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89

무궁공자 이위소 (4)

등록 2003.03.29 13:58수정 2003.03.2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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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무림천자성 이외에서는 대완구를 찾는다는 것이 하늘에 별을 따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이 되었기에 그것들은 마리 당 은자 사천 냥에서 일만 냥으로 훌쩍 값이 올라 있었다.

그럼에도 구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차라리 처녀불알이나 쥐뿔을 구하는 편이 더 수월할지도 모른다.


기루에 팔려오는 꽃다운 처녀들의 몸값이 은자 이백 냥 정도이니 사람보다도 귀한 동물인 셈이다. 그런 대완구들이 추위 때문에 어찌 될까 싶어 일체의 조련을 중지하도록 한 것이다.

덕분에 조련사들은 모여서 마작(麻雀)을 즐기거나, 외부로 나가 술추렴을 벌일 수 있었다. 이 즈음이 일년 중 가장 마음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때이기에 외부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계절에는 급한 용무로 말을 타고 나가겠다며 찾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요즘처럼 추울 때에는 수뇌부들은 물론 수시로 드나들던 순찰원 소속 무사들조차 출타를 귀찮아하기 때문이다.

어젯밤 이회옥은 난생 처음 기루(妓樓)라는 곳엘 갔었다.

요즘엔 할 일이 없어 너무 심심하다는 푸념을 하자 동료 조련사들이 좋은 데 구경시켜준다고 해서 따라가 보니 그곳이었던 것이다. 거기엔 사내들의 혼을 빼버릴 만큼 아름다운 기녀들이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윽한 주향(酒香)과 기름진 안주 냄새, 그리고 기녀들의 교구에서 풍기는 달콤하면서도 이상야릇한 지분향이 진동하여 사내들의 마음이 괜스레 일렁이게 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철마당의 전각 안에서 술추렴이나 벌이던 이회옥은 너무도 화려하고 신기한 모습에 눈이 휘둥그래져서 여기저기를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런 모습은 난생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기녀들은 간이라도 빼줄 듯 애교를 떨었고, 술은 너무도 달콤하였다. 술이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귓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 흘렀을 때 그는 대취 상태에 접어들고 있었다.

곁에 있던 기녀가 나긋나긋한 섬섬옥수(纖纖玉手)로 술을 따를 때마다 거절하지 않고 잔을 비운 탓이다.

새벽녘, 술에서 깬 이회옥은 머리가 깨지는 듯한 두통을 느끼며 눈을 뜨다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 앉았다.

평소 자신이 잠들던 잠자리가 아닌 낯선 곳이기 때문이었다.

횟가루를 칠한 밋밋하고 단조로운 벽이 아닌 화려한 꽃 장식이 되어 있는 벽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볼품 없고 조악한 침상이 아닌 휘장까지 달린 푹신한 침상이었다.

잠시 어리둥절하던 이회옥은 어찌된 영문인지를 짐작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기루의 기방에서 잠이 든 것이다.

동료들은 모두 돌아갔는지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아직 술이 덜 깨었기에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밖으로 나오려던 그는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기녀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보았다 싶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지난 밤 자신의 곁에서 술을 따라주던 바로 그 기녀였다.

이에 이회옥은 자신의 눈을 의심치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외모가 지난밤과는 천지차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이회옥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을 하였을 때와 안 했을 때 어떤 차이를 보일 수 있는지 극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계산서가 들려 있었다. 지난 밤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계산을 하지 않고 갔으니 계산을 하라는 것이다.

이에 계산서를 들여다보던 이회옥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젯밤 동료들과 마신 술값이 물경 오십 냥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 금액이면 열 달을 일해야 받을 수 있는 거금이다.

놀란 이회옥이 왜 이리 비싸냐고 하자 기녀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잠시 후 이회옥은 기녀의 입을 막으며 수결을 하고 있었다. 어찌나 말이 많은지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아픈데 골이 뽀개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앞으로 열 달 동안 이회옥 대신 무림천자성에서 매달 은자 다섯 냥씩 지급 받는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동의서였다.

동료들이 자신에게 바가지를 씌웠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된 이회옥은 실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철마당에는 오랜 전통이 있었다. 그것은 신입 조련사를 동료로 받아들이는 대신 치르는 신고식이었다. 후임은 선임 조련사들 모두에게 거나하게 술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술값은 은자 오십 냥을 넘을 수 없다 하였다. 혹시라도 과다한 부담을 지게 할까 싶어 상한선을 정한 것이다.

오늘 이회옥은 은자 오십 냥 짜리 환에 수결을 하였다. 이제야 비로소 신고식을 치러 진정한 동료가 된 셈이다.

무영혈편이 건넨 나한기공 주해을 본 이후 무리(武理)의 근본을 깨달았기에 요즘 이회옥은 모두가 잠든 밤이면 운공조식에 몰두하는 중이었다.

그러는 한편 낮에는 마굿간에서 봉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내공이 조금이라도 생겨서 그런지 봉의 움직임은 전보다 영활해졌고, 강력해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철마당으로 되돌아 온 이회옥은 숙취를 해소시킬 겸 비룡이 있는 마굿간으로 들어가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오전에 시작하였건만 모두가 잠든 한밤중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하인이 들어와 화롯불을 지핀 것이다. 그가 다른 조련사로부터 치도곤을 당하고 있을 때 이를 우연히 목격한 이회옥에 의하여 구함을 받은 벙어리 노인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크게 잘못한 것은 없었다. 화롯불을 가지고 지나던 중 실수로 말꼬리 몇 가닥을 그슬린 게 죄라면 죄였다.

당시 조련사는 조만간 있을 검열 때문에 몹시도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심하다 할 정도로 다그치고 있었는데 이때 우연히 이를 목격한 것이다.

그 일이 있은 이후 벙어리 노인은 이회옥의 마굿간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오늘도 그런 상황이었다.

조련사의 명이 없으면 지푸라기조차 주우려 하지 않는 것이 하인들의 공통점이었다. 그런데 이회옥의 명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알아 화롯불을 지핀 것이다.

"후으으으으읍! 휴우우우우우우! 흐으으으읍! 휴우우우우!…"

밤이 깊어가도록 이회옥의 운기조식은 그칠 줄 몰랐다. 늦게 배운 도둑질 밤새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무인의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코흘리개 시절에 이미 접했어야 할 운기심법이었다.

이회옥은 무공에 입문하기엔 다소 늦은 열일곱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운기심법에 심취해 있는 것이다.

겨울에 접어들 무렵부터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눈동자가 있었다. 하나도 아닌 무려 네 개의 눈동자였다.

둘은 마굿간 천장 한 귀퉁이 짙은 어둠 속에 있었고, 다른 둘은 쌓아놓은 건초더미 속이었다. 네 개의 눈동자에 공통점이 있다면 감탄의 빛이 어려 있다는 것이다.

겨울이 시작된 이래 이회옥의 운공조식은 단 하루로 걸러지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에 할 일을 재빨리 처리한 후에는 봉을 들고 연신 건초더미를 찌르고 후려쳤다. 철마당에는 봉이 없었기에 외원에 버려져 있던 것을 주워온 것이다.

아무리 나무로 만든 봉이라고는 하지만 하루에 오천 번을 찌르고, 다시 오천 번을 후려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회옥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봉술 수련을 하고 있었으며, 날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었다.

사실 청룡무관에 있을 무렵, 그러니까 말 도둑으로 몰려 끌려가기 전에도 날아다니는 파리를 공중에서 봉 끝으로 압사(壓死)시키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빠른 속도와 정확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다.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찌르기와 달리 후려치기에서는 약간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찌르기는 전보다 더 빠르고 정교해졌으며, 후려치기 역시 전과 달리 정확하고 빨라져 있었다.

게다가 봉의 특성인 탄성을 이용하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봉을 좌우로 힘있게 움직였을 때 탄성으로 인하여 휘청거리는 것을 이용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주먹으로 사람을 칠 경우 가격 직후 멈추거나 주먹을 회수하는 것이 위력이 크다. 다시 말해 밀어 치는 것보다 끊어 치는 것이 더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회옥은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건만 봉 끝으로 끊어 치는 것을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찌르기 역시 끊어 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에 파괴력이 대단하였다.

게다가 아직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봉의 탄성을 이용하여 신형을 띄우는 방법 또한 익히고 있었다.

경신술이나 경공의 요결에 대하여 아는 바는 없지만 무림천자성에 온 이후 경공을 사용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정의수호대원들의 날렵한 몸놀림을 보며 감탄하기를 수십여 번이었다. 그때마다 사람이 어찌 저렇게 몸이 가벼울 수 있으며, 어떻게 일 장도 넘는 담장을 아무런 장비도 없이 훌쩍 뛰어 넘을 수 있는지 감탄스럽곤 하였다.

이회옥의 장점은 감탄만 하고 있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늙은 조련사에게 물어보니 정의수호대원들의 몸놀림이 가벼운 것은 경공술이라는 무공을 익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내기는 하였다.

하여 그것을 배우고 싶었으나 아무도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철마당 소속 조련사들은 그저 말만 잘 돌보면 된다. 따라서 무공을 익힐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조련사들 가운데 무공을 익힌 자들은 전무하였다.

철마당 내부의 규정에는 조련사들이 무공을 익히려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이는 무공을 익히느라 임무에 소홀할까 싶어 만들어진 규정이었다. 따라서 무공을 익히고 싶어도 누군가에게 무공을 가르쳐달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나마 이회옥이 나한기공을 익힐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규정을 모르고 있을 때 제일호법에게 청을 넣었기 때문이고, 당주인 뇌흔이 흔쾌히 수락하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러한 연유로 이회옥이 무공을 익힐 수 있었으나 경신술을 배울 방법은 전무하였다. 하여 침만 흘리던 중 모든 무공이 처음엔 없었으나 누군가에 의하여 창안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말해 가르쳐 줄 사람이 없다면 스스로 경신술을 창안하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하여 어찌하면 그렇게 몸을 가볍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중 봉의 탄성을 이용하여 몸을 띄우는 방법을 창안해 내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이회옥 본인은 모르고 있으나 이것은 오래 전 누군가에 의하여 처음으로 경공이 만들어질 때의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무튼 경공술을 창안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문자답(自問自答)을 하며 나날이 발전하였기에 어둠 속의 눈동자들에 경탄의 빛이 어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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