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90

무궁공자 이위소 (5)

등록 2003.03.30 12:51수정 2003.03.3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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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을 익힌 무인이라 할지라도 초식을 익히고 나면 왜 그렇게 움직여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결과가 야기되는 지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초식을 정교하게 시전하여 좀 더 파괴력이 강해지는 데만 신경을 쓴다.

그런데 이회옥은 달랐다. 무공의 기본인 무리(武理)의 근본 원리를 깨우침으로서 지금은 별로이지만 장차 높은 경지에 도달할 기틀을 닦고 있었던 것이다.


"후으으으읍! 휴우우우우우! 후으으읍! 휴우우우우…!"

길고 긴 운공이 끝났는지 지금껏 반개(半開)되어 있던 이회옥의 눈이 떠지는 순간 아주 잠깐이지만 별빛 같은 신비로운 빛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너무도 짧았기에 정면에서 노려보고 있다 하더라도 발견하기 힘들 정도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젠장, 오늘도 너무 길었구나."

마굿간 밖으로 나온 이회옥은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고 이미 삼 경이 지났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운공조식만 했다 하면 오늘처럼 시간이 지나는 것도 모르게 된 것은 얼마 전부터이다. 지금이야 할 일이 없는 겨울이니 이래도 별 탈이 없지만 일손이 바빠지는 봄이나 가을에는 이렇게 했다가는 자칫 큰일을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으음! 앞으로는 운공조식을 할 때 뭔 수를 내도 내야지 이러다가 잘못하면 작살나겠군. 젠장! 난 이래서 탈이라니까… 쯧쯧!"

나직이 혀를 차는 이회옥은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운공삼매경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치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혀까지 찬 것이다.


사실 불문에 몸담은 고승이라 할지라도 몰아(沒我)의 경지에 접어들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면 할수록 잡념(雜念)이라는 것이 끼어 들기 때문이다. 하여 불문에서는 이를 일컬어 마(魔)라 한다.

몰아의 경지에 도달해야 성불(成佛)할 수 있다 믿는데 그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여 수행 중에 잡념을 떨치기 위하여 목어(木魚: 목탁)을 일정한 간격으로 두드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념이 생기기에 이를 떨치기 위하여 아무것도 없는 벽을 노려보는 면벽을 하는 등 여러 노력을 한다.

이렇듯 무념무상의 경지에 도달하기가 힘든데 이회옥은 달랐다. 아직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걱정해야 할 일이 거의 없었기에 쉽게 운공삼매경에 접어들 수 있는 것이다.

부양해야할 식솔이 있는 것도 아니오, 성취해야할 학문적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혈기왕성한 나이이지만 아직 이성(異性)에 대한 관심도 희박하였다. 이마에 새겨진 흉측한 글자들 때문에 자격지심이 들어 아예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가 얻는 성취는 다른 사람들과는 사뭇 달랐다.

게다가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얻은 내공이다보니 정심함에 있어서는 몇 배나 더했다. 그러니 냉혈살마를 만나 처음 내공이라는 것을 익힌 이후 겨우 이 년이 넘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십 년 걸려 얻는 것과 같은 정도의 성취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혀까지 차면서 투덜거린 것이다. 한 마디로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싸는 소리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흐음! 어차피 날이 새려면 멀었으니 봉술이나 연마해야겠군. 후후, 지금은 모두 잠들어 있을 터이니 밖에서 해도 되겠지."

말을 마친 이회옥은 마굿간으로 들어가 건초더미 속에서 감춰두었던 봉을 꺼내들고 나왔다. 겨우 일년 정도 사용하였건만 봉은 손때가 묻어 반들거리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좋아! 오늘은 어제 만들다 만 운룡파철(雲龍破鐵)이라는 초식을 완성시켜야지. 챠아아앗! 야아아아압!"

잠시 봉을 흔들어 탄성을 느끼던 이회옥은 봉으로 전후좌우를 정신 없이 찌르고 후려쳤다. 그러자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봉의 그림자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쉬이이익! 쐐에에엑! 쓔아아아악! 휘이이잉!……

한 자루 봉을 휘둘렀건만 각도와 방향에 따라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고 있었다. 찌르기와 후려치기를 함에 있어 강약과 완급이 조절되기에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이다.

한동안 몸을 풀 듯 봉을 휘두르던 이회옥이 문득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는 그의 이마에 둘러진 두건은 어느새 젖어 있었고, 머리 위로는 뿌연 김이 솟고 있었다. 전력을 다하여 봉을 휘둘렀기에 벌써 땀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 멈춘 채 철천지원수를 바라보기라도 하는 듯 어느 지점을 노려보다가 갑작스럽게 땅바닥을 거세게 후려쳤다.

쐐에에에에엑!
"챠아아압! 돌아와라!"

땅 바닥을 후려치던 봉을 회수되자 가던 탄성으로 인하여 땅에 거의 닿을락말락할 거리까지 쇄도하였던 봉은 엄청난 탄력으로 휘청거렸다. 이러한 탄성을 이용하여 반대편 땅을 후려치려 하다 다시 회수하자 전보다 더 강한 탄성이 발생되었다.

이 순간 이회옥은 봉의 탄성을 이용하여 신형을 띄웠다. 그러자 보통 때에는 불과 두 자 높이 밖에 뜨지 않던 신형이 반 장 이상이나 튀어 올랐다. 그리고는 봉을 섬전의 속도로 후려쳤다.

등뒤에 붙어 있던 봉이 완벽한 회전을 한 것이다. 그러자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쐐에에에에에에엑!

봉은 사람의 키보다 크다. 따라서 봉을 등뒤에 붙였다가 후려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봉이 등에 닿기 전에 땅에 먼저 닿기 때문이다. 만일 봉을 등뒤에 딱 붙였다가 완벽한 회전을 할 수 있게 한다면 보통 때보다 더욱 강한 파괴력을 지닐 수 있게 된다.

하여 창안된 것이 바로 운룡파철이었다.

이 초식은 글자 그대로 구름 속에 감춰져 있던 운룡이 튀어 나와 철판이라도 박살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야아아아압!"

봉이 거의 허리 아래로 내려갈 즈음 이회옥은 한마디 기합성과 함께 봉을 회수하였다. 땅바닥을 후려친다면 자던 사람들이 놀라서 깰지 몰라 회수한 것이다. 만일 봉을 회수하지 않았다면 땅바닥에 적지 않은 흔적이 남았을 것이다.

"휴우…! 어제보다는 조금 나아진 느낌이군."

잠시 땅바닥을 노려보던 이회옥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런 그의 눈에는 목표했던 땅 바닥에 한 자 깊이로 구덩이가 파여 있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방금 전 시전한 운룡파철의 위력이 그 정도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마굿간 안에서만 수련을 했다. 그런데 그곳은 천장이 낮아서 운룡파철을 제대로 시전할 수 없는 불편함이 있었다.

하여 부분적인 수련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 밖으로 나와 휘둘러 본 것이다. 잠시 후 이회옥은 반복하여 운룡파철을 시전하고 회수하였다. 여전히 땅바닥을 두들길 수 없어 진정한 위력을 알 수는 없다는 것이 조금은 불만스런 상황이었다.

"흐으음! 내일은 나가서 해봐야지. 좋아, 다음은 운룡포연(雲龍捕燕)이야. 챠아아앗!"

이회옥은 뒤로 돌아서면서 세웠던 봉으로 솔잎 사이의 솔방울을 겨냥하고 찔렀다. 그러자 봉은 영활한 뱀처럼 솔잎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 정확히 솔방울을 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잎은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초식의 특징은 봉의 끝이 직선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움직인다는 것이다. 보통의 찌르기라면 직선적인 움직임 밖에 없다. 그러나 운룡포연은 달랐다.

지난 여름 이회옥은 처마에 자리한 제비집을 본 적이 있었다. 둥지에는 갓 부화한 새끼 제비들이 있었는데, 능구렁이 한 마리가 이것들을 노리고 있었다.

막 새끼 제비들이 능구렁이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려 할 즈음 이회옥은 들고 있던 봉으로 놈을 밀어냈다. 당시 이회옥이 있던 곳에서 제비집이 있는 곳 사이에는 여러 장애가 있었다.

단청이 입혀진 처마 장식들이 그것이었다. 제비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마 장식을 부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봉의 끝을 이리저리 움직여 간신히 능구렁이를 밀어낸 것이다.

이때 섬전처럼 머리를 스치는 상념이 있었다.

만일 어떤 상대와 병장기의 열세 속에서 대결을 한다면 하는 생각이었다. 상대의 병장기에 봉이 잘리거나 부러지면 끝이기에 그것을 피하면서 공격하는 수법을 창안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운룡포연을 천천히 시전하면 여러 장애를 피해 봉을 찔러 넣는 모습과 같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봉의 움직임이 다를 수 있는 것이 운룡포연이었다. 대신 봉의 움직임은 최단거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래야 상대를 제압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으음! 아직은 부족해. 이제 겨우 세 개의 장애를 피할 수 있을 뿐이야. 장애가 제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모두 헤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이회옥은 자신이 어느 경지에 도달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비교할만한 대상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자신의 성취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연속하여 운룡포연을 시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느닷없는 손뼉소리가 터져 나왔다.

짝―! 짝―! 짝―!

놀라서 뒤를 돌아본 이회옥은 대경실색하며 무릎을 꿇었다.

장차 천하를 운영할 무림천자성의 소성주인 철기린 구신혁이 빙그레 미소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 누구? 아앗! 소, 속하 이회옥이 소궁주님을 뵙습니다."
"하하하! 봉술이 대단하구나. 보아하니 본성의 제자 같은데 어디 소속이며, 성명은 무엇이더냐?"

이회옥에게 있어 철기린과의 만남은 하늘과의 만남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 가장 존귀한 존재와 조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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