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주몽은 부여의 제도를 답습하던 것을 고쳐 관직명을 정비하였다. 계로부, 소노부, 비류국에서 갈려진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의 각 부족들을 다스리며 군사들을 책임지는 욕살을 두고 있었고 최고 관직인 대대로에는 재사, 태대형에는 묵거, 계로부의 욕살과 울절에 오이, 태대사자에 부분노, 조의두대형에 부위염, 대사자에 마리, 대형에 해위, 발위사자에 협부, 소형에 무골을 제수하고 송양은 중앙에 두지 않고 따로 다물후로 봉해 영지를 지키게 하였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나라의 기틀이 바로 잡힌 것도 아니거니와 예전에 송양에게 보여주기 위해 급히 세웠던 전시용 왕궁을 계속 쓰기에는 체면이 서지 않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새로 세우는 왕궁은 이제 막 기초공사를 겨우 끝낸 터였다. 그런데 태대형 묵거가 계획한 일은 왕궁을 빨리 짓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어느 날 묵거는 주몽에게 그간 정리해 온 문서를 바쳤고 그것을 다 읽어본 주몽은 큰 소리로 웃었다.
"이 보시게, 이게 무슨 말인가? 이런 얘기는 어릴 적 부여에서 많이 듣던 것이네."
주몽이 읽은 문서는 주몽을 신격화시킨 내용이었다.
'주몽은 천손의 자손으로서 알로 태어나 버림을 받았지만 뭇 짐승이 이를 보호하였고 태어나서부터 말을 하며 화살로 파리를 쏘아 맞히는 신묘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사냥에서 잡은 짐승이 많자 이를 시기한 대소가 주몽을 나무에 묶었다. 그러나 주몽은 나무를 뽑아 탈출했고 부여에 오래 있지 못함을 깨달아 오이, 마리, 협부와 함께 부여를 탈출하였다. 도중에 강에 가로막혀 나아가지 못하자 주몽은 소리쳤다. '나는 천제의 손이요 하백(물의 신)의 외손으로서 지금 난을 피해 여기 이르렀으니 다리를 내려주소서.' 그리고선 활로 물을 치니 자라와 물고기가 떠올라 주몽이 건널 수가 있었다. 얼마 안 있어 추격병이 이르렀는데 쫓아가 물을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들의 다리는 곧 없어지고 이미 다리로 올라섰던 자는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주몽은 내용을 한번 낭독하고서는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이건 사실과는 너무도 다른 내용이 아닌가? 왜 이런 것을 지어 올렸는가?"
묵거는 미소를 지으며 주몽의 물음에 답했다.
"아룁니다. 무릇 어리석은 백성들이란 자신을 지킬 주군을 모심에 있어서 강력한 모습을 원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얘기가 비록 있을 수 없는 얘기인 듯 보이나 옛말에 증삼살인(曾參殺人)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증삼살인이라?"
"옛 한족(漢族)의 노(魯)나라에 공자의 제자이자 효행으로 이름 높은 증삼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증삼과 동명이인인 사람이 살인을 했기에 사람들은 증삼이 살인한 걸로 오해를 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증삼의 어머니에게 뛰어와서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증삼의 어머니는 '내 아들은 살인을 할 사람이 아니야' 라고 하고는 태연히 베틀에서 계속 베를 짜고 있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또 한 사람이 달려와서,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지만 여전히 증삼의 어머니는 믿지 않았습니다. 또 얼마 있다가 어떤 사람이 와서 같은 소식을 전하자 증삼의 어머니는 그제야 그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어 놀란 나머지 베틀에서 내려와 담을 넘어 도망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 진실로 받아들여 질 뿐입니다."
묵거의 말은 설득을 위한 것일 뿐이지 위정자의 참된 모습을 제시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묵거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이기도 했다. 묵거의 '주몽 신격화'는 주몽의 개인적인 능력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더 백성들 사이에서 잘 파고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몽이 오만함에 젖어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주몽은 고구려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채워 넣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것은 바로 인화(人和)였다. 다른 성향의 부족들이 주몽이라는 일인아래 모여 있지만 언제나 그러리라고는 보지 않았기에 수시로 부족을 대표하는 욕살들을 모아놓고 그 고충을 듣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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