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왜 이라크에서 고전하나

-기습에 실패하고, 이라크 군은 대비책을 수립하고 대항

등록 2003.03.27 19:28수정 2003.03.27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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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1년 미군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 군을 순식간에 초토화 시키면서 이라크 전을 43일만에 종식시켰다. 게다가 당시 다국적군은 지상군 작전에 들어간지 20여일 남짓한 기간 동안 이라크 대부분의 지역을 석권했고,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60km 정도 남겨 놓은 곳까지 파죽지세로 진군했다. 당시 다국적군이 거기까지만 진격한 이유는 유엔의 결의 때문이었고,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후세인은 그때 이라크 대통령의 지위를 잃었을 것이다.

그에 반해서 12년이 지난 2003년, 유엔의 결의없이 이라크를 침공한 미군과 영국군은 91년보다도 더 많은 폭탄을 한꺼번에 쏟아 붓고도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전하고 있다. 이라크 영토 깊숙한 곳까지 진격하긴 했지만, 점령지를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게릴라에 의해 보급로가 공격당하고, 바그다드를 향하는 일부 미군부대는 이라크 군에게 측면을 공격받아 유프라테스 강으로 밀리는 위기상황까지 맞았다.

그렇다고 이라크군이 91년보다 전력이 강해진 것은 결코 아니다. 해군과 공군은 이미 궤멸된 상태나 다름없고 (있다고 해도 이미 미 공군에 의해 초토화 됐겠지만) 지상군도 91년 당시 80만을 상회하던 것에서 30만 수준으로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10년이 넘게 계속된 경제 제재로 전차 등 장비가 상당수 고철덩이로 변해버렸다. 특히, 지금 미군을 괴롭히고 있는 이라크 전력의 상당부분은 ‘민병대’,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빨치산’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미군이 이처럼 고전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91년에는 쿠웨이트를 침략한 것에 대한 응징이라는 명분과 국제적 호응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미국이 침략자로 지목당하는 외교적 불리함도 원인일 수 있고, CNN 등 서방 언론을 적절히 이용해 심리전을 펼쳤던 미군이 오히려 ‘알 자지라’ 등 아랍권 언론에 심리적 타격을 받고 있는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전투의 외부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고, 넓게 보아 전장 환경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군의 고전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반론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미군이 91년과는 달리 고전하는 이유는, 작전의 실패와 이라크 군의 적절한 대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91년 걸프전에서 미군은 공습을 장기간 퍼부으면서 이라크의 주요 시설을 파괴했다. 그리고 지상전에 들어가기에 앞서 CNN 등 서방언론을 이용한 ‘공보작전’을 펼쳤다.


우리 나라에서는 ‘공보작전’이라는 개념이 다소 낯설 것이다. 우리 군에서 이 개념이 도입된 것도 사실 몇 년 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심리전’이라거나 ‘공보활동’ 정도로 불리며, 군사작전의 보조적인 역할만 주로 논의 됐었다.

이에 비해 ‘공보작전’이라는 개념은, 군이 언론을 적절히 활용해 적을 기만하거나 위협하는 군사작전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좀더 적나라하게 말한다면 군이 언론을 군사작전의 직접적인 무기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미군은 당시 서방언론을 통해, 쿠웨이트와 그 인근에 주둔하고 있는 미 해병대가 이라크 남부 쿠웨이트 접경지대를 돌파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공표했다.

실제로, 미 해병대 주력부대는 쿠웨이트 인근의 사우디 아라비아 등에서 대규모 상륙작전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군의 지상전은 쿠웨이트 쪽에서 해병대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미 육군이 요르단 방변으로 우회해 사우디 아라비아 북쪽에서 이라크의 측면을 돌파했다.

이라크 군의 주력은 미군의 기만 전술에 속아 쿠웨이트 부근에만 집중 배치돼 있었기 때문에 미군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고, 때를 맞춰 쿠웨이트 방면에서 미 해병대가 진격하면서 포위 섬멸 당했다. 80만에 달하던 이라크 군이 10년만에 30만으로 축소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당시 이라크 군의 전차는 미군의 A-10기과 아파치헬기의 공격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아 대부분 무력화 됐다. 지하에 구축해 놓았던 벙커 시설도 오랬동안 미군의 첩보위성에 의해 위치가 파악된 상태였기에 폭격을 받아 파괴됐었다. 결국 주력이 궤멸된 상태에서 이라크 군은 국토의 대부분을 다국적군에게 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 이라크 침략전에서 미군은 91년과 같은 면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현대전을 비롯해서 군사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습이다. 시간적으로 적이 방어준비를 마치기 전에 공격하거나, 적이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파고드는 작전이 필요한데, 이번 미군의 작전은 그런 면이 부족했다.

나름대로 기습작전을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충격과 공포'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이라크 군이 대비를 갖추기 전에 이라크 진영의 종심 깊이 빠르게 진격해 전쟁을 조기에 끝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작전은 이미 이라크에게 간파 당했던 것 같다.

만약 이라크의 주력이 지난 91년 걸프전 때처럼 개전 초기에 미군과 대결을 했다면 미군의 작전은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이라크의 정예 공화국 수비대가 이라크 남부 쿠웨이트 국경 부근에 배치돼 있었다면, 미군은 월등한 공중전력을 통해 이라크 군을 타격한 뒤, 지상군이 몇몇 지점에서 이라크 방어선을 돌파하는 식이었다면, 미국의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했고, 전쟁도 미국과 영국의 시나리오처럼 속전속결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군의 주력은 바그다드에 집결해 있었다. 가용한 장비도 수도 인근에 집결해 미군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 외 지역에 배치된 전력은 게릴라 전을 펴거나 위장 투항해서 미군을 기만한 뒤 미군의 뒤통수를 때리고 있다.

게다가 미군은 자신들이 지나온 후방 주요 도시들도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앞으로만 나가다 보니, 보급로의 안전조차도 확보하지 못했다. (물론 미군은 바스라를 비롯한 도시들을 장악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라크 군의 위장 투항만 믿고서 말이다)

이라크의 이런 전략은 사실 예정된 것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80만이 넘는 대군이 30만으로 축소된 지금, 그 넓은 사막에 전선을 형성하면서 미군과 싸워 봤자, 이길 수 있는 확률은 0에 가깝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최후의 결전이 될 수도 인근에 주력을 집중배치하고 그 외 지역에서는 게릴라 전을 벌이는 것이 훨씬 낫다. 그리고 도심지를 중심으로 시가전을 펼친다면 몇몇 도시를 잃더라도 미군에게도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미국은 국내 여론이 나빠져서 소말리아에서처럼 철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 이라크의 전략이었을 것이다.

결국, 미군은 쿠웨이트로부터 바그다드 부근까지 400km가 넘는 긴 보급로를 적의 게릴라에게 맡겨둔 채, 앞으로만 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마치 6세기경 수나라가 안시성과 요동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평양성만 함락시키면 이길 수 있다고 믿으면 무모하게 고구려 영토 안으로 진격해 가다가 살수대첩을 만났듯이, 미군도 어쩌면 이라크가 준비해 놓고 있는 살수대첩을 향해 스스로 달려들고 있지도 모른다.

게다가 공보작전에도 실패해 CNN을 비롯한 서방언론은 아랍언론에 계속 밀리고 있으며, 오히려 이라크의 공보작전에 휘말려 상당한 심리적 타격을 입었다.

아직 전쟁은 초반이다. 이제 겨우 개전 8일째이다. 앞으로 전황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특히 미군이 초반의 작전상 실수를 수정하고, 새로운 작전으로 이라크를 압박한다면 앞으로의 양상은 전혀 다르게 전개될 수 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형국 대로라면 미군은 참패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압도적인 물량과 화력으로 바그다드를 함락 시킨다해도, ‘상처 뿐인 영광’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미국은 수나라가 멸망했던 것도 똑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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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전문 지식은 없습니다만 군에서 5년간 공보장교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군에 대한 자세한 것까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군의 공보체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알고 있다고 자부하며, 일부 분야에 대해서는 군내에 지인이 몇사람 있습니다. 군사분야에서 좀더 활동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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