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타고 싶으시다면 타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비룡을 얼마 타시지 못 하실 것입니다. 더운데 있다가 추운 데로 갑작스럽게 나가면 근육이 뭉치기 마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차를 가하면 달리기는 하겠지만 근육에 손상이 갈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니 타시고 싶으시면 한 시진만 기다려 주십시오. 속하가 준비를 하겠습니다."
"으으음! 좋다. 네 말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본좌는 기린각에 있겠다. 한 시진 후에 비룡을 데리고 오도록!"
"존명!"
말을 마친 철기린은 한두 번 비룡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이내 신형을 돌렸다. 이때였다. 이회옥의 머뭇거리는 음성이 있었다.
"저어…!"
"뭐냐?"
"속하는 기린각이 별원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은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곳으로…"
"핫핫! 깜박 잊었군. 알았다. 본좌가 이야기해 놓으마. 지리를 모를 터이니 들어 올 때는 철마당주와 함께 오도록!"
"존명!"
철기린이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마구간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이회옥의 허리는 펴질 줄 몰랐다.
그는 장차 무림천자성의 성주가 될 사람이다. 이것은 장차 전 무림을 다스릴 사람이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무림천자성은 무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하여 불철주야 애를 쓰는 곳이다. 누가 하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니고, 해달라고 애걸복걸한 것도 아니건만 스스로 나서서 막대한 은자를 써가면서 무림의 평화를 지키는 곳이다.
이회옥은 무림천자성이 있기에 마도는 물론 사파무림이 감히 발호를 하지 못한다고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부친이 수 없이 칭찬하였기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비록 지옥갱에 갇히는 곤욕을 치렀지만 누군가의 모함 때문이었고, 산해관 태수의 잘못된 판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여전히 무림천자성에 선망을 지니고 있었다.
이회옥은 자신이 장차 하늘이 될 사내를 만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여 허리를 꺾은 채 스스로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얏!"
워낙 야무지게 꼬집었기에 진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분명 꿈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무림천자성의 수많은 식솔들 가운데 철기린과 이렇듯 가까이 대면하고 대화까지 해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와 대화를 해본 것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성명까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회옥은 숨이 막힐 듯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하하! 비룡아, 너 정말 주인 하나는 잘 만났어. 하하! 너는 장차 천하제일인을 태우고 다니게 될 것이야. 하하하!"
이회옥은 애지중지하던 비룡의 주인으로 그저 그런 자가 내정되었다면 아깝다는 마음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철기린이라면 사정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그렇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영광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오르는 듯하였다.
비룡이 갓 태어난 망아지일 때부터 조련하면서 장차 대영웅의 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애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태극목장의 제일목부인 부친은 언젠가는 장주가 될 것이다. 목장주는 글자 그대로 태극목장의 주인이다. 따라서 대완구를 팔지 않고 타고 싶으면 탈 수도 있다.
부친이 목장주가 되면 외동아들인 자신은 소장주가 된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목장주가 될 확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때까지 비룡을 팔지 않았다면 자신이 탔으면 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꿰뚫기라도 했는지 부친은 어림도 없는 생각이라고 하였었다. 하긴 이정기가 장주가 되고, 그가 늙어 이회옥에게 자리를 물려주려면 몇십 년이 더 걸릴지 모르는 일이다.
장수하면 백 년도 살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말은 길어야 오십 년을 산다. 물론 아무 탈이 없을 때의 일이다.
보통은 이십오 년 정도를 산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이회옥이 신임 장주가 될 나이가 삼십 살이 넘는다면 비룡을 타고 다닐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때쯤이면 사람으로 치면 호호백발 노인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친이 어림도 없는 생각이라 한 것이지만 당시 이회옥은 그런 것을 염두에 둘만큼 생각이 깊지 못할 때였다. 그렇기에 자신이 탔으면 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회옥은 비룡의 주인이 철기린이 된 것이 좋았고, 그가 비룡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도 좋았다. 하여 콧노래를 부르면서 안장을 얹고 있었다.
"핫핫! 네 녀석 덕분에 별원 구경을 다하는구나."
"앗! 당주님, 언제 오셨습니까?"
"핫핫! 방금 전에 왔다. 준비는 잘 되어 가느냐?"
"예!"
"좋아, 소성주께서 타실 테니 각별히 신경을 쓰도록 하여라."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핫핫! 그래, 그래야지."
철마당주 뇌흔은 계속해서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조금 전 오랜만에 마구간들을 순시하려고 집무실을 나섰었다. 이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철기린을 만났다.
마구간 순시를 나섰다고 하자 철기린은 뇌흔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칭찬을 하였다. 수하인 이회옥 덕분에 칭찬을 받은 것이다. 그러면서 비룡이 준비되면 별원으로 오라는 소리를 들었다.
뇌흔은 무림천자성의 팔대당주 중 하나이지만 지금껏 별원은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수석호법인 무영혈편이 수하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술자리에서 지나가는 말로 한 소리를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때 무영혈편이 말하길 무림천자성의 성주 일가만이 머물 수 있는 별원은 몽유별천지(夢遊別天地)라 하였다. 그야말로 꿈에서나 노닐어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도원경(桃源境)이라는 말이 있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동진(東晋) 때 시인인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시병기(桃花源詩幷記)라는 것에 기록되어 있는 말이다.
진(晋)나라 태원연간(太元年間)에 무릉의 한 어부가 작은 배를 타고 강의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다 복숭아꽃이 만발한 숲(桃源)을 만났다. 이 어부는 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계속 노를 저어 올라갔는데 숲이 끝나는 지점에 산이 가로막고 있었고 그 산 아래에는 자그마한 동굴이 있었다고 한다.
어부가 동굴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거기엔 넓은 땅이 펼쳐져 있었으며, 바깥 세상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옛날 진(秦)나라 때 난리를 피하여 이곳에 온 뒤 한번도 나간 적이 없어 외부 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해왔다고 하였다.
어부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환대 받았으며 며칠을 묵은 다음 돌아올 때는 길에 표시를 한 후 돌아왔다. 그리고는 태수에게 보고하였다. 이에 태수는 사람을 시켜 그곳을 찾아보게 하였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는 곳이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아름다운 곳을 보면 흔히들 도원경 같다고 한 것이다.
무영혈편은 무림천자성의 별원이야말로 도원경을 능가하는 별천지일 것이라 하였다. 그렇기에 뇌흔은 별원을 한 번 가보는 것이 꿈이었다. 그렇지만 그곳은 당주 신분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곳이었다.
하여 무척이나 궁금해하던 터였는데 드디어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니 기분이 좋지 않으면 이상할 것이다.
아무튼 이회옥은 철마당주의 채근을 받으면서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별원을 향해 출발하였다.
마구간을 떠나 외원에서 내원으로 출입하는 문으로 다가섰을 때 마침 그곳을 지나는 장한이 있었다.
그는 뇌흔을 보자마자 반갑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혈색도 좋고 인물도 훤칠한 그는 대략 사십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가슴에 한 자루 황금 빛 장검이 자색 구름을 꿰뚫고 있는 모양이 수놓아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당주급인 듯하였다.
철마당주는 오십이 약간 넘은 나이였다. 그렇기에 당연히 존대를 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말을 놓고 있었다.
"핫핫! 이게 누군가? 오랜만일세."
"아! 자네야말로… 핫핫! 반갑네. 오랜만이네. 같이 있으면서도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들어서야 원…"
"핫핫! 그러게나 말일세. 헌데 어디를 가는가?"
"나 말인가? 핫핫! 별원엘 간다네."
"별원? 어디에 있는 무슨 별원?"
자랑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뇌흔을 본 장한은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별원이 어딘지 짐작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하! 이 사람아 철검당의 당주라는 사람이 별원이 어딘지도 몰라? 핫핫! 소성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는 길일세."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