이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사이동 소식이 어디서 들려 온지 아십니까? 베갯머리 송사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군인 부인들로부터 구체적인 인사명령 내용이 흘러나오더군요. 물론 정확도는 100%였습니다.

그걸 놓고, 또 부인들끼리 신경전을 벌이더군요. 결국 지휘관이 나서서, '또다시 그런 경우가 생기면 전군에 사고사례로 배포하겠다'라고 엄포를 놓고 난 뒤에야 정리되더군요

그것뿐인가요? 대통령부터 소대장까지 구타를 없애라고 그렇게 애타게 말해도, 대령이란 사람부터 함부러 주먹을 휘두르는 곳이 군대입니다. 옛날보다 많이 나아졌습니다만 그래도 아직까지 '구타'를 교정과 교육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군내에는 멀쩡히 남아 있습니다. 물론 사람이 살다보면 '욱-'하는 성질 못 이겨서 주먹질하는 사람도 있겠죠. 젊은 사람의 경우는 더 잦겠죠.

그러나 나이 마흔 줄을 넘긴 사람도 그런 사람들이 엄존하고 있고, 사회에선 멀쩡하던 사람도 군대만 들어오면 은근히 구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그 문화야말로 정말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님, 늠름한 신임 소위들 정말 멋있고 듬직합니다. 젊음이란 것이 그런 것이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장교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저 패기와 늠름함이 과연 얼마나 갈까하는 생각에 측은함 마음도 느낍니다.

대통령님, 이래도 따님을 군인에게 시집보내고 싶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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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전문 지식은 없습니다만 군에서 5년간 공보장교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군에 대한 자세한 것까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군의 공보체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알고 있다고 자부하며, 일부 분야에 대해서는 군내에 지인이 몇사람 있습니다. 군사분야에서 좀더 활동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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